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이 석탑기는 경북 금릉군(金陵郡:현 김천시) 남면(南面) 오봉리(梧鳳里) 소재의 쌍탑을 1916년에 경복궁으로 이건할 때 알려진 것이다. 이 석탑의 기록에는 758년(경덕왕(景德王) 17) 건립이라는 자료가 있으나 실제 새긴 것은 원성왕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갈항사(葛項寺)는 승전(勝詮)이 상주(尙州) 영내 개녕군(開寧郡)에 정사를 짓고 돌 무리를 거느리고 화엄을 개강하였다는 절로서 그 뒤로도 이 돌들이 전해왔다고 한다(『삼국유사』권4 승전촉루(勝詮髑髏)). 승전은 당(唐)의 법장(法藏)에게서 화엄을 배우고, 법장이 의상(義相)에게 보내는 탐현기(探玄記), 교분기(敎分記) 등 법장 자신의 저술과 그 내용을 적은 서신(書信)을 가져와 전한 승려이다.
▲ 갈항사 석탑비
쌍탑 중 동탑 상층 기단의 면석에 본 자료가 새겨져 있는데, 탑의 높이는 448cm이고 글씨는 약 6cm 크기의 행서체이다. 동서 양탑 기단 밑의 가공석 사리공에서는 사리구가 출토되었다. 현재 탑은 경복궁에 있고, 사리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의 찬자와 서자는 미상이다.
이 자료는 남녀 삼형제가 탑을 세우고 그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기록된 연대인 경덕왕대(景德王代)보다 30년쯤 뒤에 원성왕(元聖王)이 즉위하고 나서 추봉(追封)한 원성왕 모친의 추봉 칭호가 기록되어 있고 원성왕의 시호가 아닌 휘(諱)가 쓰여 있다. 따라서 이 사실을 모두 신뢰할 경우 탑의 조성보다 약 30여 년 후인 원성왕 재위중에 새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대: 통일신라
유형,재질: 탑명·등명 / 화강암
문화재지정: 국보 - 제99호
크기: 높이 4.48m
출토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소재지: 국립중앙박물관-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출처: 한국금석문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