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천년을 썩지 않는 한지로 196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석가탑 해체 공사를 하자 금동제 사리함이 안치되어 있었고, 그 둘레에는 목재소탑, 동경, 비단, 향목, 구슬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닥종이로 된 두루마리 즉 다라니경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경의 폭은 6.7cm, 길이는 6m가 넘었다. 다라니경이란 탑을 만든 다음 불경을 외움으로써 성불한다는 뜻으로 만들어 탑 속에 넣어두는 경전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1200년 동안 좀벌레에 그 두루마리 일부가 침식되어 있던 것을 복원, 국보 126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종전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인쇄물은 서기 770년에 새긴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적어도 20년 이상 뒤의 것인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고, 간행연수가 기록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은 중국 돈황 석실에서 발견하여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간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서기 868년에 목판을 만든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최소한 118년 뒤의 것이다.[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고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이다. 즉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때 이미 닥을 종이의 원료로 해서
◀ 여성의 비부를 상징하는 소나무 끝눈 부분 ⓒ2001 임경빈 솔잎은 두 개가 한 엽초 안에 나고, 그 사이에 사이눈이라는 작 은 생명체를 지니고 있 다. 그래서 소나무를 음양수라고 하고, 완 전무결한 부부애의 상징으로 본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가 익히 들었던 양희은이 부른 노래 '상록수'이다. 소나무처럼 꿋꿋하고 푸르른 삶을 꿈꾸며,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군사독재 시대의 억눌린 가슴을 다독거려주는 위안이었다.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보편적인 상징물이 뭘까? 한글, 김치, 고려인삼, 한복, 호랑이, 태극, 무궁화 등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아온 것은 '소나무'가 아닐까? 예부터 수많은 전설과 그림, 문학작품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임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고향생각을 할 때 늘 떠오르는 것이 마을 뒷동산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소나무다. 얼마 전에 <숲과
문화사대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민족문화를 살리는 길보이차(운남칠자병차)의 사진종이 포장 위에 비닐 포장이 되어 있는데 짐승의 터럭이 들어있다. 移時軟共高僧話(이시연공고승화) 石鼎松聲送煮茶(석정송성송자다) 때가 지나고 스님과 담소를 나눌 때 돌솥과 솔바람 소리로 차를 달여 마시리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차의 성인이었던 신위(申緯)의 시 일부이다. 차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같이 마시는 사람과의 나눔을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솔바람 소리로 차를 다린다는 신위의 뜻은 무엇일까? 요즘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한창 보이차(퓨얼차)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보이차 매니아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보이차를 마시는 것이야말로 차의 경지에 제대로 들어가는 것인 양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정말 보이차의 가치가 그렇게 뛰어난 것일까? 보이차를 마시는 것이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차(퓨얼차)의 유래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雲南省), 시쐉빤나(西雙版納), 시마오(思茅) 등지에서 생산되는 중국의 명차(名茶)이다. 보이차의 이름은 생산지명을 따서 붙인 것이 아니라 보이현에서 모아서 출하했기 때문에 붙여진
녹차, 커피, 콜라의 장미꽃 실험 5일 장미꽃 실험, 첫째날요즈음 우리는 TV에서 "코카콜라 즐겨요(Coca-cola enjoy)"라는 광고를 듣는다. 그리고 "자꾸 자꾸 당신의 향기가 좋아집니다"라는 말도 듣는다. 이 콜라와 커피를 선전하는 광고 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이제 두 음료의 매니아가 되어 버린 걸까? 우리나라 음료시장에서 커피와 콜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압권이라 할 만 할 것이다.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이 즐겨왔던 녹차는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요사이 다시 녹차가 부각되고는 있지만 커피와 콜라를 따라가기에는 숨이 찬 실정이다. 그런데 정말 커피와 콜라는 우리 몸에 나쁜 것일까? 나는 작년에 어떤 음료회사에서 이벤트로 실시한 장미꽃 실험에 응모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벤트의 주제는 콜라와 사이다에 장미꽃을 꽂아놓고 5일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이다는 장미꽃이 활짝 핀 채였지만 콜라는 꽃잎의 30% 가량이 새카맣게 타고, 몇 군데 구멍이 나 있었으며, 콜라의 수면 위에는 곰팡이 같은 하얀 거품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콜라만이 아닌 커피 그리고 녹차의 세 가지를 가지고 다시
