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저는 우주를 보고 싶지만 하지만 전 못갑니다. 왜냐하면 영어도 가야되고 피아노도 가야되고 미술도 가야되고... 인터넷 블로그에 한 아이가 쓴 글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요즘 아이들은 바쁩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벌써 한글을 다 떼어야 하고 영어도 어지간한 표현은 마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지요. 본격적인 초등학교 수업이 시작되면 교과목에 이은 피아노, 미술은 기본이고 부모에 따라 추가되는 종목이 늘어납니다. ▲ 그때 아이들은 좁은 골목길이지만 저렇게 재미있게 놀았다.(선녀와나뭇꾼) ▲ 1960년 7월 31일 소년동아 기사 1960년 7월 31일자 소년동아일보에는 놀이터 없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에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을 달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좁다란 골목골목, 복잡한 행길가에서 사람들의 왕래에 거치적거리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딱하다. 어린이헌장을 다시 되새기고 어린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놀이시설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학교 운동장이 고작이다.라는 것이 기사의 요점입니다만 지금은 그래도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나 놀이시설은 그때에 견주면 많이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예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우리나라 전통성악곡인 가곡은 남자가 부르는 남창가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창가곡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곡은 또한 우조와 계면조로 구성이 돼 있는데요. 우조는 밝거나 힘 있고 활기찬 느낌의 가락이고, 계면조는 조금 어둡고 잔잔한 서정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신의 마음을 닦기 위해 했다는 정악 가운데 성악 특히 남창가곡은 정말 담백하면서도 저 가슴 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심연의 소리일 것입니다. ▲ 가곡 편락 "나무도~"를 불러 청중을 휘어잡았던 젊은 가객 이건형 그런데 남창가곡 가운데 반우반계 편락 “나무도”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반우반계란 처음에는 우조로 시작을 해서, 중간쯤 계면조로 바뀌게 돼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설을 가만히 들어보면 나무도 바위도 없는 곧 숨을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산에서 매에게 쫓기고 있는 까투리의 심정을 노래합니다. 그리곤 큰 바다 한 가운데 풍랑과 안개를 만나고, 해는 기울고, 노도 잃고 닻도 끊겨졌으며, 설상가상으로 도둑 떼를 만난 사공의 심경을 노래합니다. 이 편락 “나무도”를 젊은 가객은 힘 있게 그러나 담백하고 차분하게 불러갑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나 한 것
[그림경제=김영조 기자]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서면 우람한 석탑이 천정을 찌를 듯한 자태로 서 있는데 5층 높이의 이 거대한 탑은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 석탑입니다. 언뜻 보기에도 박물관에 놓여 있을 탑이 아닌 듯 보이는 이 석탑은 원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연리 부소산의 경천사에 있던 탑으로 1348년(충목왕 4) 건립된 탑입니다. 이 탑이 있던 경천사는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고려 왕실의 제삿날에 종종 추모제를 지냈던 곳으로 왕실의 왕래가 잦았던 절입니다. ▲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 석탑(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석탑의 1층 탑신석에 따르면 발원자는 대시주 중대광 진녕부원군 강융(姜融) 등 여러 명이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면서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하게 되기를 비손하는 뜻에서 1348년 3월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천사 석탑에는 목조건축의 기둥과 공포, 난간과 현판이 잘 표현되어 있고 기와가 정교하게 표현된 지붕돌(옥개석)로 덮여 있으며 기단부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밑에서부터 사자, 용, 연꽃, 소설 ≪서유기≫의 장면, 그리고 나한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1층부터 4층까지의 탑신부에는 부처의 법회장면이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요즘 뉴스는 쏟아지는 장맛비 소식으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서울경기 호우특보150mm, 중부지방 호우특보남부지방 폭염특보 , [날씨] 수도권 호우특보최고 150mm 더 온다, 서울 밤사이 200㎜ 호우최고 150㎜ 더 올 듯 같은 제목에서 보듯 텔레비전이건 신문이건 너도나도 호우 타령이지요. ▲ 큰비가 온 뒤 침수된 섬진강 하류지방(남원포유 제공) ≪조선왕조실록≫에서 호우(豪雨)를 찾아보면 ≪순종부록≫ 16권(1925) 7월 20일)에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부록≫은 일본인들의 손으로 간여하거나 쓰였기 때문에 크게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때문에 ≪조선왕조실록≫ 통틀어 ≪순종부록≫에 단 한번 나오는 이 호우(豪雨)는 분명이 우리가 쓰던 우리말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대신 대우(大雨)를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무려 960번이나 등장지요. 한자 豪는 호걸 또는 귀인으로 긍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만, 큰비가 사람들에게 호인이나 귀인 같이 좋은 손님일 수는 없습니다. 큰비를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 토박이말에는 무더기비, 자드락비, 채찍비, 억수, 달구비 같은 말들이 있지요. 이런 아름다운 많은 토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전통 가곡을 담은 국악 음반이 국내 음반 사상 최초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국악 전문 음반사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51)는 5일 음반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이 내년 봄 열리는 제54회 그래미상에서 서라운드 사운드와 월드뮤직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통보를 그래미상사무국 쪽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클래식, 가요, 전통음악을 통틀어 국내에서 녹음된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를 노래하는 조희선 가객 지난 2011년 9월 6일 언론에는 한국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고 떠들썩했다. 