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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영웅의 장 107회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예당카의 부하들이 저마다 일어나 칼과 곤(棍), 철퇴 등을 움켜쥐고 족장 주변의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김충선을 내려다보는 예당카의 눈매가 섬뜩하도록 차가웠다.

“이곳이 내 부락이요, 내 부족이 있는 곳인데 어디로 대피한단 말이냐? 너희 조선 왕은 도망갈지 몰라도 난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선 왕이라고 부족장 예당카가 분명 말했다. 김충선은 순간적으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정체가 이미 탄로 난 것이 아닐까? 병장기를 휴대한 예허부족의 막료들이 김충선을 포위했다. ‘그럴 리가 없다!’ 김충선은 내심 부인했지만 예당카의 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조선에서 온 장수라고? 김충선! 그대가 착각한 것이 있다.”

김충선은 맥이 탁 풀렸다. 역시 예당카는 사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겁니까?”

예당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오만한 어조로 말문을 이었다.

“우리 만주의 여진족은 상대 적장을 암살하는 그런 비열한 방법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비록 서로의 의도가 달라서 전쟁을 벌이기는 하지만 우린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우린 하나의 민족이다.”

“그렇다면......?”

“건주여진의 칸이 내게 비밀서신을 보내왔다. 조선에서 온 망나니 장수가 직접 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잠입할 것이라고.”

“아!”

   
 
김충선은 기겁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으나 그것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기기묘묘한 격동(激動)이었다. 누르하치가 자신을 기만(欺瞞) 했다는 분노에 앞서 일말의 감동까지 느껴졌다.

“그 표정은 무엇인가?”

예당카는 김충선의 얼굴에 떠오른 변화를 지켜보면서 의혹을 느꼈는지 질문을 던졌다. 김충선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겁니다.”

“누르하치에게 말인가? 자네를 내게 보내고,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자네를 함정에 빠뜨려 제물로 삼으려는 칸을 존경한다?”

김충선은 추호도 비굴하지 않은 자세였다.

“여진의 전쟁에는 그들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지를 간과 하였습니다. 소생은 불민하여 그 점을 깨닫지 못하였사온데 이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니 크게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소생의 안목(眼目)을 새롭게 각성(覺性) 시켜 주었으니 어떻게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있겠나이까.”

김충선은 진심이었다. 예당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하였다. 이 젊은 놈은 참으로 기괴했다. 목전에 죽음이 임박 하였는데 어찌 저렇게 태연하며 의젓한가. 자신을 사지로 보낸 누르하치에 대한 원망은 그 어느 구석에도 없다. 세상에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을까. 실로 희귀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죽어도 후회 없는가? 여한이 없느냐?”

김충선의 대답은 명료했다.

“죄는 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