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정석현 기자]
물은 굽은 것도 만나고
곧은 것도 만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구름은 스스로 모이고 흩어지니
천하지도 서먹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본래부터 고요하여
푸르다 누르다 말이 없는데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 시끄러워
좋고 나쁜 마음을 만든다
이 노래는 고려시대 스님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지은 “무심가(無心歌)” 가운데 일부로 백운화상은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직지”와 깊은 관계가 있는 분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펴냈으며, 독일의 금속활자본 《구텐유산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펴낸 것으로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전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임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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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세계기록문화유산 《직지》 |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활자판
이 《직지》를 가리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책의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인 것만 봐도 분명 이 책과 백운화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백운화상은 호는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景閑, 1298∼1374)으로 1298년(충열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백운화상은 1351년(충정왕 3, 54세) 5월에 중국 호주의 석옥(石屋)선사에게 불법을 구하였는데 그때 석옥선사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전해 받아 여기에 《선문염송》과 《치문경훈》 등을 참조로 그 내용을 보완하고 과거 7불(佛)과 인도 28조사(祖師), 중국 110선사 등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뽑아 307편에 이르는 게·송·찬·가·명·서·법어·문답 등을 수록하여 썼고 그가 입적한 3년 뒤인 1377년(우왕 3) 7월 그 제자들이 청주목의 교외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것이다.
이런 사실은 1985년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흥덕사가 발굴되었고, 이를 계기로 1986년 충청북도 주최의 <청주 흥덕사지 학술회의>를 통해 흥덕사가 학계에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92년에는 흥덕사 터의 정비와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지어 개관하였다.
또 2000년에는 《직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0청주인쇄출판박람회"를 열었으며, 2001년에는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림으로써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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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랍인형으로 만든 "금속활자 만들기" |
▲ 밀랍인형으로 만든 "조판하기"
▲ 밀랍인형이 움직이며 설명을 하자 슬기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큰 관심을 보이는 중국인들
현재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의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가면 원본은 아니지만 영인본으로나마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빛나는 금속활자본 《직지》를 만날 수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금속활자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점이다. 더구나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밀랍인형이 손을 움직이면서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고 있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기자가 찾은 어제(4일) 오후 2시 무렵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이러한 밀랍은형을 슬기전화(휴대폰)로 사진을 찍으며 무척이나 재미있어해 했다.
또 금속활자와 목활자의 차이점을 활자의 모양은 물론 그 특징 하나하나를 상세히 설명하는 친절함을 보여준 점과 활자로 인쇄한 뒤 어떻게 교정하는 것인 지까지 보여준 점은 밀랍인형을 활용한 것과 함께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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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활자와 금속활자의 차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
▲ 활자교정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다.
▲ 2년마다 세계기록문화유산 보존이나 활용에 크게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유네스코 직지상>
다만, 이 박물관도 옥에 티는 존재하는 법.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네스코 기록문화 유산을 전시하는 박물관 치고는 규모가 작다는 것과 더불어 금속활자 《직지》의 탄생을 있게 한 고려의 고승 백운화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간단하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해둘 필요가 있었다.
또 현재는 흥덕사 금당(대웅전)만 달랑 복원해놓았는데 더 나아가 뒷켠의 강당 건물과 양 옆의 회랑까지 복원한 다음 이를 고인쇄 체험마당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적지 않게 찾아오는 외국인 관람객들을 위해 적어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 정도의 이어폰 번역기기 정도는 마련해 두었어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말해둔다. 게다가 한국의 박물관이 한글은 없이 영어와 한자로만 간판을 써놓은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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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한 흥덕사 금당과 탑. |
▲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 아쉽게도 한자와 영어로만 간판을 달았고, 한글은 없다.
그러나 이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원본 《직지》가 현재 먼 타국 땅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 있는 박물관 가운데 손꼽힐만한 것으로 크게 손뼉을 쳐주어야만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