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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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와쿠다니에서 바라다본 후지산, 로프웨이 안에서도 선명히 보인다 |
천혜의 자원인 후지산을 끼고 있는 하코네는 도쿄에서 특급열차 “로망스카”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일찍부터 온천관광지로 이름이 나있다. 후지산은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본의 상징물이다. 표고 3,776m로 일본 최고봉이며 행정구역상은 시즈오카현의 5개 시와 야마나시현 2개 지역에 걸쳐있는 거대한 활화산으로 하코네에 이르는 오와쿠다니에서는 지금도 유황이 끓어오르고 있다.
또한 하코네가 유명해진 것은 하코네에키덴(箱根駅伝)으로 불리는 전국대학생 역전마라톤대회로 정초의 생중계는 일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후지산과 더불어 하코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검문소인 하코네세키쇼(関所)는 에도시대(江戸時代)에 교토에서 에도로 들어오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던 곳으로 주변에는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이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이러한 땅 하코네에 고구려인은 일찍부터 진출하여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흔적을 찾아 나선 날 한일문화답사 단원들 가슴은 몹시 설레였다. 오다큐선(小田急線)의 “로망스카”를 타고 하코네로 출발하는 아침, 마치 봄 소풍이라도 가는 양 답사단원들은 들떠 있었다.
여성들은 어딜가나 “온천”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빡빡한 답사일정 때문에 이번에도 끝내 온천은커녕 족욕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기억은 아쉽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장군들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 “닛코(日光)를 보지 않고는 일본을 봤다고 하지마라(日光見なければ結構というな)”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하코네를 보지 않고는 도쿄를 말하지 마라.”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도쿄 관광코스에 거의 빠지지 않는 곳이 하코네다. 이곳에 우리가 찾아가려는 하코네신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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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코네 관광과 프리패스 안내전단, 에누리 된 프리패스권으로 하코네 왕복철도와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어, 해적선, 순회버스 등을 탈 수 있으며 한국인들을 위해 한글로 자세한 설명을 해두었다. |
하코네로 가는 교통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신주쿠에서 출발하는 오다큐선 “로망스카”처럼 편리한 것도 없다. 일반 철도를 이용하면 몇 번을 갈아타야 갈 수 있는 하코네는 시간과 싸우는 답사팀에게는 비싸지만 로망스카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코네관광과 연계한 하코네프리패스는 한 사람당 5,000엔 하지만 현지에 가서 일일이 돈을 주고 표를 끊는 것보다는 유리하다.
왕복철도와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어, 해적선, 순회버스 등을 탈 수 있으며 한국인들을 위해 한글로 자세한 설명을 해두었다. “하코네신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만, 신사를 안내해주실 수 있습니까?” 출발 전 한국인임을 밝히고 하코네신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 신관은 망설이면서 “그날은 신사에 바쁜 행사가 있어 개별 안내가 어렵다.”라고 했다.
사이타마현의 고마신사(高麗, 고구려를 뜻함)나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의 다카쿠신사(高來神社, 바뀌기 전 이름은 고구려신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대답이었다. 이 두 곳은 흔쾌히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하코네신사는 달랐다.
바빠서 안내를 못 하겠다는데 억지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끊기 전 질문을 했다. “기록에 보면 하코네신사와 한국의 고마(고구려)와는 관련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정말 그렇습니까?"라는 질문에 신관은 의외인 듯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내 잠시 기다리란다. 얼마가 지났을까 신관은 전화통에다 “우리 신사와 고마와는 관계가 없습니다.”라면서 차갑게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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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전차 안 풍경 이날은 2량짜리가 운행되었다.(왼쪽) 좁은 산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열차 안에서 찍은 사진(오른쪽) |
그러나 미하시(三橋健) 씨는 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小学館)에서 하코네 신사는 고구려대신(高麗大神, 고마오오카미)을 모시고 있다고 분명하게 썼다. 하코네신사는 처음에는 반야사(般若寺)로 있다가 이후 동복사(東福寺)로 바꾸었고 757년에 만권상인(万巻上人)이 신전을 지어 고구려의 두 신인 고마가타(駒形)와 노젠(能善) 신을 모시게 된 것이다.
