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어찌하여 진주를 캐는 사람처럼 다투어(爭奈貪珠者) / 목숨 가벼이 여겨 바다 밑에 깊숙이 들어가나(輕生入海底) 이는 통일신라 말기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의 흥에 겨워(寓興)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이를 보면 이미 통일신라 때에도 진주를 캐러 바다 밑 깊숙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어의 이시필(李時弼, 16571724)이 지은 ≪소문사설(聞事說)≫에는 진주 캐는 법(採眞珠法)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시필이 청나라 연행(燕行) 시에 보고 들은 신문물을 중심으로 소개해 놓은 것인데 이 진주 캐는 법(採眞珠法)에 나오는 사람은 중국 남부지방의 소수민족인 단인(蜑人)입니다. ▲ ≪소문사설≫에는 중국 남부지방 단인들이 진주 캐는 법을 그려 놓았다. 단인은 긴 끈을 허리에 묶은 뒤 바구니를 가지고 물속에 들어간다. 조개를 주어 바구니에 넣으면 끈을 흔들어 배에 탄 사람으로 하여금 급히 끌어 올리게 한다. 만약 한 줄기 피가 물에 뜨면 물고기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이 내용 뒤에는 또 진주 기르는 법이라 하여 구멍이 없는 살아 있는 진주를 밀가루 반죽으로 싸서 오래 두면 진주 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사람들은 청자하면 전남 강진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아마도 강진에서 청자를 싣고 올라가다 풍랑을 만나 가라앉았던 배를 여러 척 인양한 뒤 빛을 본 청자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강진 청자보다 더 화려하고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 부안청자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부안 청자는 상감기법으로 새겨 넣은 물가풍경무늬와 구름학 무늬를 비롯하여 모란무늬, 연꽃무늬, 당초무늬 따위가 있는데 자토와 백토를 붓에 묻혀 그릇 주위에 그려 넣는 퇴화(堆花), 산화구리 물감을 써서 붉을 빛을 내는 동화(銅畵) 기법으로 장식한 국화무늬가 부안 청자의 특징입니다. ▲ 청자풀꽃무늬병, 청자모란국화나비무늬접시, 청자국화무늬병(전주박물관) 그런 부안청자가 뒤늦게 알려진 까닭의 하나는 사적 제69호. 지정면적 80,810㎡인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일대에 있는 고려 중기의 도요지가 일제강점기부터 심한 도굴로 인하여 우수한 파편을 간직한 퇴적층은 거의 파괴상태에 있었고, 그 밖의 지역도 거의 논밭으로 변하여 보존상태가 극히 나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부안군이 부안군 보안면 유천도요지 터에 2005년부터 200억 원을 들여 부안청자박물관을 짓고 200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어제는 24절기의 열한째로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든 소서(小暑)였습니다. 하지 무렵까지 모내기를 끝낸 벼는 소서 때쯤이면 김매기가 한창입니다. “소서가 넘으면 새 각시도 모를 심는다.”, “7월의 늦은 모는 행인도 달려들고, 지나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돕는다.”는 속담이 전합니다. 소서가 되어도 모내기를 끝내지 못했다면 새각시건 원님이건 달려들어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 뜨거운 여름. 염전에서는 불볕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사진작가 권정식 제공) 옛 사람들은 소서 때를 셋으로 나누어 초후(初侯)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中侯)에는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 다니며, 말후(末侯)에는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점점 더위가 극성을 부려가고 있는데 중후에 귀뚜라미가 기어 다닌다고 합니다. 날씨는 더워 견디기 어렵지만 이미 그 가운데는 가을이 잉태하고 있다는 얘기이지요. 섣달 그믐날은 달이 없이 캄캄한 세상이지만 보름달을 잉태하는 날과 같다는 이치입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므로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집니다. 특히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음식으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때 제일 맛이 나서 국수나 수
