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성탄절 ‘법당’을 찾아 가는 발걸음은 묘했다. 오래전부터 ‘성탄절’날 스님들이 함께 캐럴송을 부르고 반대로 ‘부처님오신날’ 개신교 목사님들이 함께 석가탄신을 축하하는 모습은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기자가 직접 그 현장을 찾아 가보기는 처음이다.
“열린선원 (원장, 법현스님)”은 역촌동 시장 안에 있는 절이다. 절이라고 하기 보다는 도심 속의 포교당이라고나 할까? 재래시장이 주는 이미지에 걸맞는(?) 낡은 2층 건물을 오르자마자 왼쪽에는 교회가 차지하고 있고 그 교회를 거쳐 끝자락에 ‘열린선원’이 있다.
▲ 역촌동 열린선원 법당에서는 조촐히 성탄절 축하 케잌을 잘랐다
25일 성탄절 오전 11시인데 교회당 유리문은 닫혀있었다. 아마도 성탄전야 행사를 치뤘지 싶다. 반면 법당은 하나둘 아기예수 나심을 축하하러 오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날 법당을 찾아온 사람들은 불교신자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타 종교지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은 같았다. 열린선원을 찾아 온 사람들은 손에 손에 케잌을 들고와 법당에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촛불을 끄고 케잌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즐겼다.
▲ 열린마음으로 열린선원을 이끄는 법현스님
" 기독교든 불교든 열린 마음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이지요. 예수의 나심은 그런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종교든 극단이 문제지 예수를 믿는 분들도 좋은 분들이 참 많습니다." 라고 말하는 열린선원 원장 법현스님은 알기 쉬운 법문과 축원을 해주었다.
"뜻 맞는 여러분들과 함께 성탄절을 법당에서 보내게 되어 유익했다. 앞으로 여러분 가정에 좋은 일이 많이 있길 바란다." 이날 모임에 수원에서 참석한 박영훈 씨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 기자는 예수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아는 분의 안내로 “열린선원”의 성탄절 모습을 보고 싶어 따라나섰던 참이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더 아름다운 것은 다른 방향의 사람들을 끌어 안고 보듬어 가는 모습이다. 예수나 부처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도 한민족은 나름의 신앙을 갖고 살았다. 오순도순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며 말이다. 그러나 길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다 보니 종교간 갈등이 있어 온게 사실이다.
▲ 법현스님과 담소를 나누는 분들
그러나 종교의 본질이 결국 다르지 않고 ‘같은 길’임을 이해한다면 금세기 불미스런 종교 간의 갈등은 앞으로 해소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노력할때라야만 가능 할 것이다.
어제 성탄절날 그런 작은 움직임을 실천하는 “열린선원”에의 동참은 참으로 뜻 깊었다. 특히 법현스님의 “열린마음”이야 말로 이 시대 스스로의 아집에 문을 꽁꽁 걸어 닫고 있는 무늬만 종교인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강남의 으리으리한 교회당이 넘쳐나도 가난한 이들은 추위에 떨고 있고 법당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비가 새고 조금은 허름한 법당이지만 마음 만큼은 우주를 품고 있는 “열린선원”이 왠지 크고 넓게 느껴졌다. 참된 신앙과 종교는 크기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불교 신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자의 마음은 변덕스럽다.
이름 없는 시골의 작은 교회당을 지키며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늙으신 목사님을 뵈면 교회당도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밝아오는 2015년 한 해는 종교간 거리를 더욱 좁히는, 그래서 거기서부터 희망과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가 넘쳐 나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낡은 2층 계단을 내려왔다.
마침 시장 골목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펴지고 있었고 시장 입구에 세워둔 크리스마스트리는 짧은 겨울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 “삶이 있는 곳에 도가 있지요” 라고 말하는 열린선원의 법현스님은?
태고종 법현스님이 시장바닥에 선원을 세운 것은 2005년 일이다. 법현스님은 불교종단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불교계 모든 교단에 두루 통하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감사를 맡고 있어 국내 종교계에도 마당발로 통해 개원식엔 타 종단 승려와 목사 등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참석했다. 법현스님은 불교계 청년활동이 미약하기 그지없는 1970년대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고, 중앙대 재학 때는 불교학생회장과 대학생불교연합회 서울지부장까지 지냈다. 최근에 펴낸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에서 스님은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의 모습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그리고 그믐달로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 다르게 보일 뿐
제 모양은 그대로 하나인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냇가의 버드나무는 초동에게도 꺾이고
소에게도 꺾이는 힘없는 존재이지만
그때마다 새 가지를 내어 푸른빛을 자랑하고
초동(樵童)의 입술로 다가가면 아름다운 피리소리마저 낸다
그렇게 살았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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