[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거부하였다.
“공연히 조정을 자극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이순신이 말한 조정이란 곧 선조를 일컫는 것이다. 왕은 지금 마지못해 방면한 이순신에 대해서 철저한 이중 삼중의 감시를 펼치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절대 자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때 이회가 머뭇거리다가 부친 이순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이회는 수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일행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지난 새벽에 감시자가 미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애 대감을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이번에는 어떤 연유로 곽장군을 피하시는 겁니까?”
이순신은 아들 두 명을 둘러보았다.
“서애대감은 결코 곤경에 처해질 분이 아니다. 하지만 곽장군은 다르지.”
“어떤 면이 다르옵니까?”
이번에는 둘째 울이 물었다.
“서애대감의 탁월한 지혜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어떤 위기에서도 서애대감은 흔들림이 없다. 그와의 관계를 공개 하는 것은 의심 많은 왕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다. 그러나 곽장군은 다르다. 그는 천생 선비이며 의병장이다. 술수를 모르는 담백한 대나무와도 같다. 오히려 조정에 의심이 가해진다면 곽장군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순신은 무장이었으나 웬만한 문관 이상의 학문적 성취를 지니고 있었다. 본래 그는 섬세하고 탐구를 좋아하는 선비였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나이 28살에 훈련원 별과에 응시하였고 그나마 말에 떨어져 낙방하였으며 32살 식년 무과 병과에 합격하였다. 이순신은 멀리 북쪽을 바라보았다.
‘여진......! 여진이란 말이지.’
만주의 누르하치를 독대하기 위해 떠났다는 김충선의 행적에 불현듯 1576년 32살의 나이로 함경도 권관으로 초임지에 부임 하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여진의 적들은 추위에 강하였고 조선의 병사들은 그 혹독함이 두려웠다. 이순신은 훗날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造山堡萬戶兼鹿島屯田事宜)가 되었는데, 여진 오랑캐의 지속적인 출몰로 인해서 군사와 장비의 증강을 상부에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급기야는 여진 오랑캐들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아 적은 군사로 대항하기가 역부족이라 판단하여 부하들과 함께 대피했었다. 조정에서는 그것을 죄라 문책하여 이순신은 결국 백의종군하게 됐었다. 따라서 이번이 두 번째 백의종군이 되는 셈이었다.
“아버님, 김충선이 염려되시옵니까?”
불쑥 둘째 이울이 물어왔다.
“이번 원행은 매우 중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은 패기의 김충선을 신뢰하고 있었으나 불안감은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여진, 만주를 움직이는 일이 어찌 단순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하나로 통일한 영웅이었다. 소문대로라면 누르하치는 지모가 출중하고 임기응변이 강하며 용맹하기가 호랑이에 버금가는 전사(戰士)였다. 명나라 대국을 도모하려는 그의 야심(野心)은 요원의 불길과도 같이 맹렬하였다. 과연 김충선이 그런 누르하치를 끌어드릴 수 있겠는가?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