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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바친 의열투쟁으로 친일세력을 응징한 '오면직 선생'

12월의 독립운동가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오면직( 1894. 6. 15. ~ 1938. 5. 16. )  선생은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양산학교와 평양 대성중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 안악지국 기자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원하였다.

   선생은 1922년 스승인 김구 선생의 권유로 한국노병회에 가입한 후 한국노병회 파견원 신분으로 중국 하남성 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31년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상해부 및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하였으며, 한,중,일 아나키스트가 조직한 항일구국연맹에서 기관지인 '자유'를 발행하였다.

   
▲ 오면직 독립투사

 선생은 1932년 홍구공원 폭탄 투척 모의에 참가하였으며, 1933년 아리요시(有吉) 주중일본공사 암살을 시도하였다. 1934년 비밀결사대인 한국독립군특무대에서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였다.

 선생은 1936년 한국맹혈단을 조직하여 친일파 처단 및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1938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에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의열투쟁으로 일제에 항거한 오면직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또한 선생의 뜻을 기려 12월 17일(수)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열 예정이다.

   
 

아울러 12월 한 달 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공적>
 ○1919년 3·1만세운동 참여, 1920년 진남포경찰서 투탄
○1920년 조선ㆍ동아일보 안악지국 기자, 1921년 상해 망명
○1922년 한국노병회 가입, 하남성 군관학교 입학
○1930년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상해부 조직
○1935년 맹혈단 조직, 단장으로 군자금모집, 밀정처단 활동

<자료: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