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정석현 기자] 1993년 10월 18일 청주시 사직동 무심천 가에서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사뇌사’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청동 금고를 비롯하여 480여 점에 달하는 불교 관련 금속공예품은 당시 학계와 언론 등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중요 유물만 공개되었고 집중적인 조사와 연구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태평 15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청동 접시 내용 확인
국립청주박물관(관장 윤성용)은 2013년부터 지역문화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금속공예품에 대한 조사 연구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그 첫 번째 성과로 2014년 12월에 1993년에 발견된 사뇌사 금속공예품 학술조사보고서인 <청주 사뇌사 금속공예Ⅰ․Ⅱ>를 발간하였다. 이번 보고서 발간을 위한 재조사 과정에서 20년 만에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져 그 가치를 다시 조명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주목되는 것은 유물에 있는 명문을 판독하여 여러 사실을 새롭게 확인한 것이다. 사뇌사 유물 중 명문이 있는 유물은 총 16점으로, 기존에 ‘사뇌사’와 ‘사내사’를 비롯하여 절 이름과 연호, 간지가 확인되었으나 절의 실존 연간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였다. 특히 ‘태평 15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청동 접시는 발견 당시부터 주목되어 왔으나 명문 주변의 이물질로 인해 제대로 전문을 판독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太平十五年乙亥四月日造思內寺彌勒怙子入卜四兩一目 태평 15년 을해 4월일에 사내사 미륵(전) 호자를 만드는데 들어간 무게가 4량짜리 한 벌이다”라는 내용을 확인하였다. 태평 15년인 고려 1035년에 청주에는 ‘사내사’라는 절이 있었고 이 절에는 미륵전(또는 미륵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천여 년 전에는 ‘사뇌사’로 알려진 절이 ‘사내사’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 ‘사내사’가 새겨진 청동 접시(1035년(태평 15년) 제작), 오른쪽 접시에 새겨진 명문들
사내사(思內寺), 사뇌사(思惱寺)로 바뀌다
고려 1035년에 만들어진 ‘사내사’라고 새겨진 청동 접시를 비롯하여 ‘사내사’라고 새겨진 다른 유물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사내사는 최소 200여 년 이상 유지되었고, 이후 사뇌사(思惱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뇌사’라는 절 이름은 124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금고에서 보이며, 1226년에 사뇌사 하안거에서 설법을 한 진각국사 혜심의 행적이 기록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보아 사내사는 그 연유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13세기 초에 사뇌사로 이름이 바뀌었던 것이다.
▲ ‘사뇌사’가 새겨진 청동 금고(1249년(기유년) 제작 추정), 오른쪽 ‘사뇌사’가 새겨진 명문들
사뇌사, 고려시대 청주의 중요한 절이었다
한편 사내사나 사뇌사 외에 선원사나 용두사 등의 절 이름이 적힌 유물도 있는데, 이는 당시 사뇌사의 사세(寺勢)와 지역 절 사이 교류를 짐작하게 해 준다. 특히 ‘용두사龍頭寺’가 새겨진 청동 발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사찰인 용두사와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당시 청주지역의 절들이 교류가 활발하였고 사뇌사 역시 중요 절로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역 절간의 상관성과 더불어 지역불교문화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자료로 주목된다.
▲ 《청주 사뇌사 금속공예》 1,2 표지
이번 보고서 발간을 담당한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보고서가 관련 연구의 밑거름이 되어 이를 토대로 연구와 전시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1천여 년 전 청주에 모습을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국립청주박물관은 지역 불교 벌과 출토품을 지속적으로 조사 연구할 계획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