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신사참배를 끝내 거부한 마산의 잔다르크 ‘김두석’
이윤옥
배달겨레 단군의 나라
그 자손들 오순도순 사는 곳에
늑대 탈 뒤집어쓴 왜놈 나타나
아마테라스 천조대신 믿으라
고래고래 소리 내지르며
조선 천지에 신사를 만들더니
고개 조아려 모시지 않는다고
잡아 가두길 벌써 여러 해
제 조상 귀하면 남의 조상도 귀한 법
목숨은 내놓아도
조상신은 못 바꾼다 번번이 호통 치매
돌아 온건 감옥소 차디찬 철창신세
학교도 쫓겨나고 직장도 없이
늙은 어머니 굶주려도
홀로 정한 양심의 서릿발
추호의 흔들림 없이 지켜낸
신사참배 거부
민족 자존심 높은 마산의 잔다르크
그의 공적 돌비석에 없지만
그 이름 석 자 속엔 이미
북두(北斗)의 우뚝함 새겨져 있어
천추에 기억되리
그 곧은 절개.
![]() |
||
▲ 일제는 전국에 신사를 만들어 참배토록 했으며 거부하는 자들을 투옥시켰다. ①강원신사, ②대전신사, ③원산신사, ④인천신사, ⑤마산신사, ⑥용두산신사 |
김두석 애국지사 (金斗石, 1915.11.17-2004.1.7)
“우리는 아침 궁성요배로부터 정오묵도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정면충돌하였다. 다른 죄수들은 규칙에 따라 아침 시간에는 일어나 동쪽을 향하여 일본 천황에게 절하고 정오 12시에 사이렌이 울리면 일제히 일어나 머리를 숙여 나라를 위해, 죽은 영령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는데, 나는 그와 반대로 꿇어앉았다.”
김두석 애국지사의 증언대로라면 이는 죽음을 불사한 행동이다. 모두 다 같이 한 곳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는데 혼자만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았으니 왜놈 순사 눈에서 불꽃이 튀길만하다. “네 이년, 불경스럽다. 궁성을 향하지 못할꼬” 큰 칼 찬 왜놈의 붉으락푸르락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우리의 김두석 애국지사는 호락호락 궁성요배에 응하지 않았다. 그것도 무려 5번이나 신사참배거부로 감옥을 드나들었으니 가히 그 높은 기개는 일반인이 흉내 낼 수 없는 절개다.
신사참배 거부로 김두석 애국지사는 마산의 민족학교인 의신여학교 교사 자리를 박탈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일로 인해 요시찰 감시 대상 인물이 되어 5회에 걸친 구금이 이어졌고 6개월간 모진 옥고를 치러야 했다.
<평양에서 고향 마산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자 마산경찰서에서 호출이 왔다. 요주의 인물이라고 감시 중인 모양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마산경찰서로 갔다. 어머니는 경찰서 마당에 계시고 나는 고등계 형사실로 불려갔다. 형사가 물었다.
“평양 유치장엔 며칠 있었나?”
“28일간 있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신사참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신사참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말을 하자마자
“이년의 소지품을 여기 두고 유치장으로 데려갓.”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에또(江藤)라는 간수가 내가 앉았던 의자를 빼내 하마터면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쳐질 뻔했다. 나는 바로 안이숙 선생님께 받은 여름 핸드백과 언니에게 받은 팔목시계와 꽃양산을 압수당하고 간수 손에 끌려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뒤 줄임)
일제에 굴하지 않고 겨레의 자존심을 지킨 김두석 애국지사는 정부의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 김두석 애국지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글쓴이의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책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