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 덕수궁 전깃불은 덜덜불, 건청궁 전깃불은 건달불 명성황후가 흉악한 일본 망나니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후 고종황제는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심한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습니다. 특히 변란은 밤에 일어난다며 밤을 무서워하던 고종황제는 “궁의 밤을 낮같이 밝히는 전기사업을 하라.”고 어명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 코온을 통해 일본 나가사키의 홈링거 상회에 발전기를 주문해다가 덕수궁에 전기발전소를 만들어 1900년 봄에 완공했습니다. 전기발전소를 만든 뒤 여러 손님을 불러 전기란 것을 구경시켜주려고 잔치를 막 시작하려는데 그만 전등이 꺼져버려 암흑천지가 됐었다고 합니다. 당황한 코온이 발전기를 만지고, 지붕에 올라가 전깃줄을 살피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를 마련하는 30여 분 동안 성냥불만 켜대다가 잔치 분위기는 맥이 빠졌지요. 덕수궁 전기발전소는 이후에도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얼마나 덜덜거렸던지 덕수궁 전깃불을 “덜덜불”이라 했고, 정동 골목은 “덜덜골목”이란 별명이 생겼습니다. 한편, 1887년 향원정 연못물로 수력발전을 일으켜 침전인 건청궁을 밝혔는데 제멋대로 꺼지고 켜지는 것은 물론 불빛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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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 기다림의 미학 된장과 슬로우푸드 요즈음 패스트푸드(즉석식)가 건강에 해롭다 하여 문제입니다. 패스트푸드란 주문하면 곧 먹을 수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요. 그릇은 종이로 되어 있어 한번 쓰고 버리며 조리도 오븐에서 데우는 정도로 간단하므로 손님의 주문에 신속하게 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패스트푸드들은 몸을 해치고, 환경공해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에 대비되는 음식으로 슬로우푸드가 서서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정성이 가득 배인 한국의 전통음식은 슬로우푸드의 대표적인 음식들입니다.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먹어온 김치, 된장, 간장, 젓갈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이며, 발효음식입니다. “친구와 장맛은 오래될수록 좋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먹거리들은 빨리 후다닥 만들어 먹는 패스트푸드와는 거리가 먼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음식입니다. 김치 역시 묵을수록 맛나는 먹거리로 바로 버무려 먹는 겉절이의 상큼함도 좋지만 묵을수록 맛이 나는 '묵은지'는 한국인이 아니면 그 깊은맛을 알 수 없는 오묘하면서도 군침이 도는 음식으로 요새 말하는 슬로우푸드 중의 슬로우푸드입니다. 묵은지 감자탕이나 묵은지 삼겹살등의 음식점에서는 평창
1808. 새색시 첫 친정나들이 땐 문중 어른께 친정 효도버선을 드렸다 한복을 입고 생활했던 옛날엔 양말이 아닌 버선을 남녀노소 모두 신었었지요. 아직 걸음을 잘 걷지 못하는 어린 아이에겐 수를 놓고 술을 달아 예쁘게 꾸민 타래버선을 신깁니다. 그런데 효도버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새색시가 혼인을 하고 처음 친정에 나들이를 하면 문중 어른께 무엇보다도 버선 한 켤레씩을 소중한 예물로 드렸습니다. 시댁으로 돌아올 때도 역시 같은 선물을 드리지요. 이 버선을 “효도버선”이라고 하는데 이 효도버선을 받은 웃어른들은 “효도봤다.”라면서 기뻐합니다. 이때 짝이 섞이지 않도록 켤레마다 한복판에 한자로 “八十”이라는 글자를 붉은 실로 뜹니다. 이는 80살까지 오래 사시라는 뜻인데 요즘은 80이 아니라 “上”이라는 글자를 떠야 하지 않을까요? 상수는 120살, 중수는 100살, 하수는 80살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br>버선에 관련된 재미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의심받았을 때 “버선목이라도 뒤집어 보일까?” 또는 “버선목이라 (오장을) 뒤집어 보이지도 못하고”라는 말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버선목에 이 잡을 때 보아야 알지”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지금 잘 산다고
1807. 국가지정문화재에는 무엇이 있을까? “국가지정문화재”란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중요문화재로서 국보·보물·중요무형문화재·사적·명승·천연기념물 및 중요민속자료 등 7개 유형으로 나뉩니다. 먼저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바탕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뽑는데 제1호 숭례문, 제70호 훈민정음, 제315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까지 모두 315종이 있지요. 그리고 ‘보물’은 ‘국보’에는 좀 못 미치지만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인데 흥인지문, 대동여지도 따위가 있습니다. 또 ‘사적’은 기념물 가운데 수원 화성, 경주 포석정지 등이 있지요. 그리고 ‘명승’(이름난 경치)으로는 담양 소쇄원, 진도 바닷길 등 45곳, ‘천연기념물’로는 광릉 크낙새 서식지, 노랑부리백로 등이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로는 종묘제례악·양주별산대놀이 등이 있고, ‘중요민속자료’는 덕온공주 당의, 안동 하회마을 등이 있습니다.