전통가곡은 조선 시대 문인의 시조를 관현악 반주에 실어 노래로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 음악의 고유 형식 중 하나로, 이미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그 전통가곡을 안방에서 듣는 기분은 어떨까? 지난 7월 12일 저녁 7시 (사)월하문화재단이 주최한 가곡과 함께 하는 월하예당선비문화체험관광 공연은 그야말로 안방 같은 편안한 공간, 가객과 연주자를 지척에 두고 감상하는 기막힌 행사였다. 가곡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면 가곡 공연이라면 지레 겁을 낼지도 모른다. 우선 귀에 잘 들어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도포(道袍)는 선비들이 평상시에 입던 겉옷이다. 조선 중기 이후 많이 입었으며, 관리들도 관청에 나아갈 때를 빼고는 사사로이 나들이를 할 때에는 대개 도포를 입었다. 도포의 기원에 대하여 ≪성호사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도교나 불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남당초고 南塘草稿≫에서는 관복인 직령공복을 일상복으로 할 수 없어 그것을 본떠 약간 변경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려의 포가 고려의 백저포가 되었고, 백저포는 명나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직령포가 되었으며, 직령포는 다시 도포로 변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 조선시대 선비들이 나들이 할 때 입었던 겉옷 ≪선조실록≫에 이홍망(李弘望)이 초록겹도포를 입었다는 내용이 도포 입기에 관한 맨 처음 기록이다. 또 ≪효종실록≫에는 도포를 입는 제도를 임진왜란 이후부터라고 하였다. 또 ≪순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옛날에는 사대부의 편복으로 직령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근세에는 도포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순조 이후에는 도포가 직령 대신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포는 원래 양반만 입도록 하였으나 조선 말기에는 백성들도 도포를 입었다. 도포의 깃섶고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차 뒤에 Baby in Car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 뜻이야 차 안에 아기가 타고 았어요.라는 것이 확실하다. 운전자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기를 태우고 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만일 이를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슨 말인지 알까? 아기가 있으니 내 차를 들이받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붙였다면 큰 잘못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차를받아도 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제발 쓸 데 없는 잘난 체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린경제=김영조 편집국장] 오늘 아침 뉴스는 쏟아지는 장맛비 소식으로 넘쳐난다. 그런데 서울경기 호우특보150mm, 중부지방 호우특보남부지방 폭염특보 , [날씨] 수도권 호우특보최고 150mm 더 온다, 서울 밤사이 200㎜ 호우최고 150㎜ 더 올 듯 같은 제목에서 보듯 텔레비전이건 신문이건 너도나도 호우 타령이다. ▲ 한결같이 호우(豪雨)라고 쓴 언론매체들의 큰비 뉴스 기사들 이 호우는 어디서 온 말일까?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에 따르면 호우(豪雨)는 한 마디로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 ごうう【豪雨】:激しい勢いで大量に降る雨。雨量がきわだって多い雨にいう。「集中―」라고 나와 있고 그를 번역하면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비란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호우(豪雨)를 찾아보면 ≪순종부록≫ 16권(1925) 7월 20일(양력)에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올 뿐이다. 그런데 이 ≪순종실록≫ 특히 ≪순종부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적극 간섭했기 때문에 크게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순종부록≫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선왕조실록≫은 아니다. 그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을 통틀어 ≪순종부록≫에 단 한번 나오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순창의 양사보 집안을 찾아가던 날은 제법 무더위가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완주에서 순천 방향으로 가다가 오수나들목(I.C)에서 빠져나간다. 완주에서 오수나들목까지 무려 10여 개의 굴(터널)이 이어지며 두메(깊은 산골)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사통팔달이 되어 서울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이 된다. 이어서 전북 순창의 동쪽 지역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 동계면 구미리에 이르면, 고려 공민왕 4년(1355년) 무렵부터 이어져 온 650여 년 내력의 한 명문가 남원 양(楊) 씨 집안이 터를 잡고 있다. 이 집안은 대대로 욕심을 버리고 베풀며 살았던 아름다운 선비 정신의 산실로 알려졌다. (사)옥천향토문화연구소(예전 순창은 옥천현이었다.) 양완욱 사무국장의 소개로 거북이마을 농촌체험학습 추진위원장인 양 씨 가문의 29대 후손 양병완 선생을 회관으로 찾았다. 손말틀(휴대폰)에서 판소리 춘향가 한 대목이 울려나왔던 양 선생은 기자를 환한 웃음으로 맞아준다. 알고 보니 양 선생은 얼마 전까지 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분이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판소리와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수풀 사이 샘에서 발을 씻고서 (濯足林泉間) 흰 바위 위에 편하게 누웠네 (悠然臥白石) 새소리에 문득 꿈을 깨고 보니 (夢驚幽鳥聲) 저무는 앞산 가랑비에 젖고 있네 (細雨前山夕)“ 위 시는 조선 경종 때 문인 임황(任璜)이 지은 “물가의 정자[水閣]”입니다. 무더운 여름 나무 그늘 아래 물가에서 탁족을 하고 널따란 바위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저물녘 숲으로 찾아드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 바라보니 안개 서린 앞산에서 가랑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이런 선경에 취해 있으면 더위는 저 멀리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등나무 아래의 피서객들(동아일보 1936년 7월 24일) 모레 토요일은 숨 막히는 더위의 시작인 초복이지요. 예전 선비들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릴 수 없기에 그저 조용히 탁족을 즐기며 마음을 씻었습니다. 그리곤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집니다. 그러다 죽부인을 껴안은 체 잠이 드는 것을 가장 좋은 피서법으로 알았지요. 원래 탁족(濯足)이란 말은 ’맹자’의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