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해보기나 했어”포기 모르는 뚝심
포드와 車 조립 기술 계약 맺어
어려운 과제 주고 해결책도 귀띔
현대자동차 일본판매 사장을 지냈던 김진수 씨는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현대상사 일본지점장을 할 때의 이야기다. 정주영은 그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일본 지점장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일본에 배를 팔아야지.”
“회장님 일본은 해상왕국인데다 조선왕국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에 배를 판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팔아보기나 했어?”
김진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주영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르니 그저 겁도 없이 말대꾸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팔아보기나 했어?”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헷갈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더 이상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사실 팔아보지 않았으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고 했다. 정 회장의 “팔아봤어?”란 말은 그에게 일생 큰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 뒤로부터 정주영을 회사의 회장이나 인생 선배가 아니라 스승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주영이 아우 인영에게 포드사와 자동차 조립 기술 계약을 맺고 들어오라는 갑작스런 명령을 했을 때 정인영은 형의 성격에 이력이 났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당연히 고개를 흔든 적이 있었다. 그 때 정주영이 대꾸한 말 “해보기나 했어?”는 그 뒤 정주영하면 따라붙는 꾸밈말이 되었다. 해보지 않고는 포기할 줄 모르는 정주영, 따라서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 해보지 않고는 말을 하지 않는 이들이 되었다.
역시 김진수 씨가 회고한 얘기다. 한번은 일본 한 호텔에서 정 회장을 수행해야 했었다. 자동차로 모시는데 그만 회장이 앉는 자리 왼쪽에 턱하니 앉아버린 것이다. 지프차라면 수행원이 뒷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고, 승용차라면 수행원이 조수석에 앉아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었던가? 아차 하고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는 다시 앞자리로 가기도 민망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주영은 이 때 “자네는 앞 쪽에 타게.”라든지 “승용차 예절로 모르나?”라면서 꾸중을 할지도 모른다고 맘을 졸였다. 하지만 정주영은 태연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동료처럼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정을 마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주영 회장은 늘 버럭 성질을 내거나 꾸중을 하지는 않는다. 조용히 한 수 가르쳐 줄 줄 아는 인생의 선배요 스승임을 증명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했다.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슬며시 귀띔해줄 줄 아는 멋진 대선배였다. 또 한 번은 김진수 씨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본사에서 정주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자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하고 약속을 잡아봐”
그래서 “네 알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한참을 뜸을 들인 뒤 정 회장은 “어떻게 할 건데?” 하고 물었다. 그래서 김진수 씨는 “제가 아는 경단련 회장 등을 통해 다리를 놓아서 약속을 받아낼 생각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정 회장은 나긋한 목소리로 “이거 봐, 그보다 이렇게 하면 어때? 아무개를 찾아가서 부탁하면 일이 쉽게 풀릴 거야.” 그는 금방 깨달았다고 했다. 흔히 조금 윗자리에만 있으면 아래 사람이 조금만 잘못했어도 호통을 치기 일쑤인데 그는 자근자근 그 방법을 귀띔해주는 멋진 성격을 소유한 경영자였던 것이다. 자기가 잘 안다고 “이것도 몰라?” 하는 식으로 윽박질러 봤자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한 항공사 부사장이 기내 사무장을 다룰 때 무릎을 꿇리고 욕까지 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역시 정주영이 웬만한 사람과 견줄 수 없는 뛰어난 인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호통보다 일하는 방법 알려줘
사회복지재단 설립 병원 세워
가난한 이웃에 의료 혜택 베풀어
1975년 10월 정부는 기업공개 대상업체 105개를 뽑아 발표한 뒤 공개를 종용했다. 당시 여론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면서 공개를 촉구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현대건설이 기업공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현대건설을 그냥 공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주식을 과연 누가 살 것인가? 살 능력이 없을 가난한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결국 소수의 주식 살 능력이 있는 또 다른 부자들이 주식을 사서 배를 불리는 건 아닐까? 현대건설이 돈을 벌어 그들 또 다른 부자들을 먹여 살릴 필요는 없다. 차라리 사회복지재단을 만들어 더 많은 어려운 이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내 철학에 맞는 일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일수록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많다. 그리고 돈이 없어 병 치료를 포기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병치레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를 제때 못 받아 더욱 아플 수밖에 없고, 계속 아프기에 더욱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정주영은 1977년 7월 서산사회복지사업재단을 설립하면서 우선 3년 안에 병원이 없어 치료받기 어려운 지역인 정읍, 보성, 인제, 보령, 영덕 등 5곳에 현대식 종합병원을 세우고 의료시혜 사업을 해나가기로 못 박아 밝혔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대가 기업 공개를 피하려고 꼼수를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해 9월 정읍을 시작으로 발족 한 해 안에 5곳 모두 병원의 기공식을 해냈다. 그런가 하면 대학교수 149명에게는 연구비와 지원금을, 해마다 1000명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었다. 그리고 불우한 장애인 등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업에 매년 3억 원씩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때 현대건설은 왜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수익성이 좋았을까? 그것은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가 회사가 세워진 이래 배당금을 모두 받지 않고 회사에 쌓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 부분에서도 정주영의 분명한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정주영은 자신이 낸 자서전을 통해 그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나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의 견실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가능한 한 큰 도움을 주려는 것이 이 아산재단을 세우는 나의 각오이다. 가난은 나라도 어찌하지 못한다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버려둘 수가 있는가? 나라가 못하면 기업이라도 그 한 부분을 해내는 것이 당연한 소치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수많은 종가가 이어내려오지만 진정 명문 종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를 쌓아 자신과 자신의 식구들의 배만 채워서 무슨 명문종가일 것인가? 돈을 버는 것보다 나눌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부자요 베풀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명문종가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리 현대가 돈을 벌어 부자가 됐다면 그것이 어찌 순전히 현대식구들만의 힘으로 꾸려진 것이겠는가? 대한민국이 있기에 또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현대건설의 부 가운데 일부를 현대아산재단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나 정주영에게 지워진 하늘의 명령이 아닐까?”
우리는 회를 거듭하면서 정주영의 철학을 배워간다. 물론 그에게 시행착오가 전혀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에게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철학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는 가고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정주영과 한 나라에 살았었다는 것도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지 않을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