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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2014 ‘익산 제석사지’ 목탑지, 강당지 정비공사 준공

[한국문화신문 = 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나선화)과 익산시(시장 박경철)는 지난 721일에 착공한 '익산 제석사터(益山 帝釋寺址, 사적 제405)’ 목탑터(木塔址)와 강당터(講堂址) 정비공사를 지난 17일 준공하였다. 

금년에 추진 된 ‘2014 익산 제석사지정비공사는 제석사지의 보존활용을 위해 수립된 제석사지 기본 정비계획(2012)’에 근거하여, 목탑지와 강당지를 정비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번 정비공사에서는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기단부를 판축 시공하고, 잔디를 심는 등의 처리가 진행되었다. 특히, 목탑지는 유실된 기단부의 판축을 복구하고, 두 조각으로 분리된 심초석을 결합하여 정비되었다.

   
▲ 제석사터 일대 항공사진

심초석(心礎石): 목탐의 심주(心柱, 목탑의 중심에 세우는 기둥)를 받치는 기둥받침 돌 

익산 제석사터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궁평(宮坪)마을에 위치한 백제 시대 절로서, 백제 무왕(武王, 600~641)이 도읍을 익산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하면서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를 통해 639(무왕 40)에 중창(重創,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일본 교토 청련원에 소장된 기록으로, 백제 관련 기사 중 백제 무왕이 익산 지역으로 천도(遷都)하여 제석사를 창건하였으며, 정관 13(639) 재로 소실된 이후 사리장엄을 수습하여 다시 절을 세웠다는 내용이 있음 

제석사지는 무왕 대의 익산 천도설을 밝힐 수 있는 익산 왕궁리 유적(益山 王宮里 遺蹟, 사적 제408)’과 관련 있는 절터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난 1998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 가꾸어 놓은 제석사터 전경(북 → 남)

   
▲ 가꾸어 놓은 제석사터 전경(남→북)

익산 제석사터일원은 지난 1993년 시굴조사를 시작하여, 2007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2007~2012, 3차례)가 진행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제석사터는 앞에 (中門)을 두고, 그 뒤에 탑()과 불전(佛展), 강당(講堂)이 배치되도록 구획한 11금당(金堂)의 가람배치(伽藍配置,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배치 양식)인 것인되었다. 아울러 제석사지 북편(300m 정도 떨어짐)에서는 정관 13년 불에 사찰의 폐기유적(廢棄遺蹟, 2003년 발견 / 4,743)이 확인되어 관세음응험기의 신빙성이 입증되었다.

      ※ 가람배치: 사찰 내에 위치한 탑과 금당, 강당 등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를 말함
11금당 가람배치: 사찰 경내에 남북축 선상으로 중문, , 금당(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건물), 강당(경전을 강설하는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형식
제석사 폐기유적: 익산 제석사지에서 북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유적으로, 정관 13(639) 제석사 화재로 소진된 건축 잔해물이 매립된 폐기장 

문화재청과 익산시는 2015년부터는 사적지의 토지 매입을 시작하여, 2022년까지 연차적으로 제석사터와 주변에 대한 정비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울러 익산 석사터복원정비공사를 통해 제석사의 성격과 형태 등을 파악함으로써, 형적인 백제 사찰 가람 형식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 조립된 목탑터 심초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