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오표가 장예지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맑게 흐르는 청계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살구나무 가지에 꽃잎이 시름하는 모양을 보니 봄이 깊어가는 모양이었다.
‘그 분과 이곳을 거닐었다.’
장예지의 가슴에 사부 김충선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람과 걸었던 수표교의 향취가 마지막 이란 생각이 들자 콧등이 시큰거렸다. 아니, 비단 청계천만이 아니고 이제 한성과는 작별을 고할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 번잡한 세속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고향의 산골짜기에 비구니들만이 모여 있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장예지는 그리 떠나고자 했다.
‘사부, 대업을 반드시 이루소서.’
사부 김충선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기 위해 그녀는 추억의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표가 그녀의 행방을 뒤 쫒아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추적과 암살, 교란과 침투에 독보적인 훈련을 받은 전사였다.
사모하는 정인을 단념해야 하는 여인의 심리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은가. 반드시 그녀가 나타날 것이란 예측은 적중했다.
‘충분히 기다려 주겠소.’
오표는 내심 중얼거렸다. 장예지의 가냘픈 몸매를 뒤 따르며 그녀의 손 짓 하나, 발 짓 하나에 묻어나는 이별의 아쉬움을 눈으로 담았다. 장예지는 그리움을 마음껏 들여마시고, 그 작별의 독한 향기에 취해 있었다. 눈빛은 풀려 있었고 걸음걸이는 불안정했다. 자세히 보면 마치 넋이 반쯤 나간 사람이었다.
‘차라리 그때 사부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장예지는 우연한 해후가 미치도록 증오스러웠다. 혼란의 시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있을 때, 김충선과 곽재우의 앞에 일본군에게 쫒기는 신세로 다시 만나게 되었던 그들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먼저 죽은 익호장군 김덕령 때문에 그들 남녀는 어떤 표현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 모진 인고(忍苦)의 시절을 넘기고 다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을 때, 이번에는 또 새로운 하늘, 개벽의 대의명분 때문에 그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니야. 어쩌면 그 때의 순간적 아름다움이 내게 있어서는 유일한 영원이 아닐까?’
장예지는 김충선을 마음껏 추억하였다. 그녀는 김충선과 나란히 걸어서 정릉동행궁으로 향했던 길을 가로 질렀다. 그 날의 봄 향기처럼 꽃향기가 품안으로 날아들었다. 오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장예지와 삼 십 여 보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봄을 즐기는 상춘객(賞春客)처럼 행동했다.
‘사랑을 담고 있는 여인을 제거하기에는 날이 너무 좋군.’
실로 눈부신 봄날이었다. 장예지의 발 길이 멈춘 것은 정확히 청계천의 끝자락이었다. 그녀는 다리 위에서 파란 나뭇잎을 동동 물에 띄우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내려다봤다. 전란이 한성을 휩쓸고 지나갔고 끔찍한 지옥을 연출했던 곳이건만 아이들은 현재의 평화가 즐겁기만 한 모양이었다. 깔깔 거리는 웃음이 청계천의 물결처럼 청량했다. 오표는 장예지의 뒤편으로 점차 접근을 시도했다.
‘그대는 혹 죽음을 반기는 것은 아니요?’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