[그린경제=김영조 편집국장]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6월 27일 실국과장 회의에서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확대해 서울시교육청 특색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자교육 확대를 위해 현재 한자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창의적체험활동(창체) 시간에서 한자교육 시간을 확대하는 방안과, 퇴직 교사 등의 재능기부를 받아 방과후수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다. 이에 한글단체와 학부모단체는 강한 반대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 서울시교육청 문용린 교육감이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육 추진한다는 기사 여기서 한자 교육 요구를 보면 한자말은 한자를 써야만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 첫째는 한자를 잘 아는 기득권자들의 횡포이다. 이는 결국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다. 말글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다. 그래서 상대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영어를 쓴다면 그게 어디 소통인가? 예를 들어보자. 채무를 변제하시오.라고 하면서 이를 債務를 辨濟하시오.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그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뜻에 앞서 만일 한자 또는
▲ 가곡과 함께 하는 월하예당 선비문화 체험관광 포스터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시서화악가무(詩書畵樂歌舞)로 대표되는 선비문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전통 고유의 숭고한 문화유산이다. 그 선비문화의 핵심에는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오른 가곡(歌曲)이 있다. 가곡은 시조시를 5장 형식으로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엄중하고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선비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고유문화 자산인 가곡을 활용하여, 그에 걸맞은 선비문화의 타 분야를 접목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선비문화 체험관광을 개발하여 관광자원화 하려는 공연이 있다. 바로 월하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후원하는 가곡과 함께하는 월하예당 선비문화 체험관광이 그것이다. 장소는 고 김월하 선생이 살던 건물의 4층을 한옥 풍으로 인테리어 하여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공간활성화 사업에 선정이 되어 명인무대 등 선비문화를 골자로 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월하예당이며, 지난 6월 14일 제1회 공연을 시작으로 오는 10월 25 제 16회까지 진행된다. 이 공연은 옛 선비들이 가까이 했던 시서화다도를 가곡 공연과 접목하는 것으로 관
▲ 재일교포 김리박 시인의 장편서사시집 《삼도의 비가(三島の悲歌)》 책 표지, 일본 마도로출판사, 2013년 6월 [그린경제=김영조 기자]삼도(일본)의 좁은 숲을 벗어나 한국을 날아 구만리장천으로 오르는 새! 온 누리도 좁아 우주까지 활개 치는 새! 영원히 죽지 않고 펄펄 나는 불사조 그가 바로 교토의 시조시인 김리박이다. 그는 시시껍적한 삼도숲에서 끼이끼이 우는 그런 잡새가 아니다. 비좁은 삼도 숲에서 파닥이며 겨우 실벌레 몇 마리 잡아먹고 배불러 나가자빠지는 그런 새도 아니다. -머리글- 재일교포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선 교토 김리박 시인의 장편서사시집 《삼도의 비가(三島の悲歌)》가 일본의 마도로출판사에서 2013년 6월 출간되었다. 시집은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수록되었는데 일본어 번역부분은 중견시인인 우에노미야코(上野都) 씨가 토박이말의 정서를 잘 살려 번역했다. 《삼도의 비가》는 머리노래를 시작으로 첫째노래 숲, 둘째노래 백마에 이어서 배, 죽음, 삶, 갓난이, 사랑, 때새(시간), 겨레, 한길, 무덤까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맺음노래로 마무리하고 있다. 살갗 검은 한겨레가 있고 / 흰 몸 까만 머리 한겨레가 있고 / 바지저고리, 치마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경주 금관총(1921년 조사)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를 확인하였는데 이는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최초의 임금 이름이다. 이 글자는 국립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미공개 자료에 대한 정리 사업인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보존과학부에서 금관총 출토 고리자루큰칼에 대한 보존처리를 하는 과정에 발견되었다. 글자는 칼집 금속부에 새겨졌는데, 칼집 아래 앞뒷면에 尒斯智王(이사지왕), 十(십), 칼집 위에 尒(이)가 새겨져 있다. 