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순조 16년(1816년) 7월 폭염이 숨을 헐떡거리게 하는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금석학과 고증학에 한창 심취하고 있던 31살의 추사 김정희는 동무 김경연과 함께 비봉 꼭대기에 있는 수수께끼의 옛 비석을 조사·판독하기 위하여 가파른 암벽을 기어 올라갔지요. 그동안 이 빗돌은 조선 초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와 관련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끼 속의 비문을 짚어 나가다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비문내용이 무학대사와 전혀 다른 1천 수백 년 전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추사 자신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로 감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북한산진흥왕순수비, 국보 제3호, 국립중앙박물관
이 빗돌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장악한 뒤 임금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지요.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빗돌을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빗돌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썼으며, 자연 바윗돌에 2단의 층을 만들어 세웠지요. 윗부분이 일부 없어지고 지금 남아 있는 빗돌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32자 씩 12행의 해서체입니다.
추사는 빗돌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빗돌 옆에 발문을 쓰고 내려옵니다.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이다. 1816년 7월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어보았다. 1817년 6월 8일 김정희와 조인영이 와서 상세하게 살펴보았는데, 남아 있는 글자가 68자였다.” 지금이라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현상 변경”이란 죄목으로 처벌을 받았겠지만 당시 양반 옷차림으로 무더운 여름날 북한산 비봉까지 올라가 순수비를 확인하고 탁본을 뜬 추사의 학구열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것이며, 그런 노력이 그를 최고의 학자로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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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진흥왕순수비 탁본(왼쪽),추사 김정희가 순수비 옆면에 새긴 글씨(국립중앙박물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