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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금석문 톺아보기 13]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전북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에 세워진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이다.
황산대첩(荒山大捷)은 1380년(우왕 6년) 9월 이성계가 전라도 지리산 근방 황산에서 왜구를 격퇴시킨 싸움이다.

이보다 앞서 1376년 홍산싸움에서 최영에게 대패한 왜군이 78년 5월 지리산 방면으로 다시 침입하였고, 80년 8월에는 진포에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침입, 충청·전라·경상 3도의 연안지방을 약탈·살육하여 그 참상이 극도에 달하였다.

이때, 원수 나세·최무선 등이 화통, 화포로써 왜선을 격파, 전부 불태워버리자 퇴로를 잃은 왜적은 더욱 발악을 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도순찰사로 임명, 이 지방의 방위책임을 맡게 하였다.

   
▲ 황산대첩비

적은 함양 운봉 등의 험지를 택하여 동서로 횡행하므로, 이성계는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남원에서 배극렴 등과 합류, 각 부서를 정비한 다음 운봉을 넘어 황산 북서쪽에 이르렀을 때 적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적은 산을 의지하여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성계는 고전에 빠졌으나, 이를 무릅쓰고 부하 장병을 격려하여 적을 대파하였다. 최영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 격파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싸움이며, 이를 계기로 왜구의 발호가 쇠퇴하였다.

1577년(선조 10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황산대첩비가 전북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에 세워졌다. 일제 침탈기간에 조선의 정기를 훼손시킬 목적으로 폭파되었다가 재건립되었던 역사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비이다.

연대 : 1577년(선조10년)
문화재지정 : 사적 - 104호
높이  : 4.25m
출토지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서체: 해서(楷書)

<출처:한국금석문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