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
"이 박사(이승만)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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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山 曹奉岩(1899 ~ 1959) |
1959년 7월 31일. 저는 당신이 남기신 유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합법적 혁신정당인 진보당을 결성하였고, 1956년 5.15 대선에서 216만 표(득표율 23.8%)를 얻었던 당신께서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혐의를 받아 법살(法殺)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2011년 1월 2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당신의 사형판결이 무효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52년 만에 복권되고 있는 것은 사형 판결과 당신의 손상된 명예만이 아니라, 당신의 못 이룬 꿈이자 좌절된 이상, "우리 국민 대다수가 고루 잘 사는 나라", 그 복지국가 건설의 꿈일 것입니다.
좌우를 아우른 진보를 추구하셨던 당신이 반공체제가 낳은 해묵은 이념공세와 합리적 전향에 대한 변절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당신의 사상적 변천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저해하고 있어 가슴이 참으로 아픕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 글이 당신의 영전에 바치는 개인적인 추모사인 동시에 당신의 진면모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사회적인 경종(警鐘)인 바를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1956년 5.15선거 공약과 진보당 창당대회의 선언문 및 강령에서 드러난 제3의 길 노선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의 길과 시장자유의 독점자본주의의 길을 배제하고, ‘조국통일의 평화적 실현과 진정한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 임무를 규정했습니다. 이는 ‘양 극단이 아닌 그 중간의 길을 선택한다’는 1946년 당신의 공개 전향 당시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적 수준으로까지 완성되었습니다. 즉, 당신은 조국의 분단이라는 민족모순의 해결과 계급적 불평등의 해소 및 사회경제적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진보당은 혁명적 변혁세력이 아니라 평화적 의회주의 방식의 급진적 개혁세력이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평등적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계획적 민주주의를 지향한 당신의 민족적 사회민주주의는 오늘날의 국내 복지담론에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당신의 시대와는 달리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고, 이미 국민소득 2만 불이라는 충분한 물적 토대가 구축되어 있는 현 시대에서,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적 정치기제를 통한 복지국가의 건설은 더 이상 이상주의가 아니라 민생불안과 사회모순의 대안으로 추진해야 할 당면과제이자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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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7월 10일 새로 선출된 제2대 후반기 국회의장단. 좌로부터 윤치영 부의장, 신익희 의장, 조봉암 부의장 |
당신은 평화통일 복지국가의 건설에 대한 야심을 품은 이상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하고 체계적인 현실 파악에 기초하여 난세에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였습니다. 높은 이상과 더불어 현실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능력, 원칙에 기초한 유연하고 타협적인 자세 등은 현 시기를 살아가는 국내 정치세력에게도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명백한 진보주의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정치적 이상이었던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해 보수야당 정치세력과의 '연합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통합적 정치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호헌동지회의 신당창당에 참여하고자 한 것과 1956년 대선 때 복지국가 정책 수용을 조건으로 한 후보단일화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 역사란 과거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해석의 교환”이라는 말로 유명한 카(E. H. Carr)는 이어서 “현대인은 그가 지나온 저 희미한 빛 속을 열심히 되돌아보는데, 이는 그 가냘픈 빛이 그가 지금 가고 있는 어두운 길을 비춰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당신과 진보당의 역사, 그 ‘오래된 미래’에 대한 반추는 과거에 대한 솔직한 대면 속에서 건강한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현재적 실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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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에 있는 조봉암 선생님의 묘비 |
해방에서 분단과 전쟁에 이르는 역전(逆轉)의 과정, 반공규율사회의 형성, 내전 이후 국가권력의 폭력적 관철을 통해 한국 사회는 저항 없는 우익사회 재편되어갔습니다. 그 와중에 자유당과 민주국민당-민주당으로 이루어진 보수정치체제를 위협하면서 등장한 당신과 진보당의 정치 궤적은 1950년대 한국정치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안보를 위한 반공’의 명분으로 다시금 침잠된 엄혹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당신의 비극적인 최후를 고려해볼 때, (외람된 비유겠으나) 당신과 같은 ‘미숙한 시대정신이 낳은 사생아’의 출현이 반복되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유시민 씨가 항소이유서의 말미에 인용한 19세기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Nikolai Nekrasov)의 시구를, 당신의 삶에서도 읽어냅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 슬픔, 그 노여움. 잊지 않겠습니다
글쓴이: 손하늘
2011년 청심국제중학교(CSIA) 졸업
2012년 예일대학교 국제영어토론대회 국가대표
2013년 글로벌 청소년 특별활동 소셜네트워크 학생리더
2014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