하코네신사라는 명칭은 1868 명치유신 때 새로붙인 이름으로 명치정부의 신불분리(神仏分離)에 따른 것이다. 신주쿠에서 특급 하코네 로망스카가 한 시간 반을 달려 종점 유모토역(湯本驛)에 우리를 내려 준 시각은 오전 10시 반. 하코네신사로 가는 길은 버스로 가는 방법도 있으나 대부분 유모토 역에서 출발하는 등산열차라 부르는 협궤열차를 타는 것이 고정코스다. 구시대 유물 같은 1량짜리 전차는 지그재그로 된 산길을 힘겹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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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열차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왼쪽) 소운잔(오른쪽)까지 간다. |
땀을 뻘뻘 흘리며 더는 오르지 못할 때 전차는 끝이 나며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하코네 등산케이블이다. 철도처럼 생긴 것이 위에는 케이블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경사가 심한 코스를 올라 조운산(早雲山, 소운잔)까지 가서 다시 외줄로 가는 로프웨어를 타야 한다.
지금도 유황이 펄펄 끓어오르는 오와쿠다니(大涌谷)계곡까지 우리를 실어다 줄 로프웨이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관리요원들이 한 차에 6명씩 태우는 바람에 일행은 두 차에 나눠 타게 되었는데 단원 가운데 한 명이 차에 탑승하기 전에 큰 소리로 말을 건넨다. “잘들 보십시오. 지금 우리 발아래 펼쳐질 하코네 지역을 개발한 조상님들이 바로 고구려인들이랍니다.” 단희린 교수의 자료를 머릿 속에 그리던 회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떡인다.
단희린 교수는 《일본에 남아있는 고대조선, 日本に残る古代朝鮮》에서 고마신사의 신은 이즈산의 이즈신사, 하코네산의 하코네신사에서 모시는 신과 같은 신이라고 했다. 또 그는 《하코네산개발과 고려문화》를 인용하여 이르길 “아시노호수(芦の湖, 아시노코)에 있는 하코네신사는 나라(奈良)이전에는 고마다케(駒ヶ岳)산 정상에 있었던 것으로 이것을 코마다케권현(駒岳權現)이라 불렀다. 이 신은 오이소(大磯)의 고려산 정상에서 모시는 신으로 하코네 산의 역사는 고마신사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하코네는 고구려인에 의해 최초로 개발의 삽질이 시작된 곳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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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프웨이로 도겐다이까지 가는 도중에 오와쿠다니에서 잠시 쉰다, 유황이 끓어 오르는 로프웨이 밑 오와쿠다니계곡(오른쪽) |
고구려인들의 첫 삽질로 개발한 하코네 지역
1,300여 년 전! 고구려인들은 이 골짜기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피와 땀을 쏟아 하코네를 개발했다. 그 첫 삽질을 한곳이 어디일까? 로프웨이가 움직인다. 정차장을 벗어난 차는 외줄을 타고 천 길 낭떠러지를 유유히 건너간다. 오른쪽 건너편엔 흰 눈을 뒤집어쓴 겨울의 후지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밑으로 아시노호수 물빛이 반짝인다.
지금 사람들은 오로지 관광을 위해 셔터를 눌러가며 산뜻한 마음으로 로프웨이를 즐기지만 고대 사람들에게 후지는 신령의 산이었다. 높고 높은 곳일수록 신령스러움은 더해간다. 산악신앙은 어느 민족에게나 높은 곳이 신령스런 곳이라는 믿음에서 생겨난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저 많은 봉우리 중 하나인 하코네산 정상에 고구려인들은 사당을 지었다. 멸망한 조국 고구려를 위해 천지신명께 눈물로 기도드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가나가와현 고려산 정상에서 모시던 고마신사(高麗神社)의 신을 이곳에서 권현한다. 권현(權現, 곤겐)이란 불모의 땅에 자신이 모실 새로운 신을 모셔와 자리 잡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마라톤으로 말하면 성화 봉송자들이 다음 주자를 위해 점화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경우 수십 수백 개의 성화봉은 같은 의미가 있다.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일본의 권현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코네신사의 신관은 “하코네신사와 고구려는 관계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마치 성화 봉송자로부터 채화된 성화불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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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개 먹으면 10년 장수한다는 유황온천물에 삶아 까매진 달걀을 파는 가게(왼쪽). 일본말로 “구로다마고”라고 하는 이 달걀은 1개에 우리 돈 2,000원꼴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다. (오른쪽) |
하코네 신관이 고마신사(高麗神社), 이즈신사(伊豆神社), 하코네신사(箱根神社)에서 모시는 신은 모두 같다라는 문헌을 부정하면서 “전혀 관계없다.”라는 발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