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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헌책방의 산증인 역사의 뒤안길로

45년 헌책방 사장 <유림사> 배동근 대표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20여년 전만해도 청계천 6~7가에는 헌책방이 즐비했다. 뿐만이 아니라 헌책방을 순례하는 사람도 많아서 길을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새학기만 되면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는데 2평 남짓한 가게에 10여명의 손님이 들어서면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가게 가운데 하나가 배동근 선생이 대표로 있는 유림사이다. 배 사장은 헌책방 사업으로 45년간 잔뼈가 굵은 그야말로 현직 헌책방가의 최고 전문가이다. 그런 배 사장도 헌책방 사양길에다가 나이도 80이 되니 손을 놓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는 이달 말로 한 평생 끈을 놓지 않았던 헌책방 사업과 이별을 한다. 그가 청계천 헌책방가를 떠나기 전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청계천 헌책방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유림사가 바로 그  한책방가의 역사를 묵묵히 간직해온 곳이다  

 

   
▲ 헌책방가 앞 인도에까지 엄청난 책이 쌓여있다.

- 언제 어떤 계기로 헌책방을 하게 됐나요? 

내 고향이 부산인데 헌책방골목으로 유명한 보수동에 아버지가 책가게를 세 개나 세를 내주고 계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물려받아 1970년부터 헌책방 사업을 시작했으니까 벌써 45년 세월이 흐른 것이네요. 그러다 서울로 상경하여 1976년부터 청계천 헌책방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청계천에만도 어언 40여 년 세월을 산 셈입니다 그려.” 

- 어떻게 책방을 운영하셨나요? 

아침 8시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9시까지 문을 닫지 않았지요. 다른 책방이 모두 문을 닫아야만 그때야 문 닫을 준비를 했는데 혹시 늦게라도 손님이 왔다가 문을 닫은 것을 보게 되면 미안한 노릇이니까요. 어쨌든 나로서는 성실하게 운영하려고 노력 했습니다. 장사가 한창 잘 될 당시는 1년 내내 책을 사 모아두는데 그게 새학기만 되면 다 팔립니다.  

당시는 물자가 귀할 때였고, 나라가 어려웠기에 교과서도 서울에는 제대로 공급이 되었지만 시골에는 책이 없어 서울로 사러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책방이래야 2평 남짓밖에 안 되는데 책방 안에 손님이 10여 명만 들어오면 꿈쩍을 못했고, 그런 사이에 책 도둑도 한둘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런 도둑 쯤 있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장사가 잘되었었죠. 밥 먹을 시간은 고사하고 화장실 갈 틈도 없었습니다.“ 

-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예전엔 지금과 달리 출판사들이 책을 많이 찍었다가 안 팔리면 소위 땡처리란 걸 했어요. 그때 정보를 알아가지고 가서 대량 구매를 해옵니다. 그러면 손님들에게 싸게 팔수가 있었던 것도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였죠. 또 단골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잘 기억해 놓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구해놨다가 주면 참 좋아합니다. 여기 와 계신 최우성 소장님도 역사, 문화, 불교 서적을 주로 찾으시는데 다른데 없는 책이라며 좋아하시고 그렇게 우리 책방에 단골로 다니신 지가 벌써 20여 년이 가까워 오는가 봅니다.” 

 

   
▲ 유림사 앞에는 젊은 학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 유림사 배동근 대표와 부인 진혜숙 씨
단골이라는 최우성 소장은 전통건축설계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잠시 말을 거든다. 

나는 역사, 문화, 불교 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데 처음엔 청계천 헌책방을 두루 순례했었습니다. 그러다 한번 이곳에 오니 다른 곳에 없는 책이 많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 뒤 단골이 되었고, 한번 갈 때마다 5권 이상을 샀는데 한번은 15권까지 사오기도 했습니다. 사장님이 좋은 책을 많이 구해주시기도 하지만 싸게 주시니까 다른 데는 갈 수가 없었죠.(웃음)” 

- 보람 있는 일도 있었겠지요? 

새학기가 되면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두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왔다가 성실하게 일을 했고,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와서 일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어 학교를 다녔고 졸업을 하게 되어 본인들도 기뻐했고 나도 참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 애들이 청계천 헌책방가에서도 버텼는데 이제 무슨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해 참 기특했지요. 책을 사가서 시험에 합격해 고맙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책방에는 배동근 대표 혼자가 아니고 부인 진혜숙 씨가 나와 있다. 진혜숙 씨는 2000년 직장을 정년퇴직하면서 같이 일을 하게 됐다고 말하면서 대담을 거든다. “남편은 성질이 불같아서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지만 다행히 화를 땔 때 뿐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처음엔 아무 것도 몰라서 그 당시 아주 잘 팔리던 조순의 경제원론이 있느냐고 남편에게 수없이 묻다가 혼나기도 했어요. 이제는 남편이 나이가 많아 주로 나 혼자 나와서 책방을 보고 있습니다.” 

 

   
▲ 대담중인 배동근 대표

- 책방을 문 닫는다고 하던데 무슨 까닭인가요?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서 장사가 정말 안 됩니다. 예전 책이 귀할 때는 앞 몇 장만 있어도 사갈 정도였는데 요즘은 조금만 때가 묻거나 찢어지면 안 사가지요. 지금 여기 청계천 헌책방 상가도 잘 됐을 때는 책방이 130여 곳이나 됐었는데 지금은 20곳도 안 될 겁니다. 그나마도 팔려고 내놓은 곳이 많아요. 또 남편이 나이가 많아 집에 혼자 있는데 인제는 함께 있어야 할 때가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책방 문 닫는 심정을 물었다. 두 사람은 한결같이 시원섭섭하지요.” 한다. 배 사장은 45년 동안이나 함께 했던 책방을 그만 두는 심정이 그저 시원섭섭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이웃나라 일본 도쿄에도 간다(神田) 고서점가가 있다. 우리의 청계천 헌책방가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큰 규모로 아직도 건재하다. 청계천이 헌책방 위주라면 일본은 고서점과 헌책이 공존하는 형태로 철학, 문학, 역사, 미술, 사진과 같이 분야별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우리의 헌책방가도 단순한 교과서나 교양 위주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갖춘 고서점가로 발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대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는 눈에 띄는 책 한권을 샀다. 온양민속박물관과 계몽사에서 펴낸 올 컬러 도설 한국의 민속으로 값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였지만 단돈 2만원에 건네주었다. 큰 행운이었다. 일본은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집안이 많은데 이곳 유림사는 그럴 형편도 안 되는 모양이다. 하긴 사양길의 청계천 헌책방가에 누가 들어올 생각을 할 것인가

청계천 헌책방가의 산증인과 대담을 끝내는 기자의 가슴은 먹먹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수많은 책들과 동고동락한 배동근 사장의 마음이야 다 어찌 헤아릴까 싶었다. 이달 말이면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는 배동근 사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여생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유림사를 나왔다.

 

   
▲ 청계천 옆에는 헌책방가가 길게 늘어서 있다.
               

                                                                                            * 사진 : 최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