또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금관총 출토 고리자루큰칼에서도 尒(이), 八(팔), 十(십)이라는 글자가 확인되었다. ▲ 이사지왕(尒斯智王)글자가 쓰인 신라 금관총 큰칼[大刀] ▲ 이번에 확인된 금관통 큰칼의 이(尒)와 십(十) 尒斯智王은 신라 금석문 같은 곳에 보이는 전형적인 신라식 표기로, 금관총의 주인공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글자는 신라 무덤에서 최초로 확인된 임금 이름이며, 이로써 금관총은 주인공이 밝혀지는 유일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나히를 먹는 것도 억울한데 주름살 까지 잡혀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늙었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는 것은 청춘을 아끼는 젊은이들의 큰 비애가 아닐 수 업슴니다.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어떠케 주름살만이라도... 그 비결이라는 것은 닭알 흰자위로 얼골을 닥는 것이올시다. 닭알 흰자위로 말하면 외국에서는 주름살 피는 방법으로 벌써 오래전부터 아주 요긴하게 씨여지고 있슴니다. 이 닭알 흰자위로 얼골을 담글 지경이면 담백질이 뭍게 됩니다. 그리고 자외선이라든가 먼지, 때 가튼 것을 바다드리지 않음으로 얼골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위는 동아일보1935년 9월 7일치 미용에 관한 기사입니다. 얼골(얼굴), 나히(나이), 닭알(달걀) 같은 표기가 흥미롭습니다. 주름살 고민은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처럼 주름살 개선제니 뭐니 해서 값비싼 화장품이 나오던 시절도 아닌 그때에는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지혜가 엿보입니다. 또한 1950년대 신문 광고를 보면 기미라든지 주름살 개선을 위한 이른바 화장품 광고가 등장하는데 그때는 그것이 화장품에 속하지 않고 약용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모델들은 지금처럼 얼굴이 갸름한 게 아니라 통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우리 겨레는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 소반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소반의 쓰임새에 따른 종류를 보면 임금 수라상을 비롯하여 궁궐에서 쓰던 상을 ‘궐반’이라 하고. 잔치를 할 때 쓰는 큰상으로 개화기 이후 만들었던 ‘교자상’도 있지요. 또 돌을 맞는 아이를 위해 차리는 상 곧 ‘돌상’이 있는데 이를 ‘백완반(百琓盤)’이라고도 합니다. 그밖에 점쟁이가 점을 칠 때 필요한 기구인 방울, 살, 동전 등을 올려놓고 쓰는 ‘점상’이 있으며, 머리에 이었을 때 구멍이 나 있어 앞을 내다볼 수 있으며, 다리는 어깨 위에 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고상(풍혈반)’도 있습니다. ▲ 상 바닥에 구멍이 두개 뚫린 합환주상 그리고 특별히 혼인예식 때 쓰는 ‘합환주상’도 있지요. 전통혼례 때 신랑, 신부가 잔을 주고받는 의식을 합근례라 합니다. 이때 쓰는 술잔은 작은 박을 쪼갠 ‘합환주잔’인데 이 잔에 술을 담았을 때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작은 소반 위에 잔이 걸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놓은 상이 바로 ‘합환주상’이지요. 구멍이 두 개인 ‘합환주상’과 달리 그저 구멍이 하나 뚫린 것은 ‘잔상’이라고 합니다. 겨레의 슬기로움이 돋보이는 ‘합환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 회회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고려 충렬왕 때의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 일부입니다. 고려 때 만두집에 갔더니 아라비아인이 손목을 잡았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보면 고려시대에 이미 만두를 파는 가게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 "행복한 채식밥상" 블로그 제공 하지만, 원래 만두는 한나라 때 기원된 것으로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라고 합니다. 그에 견주어 “편수”라는 음식은 우리식 만두라고 하지요. 1890년대에 쓰인 한글 필사본 조리서 ≪시의전서≫에 편수 조리법이 나옵니다. “밀가루를 찬물에 반죽하여 얇게 밀어 네모반듯하게 자르되 너무 작게 하지 않고 소는 만두소처럼 만들어 귀를 걸어 싸서 네모반듯하게 하되 혀를 꼭 붙게 하여 삶는 법도 만두와 같으니라.”고 했지요. ≪시의전서≫는 편수와 만두는 그 소나 삶는 방법에서는 다를 바가 없지만, 다만 편수의 모양이 네모반듯한 데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2008년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에서 발행한 <우리 민족료리>에서도 편수를 개성음식으로 꼽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