1806. 비장한 사랑 그리고 순종의 꽃 금낭화 “기꺼이 / 목숨 던져 / 금낭화 핀다오롯이 / 몸바쳐서 / 금낭화 핀다손목을 / 함께 묶지 / 아니하려면 / 사랑하지 마라발목을 / 함께 묶지 / 아니하려면 / 사랑하지 마라금낭화 / 꽃피는 뜻 / 오달지게도 / 비장한 일이다” 위 시는 김종제 시인의 “금낭화” 시 일부입니다. 사랑도 저렇게 목숨을 걸어하면 어떨까요? 금낭화가 피는 뜻은 오달지게도 비장한 일이라네요. 우리 토종 들꽃 금낭화는 연약하고 가녀린 줄기가 길게 나와 주머니 모양의 납작한 분홍색 꽃을 올망졸망 매달고 있는 꽃입니다. 꽃의 모양이 심장을 닮아 영어식 이름은 ‘bleeding heart’인데 우리 말로 풀어보면 ‘피가 흐르는 심장’이 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꽃의 모양이 여인네들이 치마 속에 넣고 다니던 주머니를 닮았다고 하여 ‘며느리주머니’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금낭화(錦囊花)는’ ‘아름다운 주머니를 닮은 꽃’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마치 입술 사이에 밥풀이 붙어 있는 듯하여 ‘밥풀꽃’이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꽃며느리밥풀꽃’과 혼동하기도 하지만 그 모양새는 아주 다릅니다. 금낭화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인데 꽃의 모양을 잘
오늘은 24절기의 다섯 번째 청명(淸明)이고, 내일은 한식입니다. 청명과 한식은 하루 차이거나 같은 날이어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날 성묘(省墓)를 갑니다. 옛날에는 한 해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 (中元, 7월 15일), 가을에는 한가위, 겨울에는 동지에 성묘를 했지요.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칩니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주는데 이를 사화(賜火)라 했습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습니다. 꺼지기 쉬운 불이어서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장화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구요.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1804. 조선시대 탐관오리를 공개처형했던 혜정교를 아십니까? 서울 광화문우체국 북쪽에 혜정교(惠政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세종 16년(1434) 10월 2일자에 보면 오목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처음으로 혜정교와 종묘(宗廟) 앞 거리에 설치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다리 위에서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를 벌주는 팽형 곧 끓는 가마솥 속에 죄인을 닮아 삶는 공개처형을 하기도 했지요. 이 팽형 절차를 보면 혜정교 한 가운데에 임시로 높다란 부뚜막을 만들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큰 가마솥을 겁니다. 솥에는 물을 붓고 아궁이에는 불을 땔 수 있도록 장작을 넣습니다. 그 앞쪽에 천막을 치고, 포도대장이 앉으면 팽형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진짜 팽형을 하는 건 아니고 죄인을 가마솥에 담고 솥뚜껑을 닫은 다음 구령에 따라 장작불을 지피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 불을 붙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솥 속에 든 죄인은 그 순간부터 삶아져서 죽은 시체처럼 시늉을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꺼낸 "살아있는 시체"를 식구들에게 넘기면 식구들은 미리 준비해간 칠성판에 이 "살아있는 시체"를 뉘여 집으로 데리고 가 격식대로 장례를 치릅
1803. 임금과 백성이 함께 복을 누린다는 경복궁 북경을 다녀온 사람들 가운데는 경복궁이 자금성에 견주어 너무 작다며 자괴감을 나타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궁궐의 차이를 단순히 규모만으로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우선 경복궁의 이름을 보면 정도전이 지은 이름으로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 두 글자를 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성과 임금이 모두 잘사는 태평성대를 꿈꾼 이름이지요. 이에 견주면 자금성의 “자(紫)”는 하늘의 아들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을 뜻하고, ”금(禁)“은 금지구역으로 이는 하늘의 아들 황제가 사는 곳으로 일반 백성은 감히 들어올 수 없는 금지된 성이란 뜻입니다. 결국, 경복궁은 임금이 백성과 함께 복을 누린다는 것이지만, 자금성은 황제와 백성 사이에 커다란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무엇이 더 의미가 있을까요? 또 자금성은 9,999칸인데 비해 경복궁은 999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자금성이 8,886칸인데 비해 경복궁은 7,225칸이었었다고 하지요. 다만, 일제가 많은 건물을 헐고 팔아버려 겨우 7
1802. 찌는 떡·치는 떡·빚는 떡·지지는 떡, 떡의 종류 “왔더니 가래떡, 올려놓고 웃기떡, 정들라 두텁떡, 수절과부 정절떡, 색시 속살 백설기, 오이 서리 기자떡, 주눅 드나 오그랑떡, 초승달이 달떡이지.” “정월보름 달떡이오 이월한식 송편이오 삼월삼짇 쑥떡이로다 사월팔일 느티떡 오월단오에 수리치떡 유월유두에 밀전병이라 칠월칠석에 수단이오 팔월가위 오려송편 구월구일 국화떡이라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새알병요 섣달에 골무떡이라” 위는 우리 겨레가 불렀던 떡 타령들입니다. 떡을 빚는 방법에 따라 종류를 가르면 먼저 찌는 떡은 다른 말로는 시루떡이라고도 하는데 가장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던 떡입니다. 이 떡에는 찰편, 수리치떡, 느티떡, 무시루떡, 물호박떡, 두텁떡 따위가 있습니다. 또 절구에 쳐서 빚는 치는 떡은 인절미, 개피떡, 수리치절편, 꿀편 등이 있으며, 또 낟알가루를 반죽하여 빚어 찌거나 끓는 물에 삶은 다음 고물을 입혀 만드는 빚는 떡은 송편, 석이단자, 밤단자, 쑥굴리, 수수경단 따위가 있지요. 그런가 하면 찹쌀, 차, 수수 등 찰기가 있는 낟알 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으로는 주악, 화전, 부꾸미 따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