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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조선의 고문서 약탈에 앞장선 '데라우치문고'전 열려

국립고궁박물관, 2월 22일까지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는 1910년 5월 제3대 한국통감부 통감으로 부임하여 한일병탄에 앞장 선 인물이다. 그 공로로 그는 초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일제가 고종황제를 독살하고 황후를 시해한 뒤 빼앗은 조선의 총독이란 결코 한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는 인물이다.

   
▲ 현재 야마구치현립대학에 있는 데라우치문고는 얼마나 많은 조선의 전적류를 약탈해 갔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오른쪽은 조선총독 데라우치

특히 그는 항일운동을 벌이는 독립투사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기에 선열들은 “데라우치총독 암살”을 꾀했다. 최중호 독립투사도 1911년 조선침략의 우두머리인 조선총독 데라우치 암살 계획에 앞장서다 투옥되었던 분이다. 이처럼 선열들은 일제의 앞잡이들 처단에 목숨을 바쳤다.

조선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조선인을 함부로 죽이고 다루는데 앞장선 데라우치는 그런 죄만 있는 게 아니다. 용서 할 수 없는 일이 어디 하나둘이랴만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의 고문헌들을 통째로 도둑질한 죄다. 그는 조선총독시절 규장각 등에 함부로 드나들면서 값나가고 귀중한 문헌은 모조리 싹쓸이 해 갔는데 얼마나 많이 훔쳐갔으면 자신의 고향  야마구치에 가서 <테라우치문고>를 열었을까? 

 

   
▲ 데라우치 암살 사건에 앞장선 최중호 독립투사

<데라우치문고>는 그가 훔쳐간 고문헌 전적류 18,000여 점을 그의 사후 아들 수일(壽一)이 1922년 고향인 야마구치시에 <데라우치문고> 라는 도서관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으며 이것야말로  부자로 이어지는 문화재 약탈의 전승이다.

데라우치가 조선관련 문화재를 끌어모으기 시작한 것은 조선총독 취임 때부터이다. 그의 곁에는 책 전문가인 고도소헤이(工藤壯平, 1880-1957)가 항상 곁에 있었는데 데라우치는 그를 조선총독부 내대신비서관(內大臣秘書官) 등의 자리를 주어 고서묵적(古書墨蹟)을 조사한다는 핑계로 규장각 등의 고문헌을 마음대로 주무르게 했다.

군인 출신의 무식한 데라우치를 도와 고도소헤이는 값나가는 유구한 고서들을 데라우치 손에 넘겨주었다. 지금 야마구치현립대학 도서관에 있는 데라우치문고 (1957년에 데라우치문고는 야마구치현립여자단기대학에 기증했다가 현재는 야마구치현립대학 부속도서관 소속으로 바뀌었다)는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 1923년 당시 데라우치문고 전경(사진 출처 경남대학교 <데라우치문고 조선시대 서화>

《유실된 조선 문화 유산-식민지 하에서의 문화재 약탈, 유출, 반환·공개- ,  동경 고려박물관 발간》에 보면   “데라우치의 규장각 조사는 수집과 병행되었는데 조사와 수집은 한마디로 일체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조사를 빙자한 약탈인 것이다.

약탈된 문화재 가운데는 ‘정축입학도첩(丁丑入學圖帖)’도 들어 있는데 이는 순조임금의 장남인 효명세자 (1809-1830)가 9살 되던 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취학할 때의 의식(儀式)을 기록한 도첩(圖帖)이다. 또한 추사 김정희의 ‘완당법첩조납인변서(阮堂法帖曺納人辯書)’ 도 있는데 이는 서법(書法)을 손수 기록한 책으로 높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는 자료이다.

다행히 이 두 가지를 포함한 일부 문화재가 1996년 경남대학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반환되었다. 경남대학과 야마구치대학이 자매결연을 맺어 꾸준한 문화재반환 노력을 거듭하여 얻은 결실이다. 이들 문화재는 1997년 1월 24일 98종 135점을 반환받게 되었는데 경남대학은 특별전시회를 연바있다.

 

   
▲ 데라우치문고 가운데 <제신제전> . 《제신제진》은 영조의 치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1760년(영조 36)청계천 준설사업의 완공을 기념하여 4월 16일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에서 시사(試射}를 행한 뒤 영화당(暎花堂)에서 사선(賜膳)하는 내용을 담은 기록화이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 고국으로 돌아온 데라우치문고" 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경남대학교박물관 소장 데라우치문고(寺內文庫) 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돌아보고, 이들 자료의 학술적 의의를 밝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돌아온 문화재 총서 2’ 출간을 기념하여 마련된 것이다.

1996년 1월 24일은 뜻 깊은 날이다. 데라우치가 훔쳐갔던 고문서의 일부가 경남대학교로 돌아온 날이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현 야마구치현립대학)으로부터 
우리 문화재 가운데 98종 135책 1축(1,995점)을 경남대학교에 반환했으며 이는 1990년 국내에 데라우치문고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이를 고국으로 찾아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경남대학교박물관 소장 데라우치문고는 학술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대학 등 민간과 공공기관이 함께 노력하여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시간을 내어 데라우치의 만행이 빚어낸 고문서 약탈 현장을 보러갔으면 한다.

 

<고국으로 돌아온 데라우치문고>전, 2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02-3701-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