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기자]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은 2026년 5월 29일(금)부터 9월 27일(일)까지 4층 기획전시실Ⅱ에서 ‘안기역1485: 옛 안동으로 가는 플랫폼’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안동의 교통 거점이었던 안기역을 중심으로, 역참제도와 옛길, 그 길 위를 오갔던 사람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안기역 1485, 조선시대 안동으로 초대 1485년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의 완성과 함께 역참제도가 정비되었다. 이때 정비된 길과 역은 나라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조선시대 안동을 중심으로 펼쳐진 안기도(安奇道)는 서울과 경북 북부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망 가운데 하나였다. 안기도의 중심 역이었던 안기역(安奇驛)은 오늘날처럼 열차가 오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사람과 말, 공문서와 물자가 오가던 중요한 승강장(플랫폼)이었다. 이번 전시는 지금은 사라진 옛 역을 통해 조선시대 안동의 길과 역, 그리고 그 길을 운영하고 이용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가 찰방으로 머문 안기역의 일상 조선시대 전국에는 40여 곳의 찰방역이 거점으로 존재했고, 그에 따른 속역이 함께 운영되었다. 찰방역이었던
[우리문화신문=김영조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일상의 공포’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2025년 7월호를 발행하였다. 《누리잡지 담(談)》 7월호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실제 겪고 직접 써낸 ‘실화 속 공포’를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은 저주: 대나무 통에 가둔 최악의 저주술에서 디지털 저주까지 정진혁 인문학술교수(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저주를 부탁해: 귀신과 거래한 조선 사람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든 저주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장유(1587~1638)는 《계곡집》 「계곡만필」의 ‘저주에 관하여[詛呪之事]’에서 저주란 ‘어떤 사람을 그지없이 원망한 나머지 귀신에게 고하여 재앙을 내려 주도록 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저주란 귀신에게 괴롭힘을 의뢰하는 일종의 청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귀신에게 부탁하는 은밀하고 공격적인 청탁, 저주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유독 물질로 타자를 해치는 ‘고독(蠱毒)’이다. 고독은 벌레나 뱀과 같은 것들을 잡아 서로 잡아먹게 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가 저주의 힘이 깃든 고(蠱)가 되어 상대방에게 저주를 내리는 방식이다. 둘째, 영적인 존재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근일에 와서 소찬(素饌) 하시는 것이 예문(禮文)에 제도가 없을 뿐 아니오라, 또 일기가 춥고 기후가 고르지 못하온데 더구나 옥체에 오랜 병환이 계시고 슬퍼하심이 과도하시온데, 오랫동안 고기반찬을 궐하시오니, 청하옵건대, 고기반찬을 드시옵소서." 이는 《세종실록》 27년(1445) 1월 22일치 기록입니다만 이에 대한 세종의 답은 “어제 승정원에 전지하여 7일이 지나면 고기반찬을 먹겠다. 이것이 나의 뜻이다.”라고 답을 합니다. 그러나 7일이 지나도 다시 고기반찬을 들지 않자 신하들은 거듭 고기반찬 타령을 하지만 세종은 다시 “비록 청하지 않아도 마땅히 먹을 테니 더 번거롭게 청하지 말라”.고 선을 긋습니다. 흔히 궁궐에서는 산해진미과 고기반찬으로 식단을 짤 것 같지만 세종의 수라상(임금이 드시는 진지상)이 푸성귀로 차려졌던 때도 있었군요.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고려왕조의 전통을 이어 온 조선시대 궁궐에서 차리던 음식으로 전통적인 한국음식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궁중에서의 일상식은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과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初祖飯床), 점심의 낮것상으로 보통 네 차례 식사를 합니다.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