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김충선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난 5년간의 성과를 헤아린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기됩니다.”
이회가 부친 이순신에게 아뢰었다. 이순신이 대답대신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김충선은 1592년 임진전쟁이 시작되자 바로 부하들과 투항하여 조선을 위하여 조총 기술을 전수하고 조선의 관군들은 물론이고 의병과 합류하여 무수히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충선은 어떤 면에서 이순신과 많이 닮아 있었다. 무관이면서도 역시 그는 학문적 성취가 남달랐다. 유학의 조예도 깊었으며 병서(兵書)를 풍부하게 섭렵하였고 두뇌가 비상하였다. 생각은 깊었으나 행동은 빨랐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을 선택하였고 까다로운 조선의 사회에 적응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 친구는 기필코 이루어 낼 것입니다.”
이번에는 김충선과 동갑인 이울이 믿음을 드러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했지 않느냐.”
이순신은 두 아들을 둘러보았다. 이회와 울은 동시에 대답했다.
“아버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일은 사람이 꾸미는 것이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이 다시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단지 치열하게 투쟁했던 그들 오랑캐와 타협하여 조선을 개벽해야 한다는 사명(使命)이 서글플 따름이다.”
서글프다. 이순신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자 진짜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부터 극심한 두통은 그로 인한 것이리라. 이순신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까닭모를 눈물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아버님......”
“왜 어린애처럼 우느냐고 묻는 것이냐?”
“고정하소서.”
두 아들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이순신은 메마른 손을 뻗어 이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이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었다. 평소에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다정함이었다.
“너희들에게 이런 꼴을 보여주는구나.”
“이것이 어찌 아버님의 잘못이옵니까?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왕의 무능함이 극에 달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닙니까.”
이순신은 문득 자조 섞인 말을 뱉어냈다. 피처럼 독하게 쏟아냈다.
“혹여 내게 권위에 대한 망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가슴에 본래부터 역심의 징조가 숨어 있었던 건 아닐지......”
아들들은 단호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버님이 뉘시옵니까? 오로지 나라에 충성밖에 모르시는 일편단심의 관리이옵니다. 추호도 그런 사념을 품지 마소서. 고통 받지 마옵소서.”
그러나 이순신은 아팠다. 뇌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고, 속은 빨래를 쥐어짜는 것 마냥 뒤틀렸다. 명나라와 조선은 희망이 없다고 이미 작심하고 또 작심한 일이었으나 이순신은 계속 아팠다.
‘언제야 이 통증이 멎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체념의 마지막 눈물이 이순신의 발 등으로 떨어졌다. 그는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