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5 (화)

  • 흐림동두천 29.3℃
  • 흐림강릉 30.6℃
  • 흐림서울 32.3℃
  • 구름많음대전 30.7℃
  • 구름조금대구 32.7℃
  • 구름많음울산 30.7℃
  • 구름조금광주 31.8℃
  • 맑음부산 32.0℃
  • 구름조금고창 32.7℃
  • 구름조금제주 31.6℃
  • 흐림강화 30.0℃
  • 흐림보은 29.2℃
  • 구름많음금산 31.4℃
  • 구름조금강진군 31.5℃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문화유산

우국지사 풍모를 잘 살린 최익현 초상화

보물 제1510호 최익현초상, 제주국립박물관

[그린경제/얼레빗 = 전수희 기자]  면암 최익현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보고 제자들과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면암 선생은 나라가 기울자 을사오적의 죄가 아비나 임금을 죽인 것 보다 더 크다는 상소를 올려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을 처단 할 것을 상소했다. 한편 1906년 2월 면암은 가묘(家廟)에 하직을 고하고 호남으로 떠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하는데 이때 그의 나이 74살의 고령이었다. 
 

 
   
 
 
 

최익현 초상화에는  “勉庵崔先生七十四歲像 毛冠本” , “乙巳孟春上澣定山郡守蔡龍臣圖寫”라고 쓰여있는 오른쪽 상하단 기록을 통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심의를 입고 털모자를 쓴 모습인데 심의(深衣)는 그가 위정척사에 노력한 전통 성리학자임을 잘 전해주고 털모자의 모관(毛冠)은 의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최익현의 애국적 풍모를 잘 보여준다.

채용신의 초기 작품에서 풍기는 조심스럽고 근실한 화법과 소박한 화격이 최익현의 우국지사적인 분위기를 더욱 잘 살려주고 있다.

* 규격(세로x가로) : 51.5 x 41.5 cm
* 보물 제1510호 최익현초상
* 국립제주박물관 소장(2007년 2월 27일 문화재 지정)

<자료: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