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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영웅의 장 108회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김충선이 자진하여 적장을 암살하고자 계책을 내 놓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계책을 받아드려 실행에 옮기고, 오히려 적장에게 김충선의 잠입을 알려서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주여진의 칸 누르하치의 행위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적장을 죽이려 했던 것은 죄목이 될 수 없다.”

김충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민족의 성전(聖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것이 죄입니다. 소생이 아직 어리고 일본과 조선의 전쟁터에서만 살벌하게 생존(生存)을 위한 싸움만 벌여 왔으니 오늘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김충선은 그 자리에서 예허부족의 족장 예당카에게 큰 절을 올렸다. 정성과 성심을 다한 예를 취하는 김충선을 예당카와 막료들은 예사롭지 않게 주시했다.

“이 예절의 의미는 무엇이냐?”

“사죄 올리는 것입니다. 여진 민족의 성스러운 전투에 외부인으로 개입한 것을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죽음으로서!”

김충선은 눈을 감고 목을 길게 늘어뜨렸다. 장검을 쥐고 있던 막료 중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칼은 살벌한 빛으로 번뜩였다.

“너의 목은 건주여진으로 돌려보내 질 것이다.”


   
 
막료의 장검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칼이 수직으로 떨어질 때면 김충선의 목도 함께 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다. 김충선의 뇌리에 짧은 생애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가 스쳐갔다. 실로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다. 일본에서 간자 수업을 받고 조선에 파견 되었던 일이며, 조선에서의 활동과 배신, 그리고 조국 일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절망과 조선으로의 투항 등 김충선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인생역경(人生逆境). 이제, 마감이 되는 건가. 김충선은 각오를 다지고 있었지만 한 가지 난제가 그를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이순신의 나라!’ 어찌할 것인가. 죽음은 절대 두렵지 않았다. 그가 두려운 것은 이순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역성혁명(逆成革命)의 대업을 성공하지 못하고 조선의 개벽(開闢)을 입으로만 떠들다가 이대로 사라지는 장부답지 못함이 서러운 것이다.

이순신을 떠올리자 갑자기 그리움이 복 바쳐 올랐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여 내가 가져올 여진과의 담판을 고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만일 이대로 영영 작별을 고하게 된다면 이순신장군이 꿈꾸는 나라는 어찌 되는 것인가? 글자 그대로 꿈꾸는 나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김충선의 상념은 극히 찰나지간이었으나 기억은 생생하였다. 막료의 칼이 위에서부터 비스듬히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멈추어라.”

예허부족장 예당케는 김충선을 처단하려는 부하의 행위를 중단 시켰다. 막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부족장을 향하였다. 김충선 역시 족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예당케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리려는 듯이 신색이 엄숙했다.

“우리가 패배했다. 졌다. 항복(降伏)한다.”

예허부족장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건주여진과의 한 판 대결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항복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유가 궁금해진 막료들이 목이 메어 울부짖었다.

“족장님, 왜 이러십니까?”

“우린 능히 누르하치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저 조선인 때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