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정석현 기자] 안악3호분은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일제시기의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설리)에 있다. 무덤은 357년(고국원왕 27)에 쌓았는데, 고구려의 전형적인 돌방흙무덤[석실봉토분]으로 널길과 앞방, 곁방, 널방을 가진 구조이다.
천장과 각 돌방의 벽면에 인물과 풍속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벽화를 그렸는데, 특히 앞방의 오른쪽 곁방 벽면의 무덤 주인공 부부의 초상화와 주인공의 행차장면을 그린 회랑의 대행렬도가 유명하다. 이밖에도 방앗간, 우물, 부엌, 고깃간, 차고, 외양간, 마굿간 등을 그려 4세기 중반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묵서[먹으로 쓴 글]는 앞방 서벽 좌측 장하독(帳下督) 위에 있는데, 7행 68자이다.
▲ 안악3호분묵서명(安岳三號墳墨書銘)
그 내용은 동수(冬壽)라는 인물의 사망일자, 작위, 관직, 고향과 나이 등을 기술한 것이다. 묵서 이외에 벽화의 군데군데에 붉은 글씨로 벽화에 그려진 인물의 이름이나 관직[주인공의 속관으로 추정] 등을 적은 것들이 발견된다. 안악3호분의 주인공과 관련하여 현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묘지문의 내용을 주목하여 그 주인공을 동수로 보고 있다. 반면에 안악3호분의 주인공을 왕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는데, 주로 북한의 학자들이 이를 지지하였다. 그 근거로 벽화의 대행렬도에 왕의 깃발을 상징하는 ‘성상번(聖上幡)’이라는 표현이 보이고, 초상화의 주인공이 고구려왕만 착용할 수 있는 ‘백라관(白羅冠:흰색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때 동수(冬壽)는 왕과 함께 묻힌 신하로 이해한다. 다만 왕이 구체적으로 누구냐에 대하여 고국원왕설과 미천왕설로 엇갈리고 있다. 안악3호분은 무덤을 쌓은 연대를 알 수 있어 고분벽화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벽화의 내용은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시각자료로서 적극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연대: 357년(고국원왕27년)
출토지: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구 황해도 안악군 용군면 유설리) 안악3호분
소재지:북한)-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구 황해도 안악군 용군면 유설리) 안악3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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