따뜻한 봄날을 맞아 지금 남도 보성의 산자락에선 녹차잎 따기가 한창이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경쟁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5월 10일에는 "다향제"라는 녹차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인치고 녹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 이 녹차가 우리 조상 대대로 즐겨 마시던 대표적인 전통차이고, 건강에 아주 좋은 식품이라는 것도 대부분 인지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 좋은 녹차를 얼마나 즐기고,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옛날 우리 조상들은 녹차를 즐겨 마시며, 건강하고 철학적인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즐겼다. 그런데 커피가 수입되면서 우리의 입맛은 달라지기 시작하고, 드디어 이제는 커피와 콜라가 보편적인 음료가 되어버렸다. 커피와 콜라를 즐기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독된 듯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외화를 유출시킴으로서 IMF시대를 맞는데 큰 도움을 준 것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전통차인 녹차를 마심으로 인해서 각종 질병의 예방은 물론 우리 농민들을 돕고,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
이번에는 된장에 이어서 또 하나의 위대한 숨쉬는 음식, 김치를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매 끼니 대하는 음식이면서도 김치에 대한 상식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 김치가 왜 위대한 음식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김치의 기원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보면 <염지>라 하여 "무를 소금에 절인 음식, 겨울 내내 반찬되게 했다. "라는 글이 나온다. 여기서 <지>는 물에 담근다는 뜻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김치란 이름은 이 <지>가 고려말기에 <저(菹)>로 변하여 쓰이다가, 조선 초기에 <딤채>가 되고, 구개음화하여 <김채>로,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에 의하여 <김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김치는 소금물에 담그거나 마늘, 회향 등의 향신료를 섞는 정도에 그친 것으로 짐작되며, 이것이 18세기 조선 광해군 때 고추가 전래되기 시작하면서 붉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치에 처음으로 고추가 들어간 것은 1750 년경으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에 오늘날 총각김치와 흡사한 김치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여기에는
한복에 대한 애정이 통일을 앞당길지도 모른다 녀자 조선옷의 부분별 이름1 북한에서 말하는 한복 각 부분의 이름, 남한의 용어와 거의 같다. 녀자 조선옷의 부분별 이름2북한에서 말하는 한복 각 부분의 이름, 남한의 용어와 거의 같다.연합뉴스는 북한 평양에서 지난 3월 23일 2000년도 조선옷전시회(패션쇼)가 열렸다고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3.27)의 소식을 인용 보도했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보도한 '조선옷 품평회' 관련 기사이다. 30일 조선신보에 따르면 평양시 낙랑구역 피복연구소 옷전시회장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치마저고리를 비롯해 양복, 달린옷(원피스), 나뉜옷(투피스), 셔츠, 반외투, 긴외투 등 올해 창작된 92점의 여성 옷작품이 선보였다. 조선옷 품평회 북한 경공업위원회에서 펴낸 <조선 민족옷>에 실린 북한의 패션쇼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에 맞춰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맵시입게 차려입은 모델들이 등장하자 관중들 속에서는 연이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올해 작품들은 종래의 옷 형태를 일신해 여성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살린 것과, 댕기와 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옷들이 많았다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또 치마 길이도 길거나
요즈음은 곳곳에서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물론 생활한복을 입는 사람들을 원숭이 보듯 쳐다보는 일도 없다. 그러나 생활한복이 나오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는 운동권들이 입는 옷이거나 도인들만 입는 옷으로 오해하여 입는 사람들은 무척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심지어 승복 같다거나 중국옷 같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생활한복은 어떤 옷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용어의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개량한복’, ‘우리옷’, ‘겨레옷’, ‘민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일정부분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우선 ‘개량한복’이란 말은 ‘뭐가 나빠서 개량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러나 생활한복의 출발점을 전통한복으로 보았을 때 그 전통한복을 약간의 불편함만 있을 뿐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량한복’이라고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현재 전통한복전문점에서 전통한복에서 주로 쓰는 원단인 비단 등을 사용하여 약간의 변형을 주어 만드는 것을 ‘개량한복’이라 부르는 또 다른 종류의 상품이 있기도 하다. ‘우리옷’, ‘겨레옷’은 아름다운 우리말이기는 하나 전통
21일은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이다. 그에 따라 한가위 민족대이동이 시작됐다. 올해도 자그마치 연인원 3000만 명이 상이 고향 나들이에 나설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명절을 맞이한다. 오늘 텔레비전에서 보니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두가 예쁜 한복을 입고 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한 연예인이 품위있는 한복을 입었지만 아래를 보니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양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꼴이나 다르지 않다. 한복을 입을 때도 예절에 맞게 입어야 품격이 생길 것이다.지난 5월 29일 연합뉴스를 보니 북한에서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5월 14일자)을 통해 옷차림 예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민족 옷과 옷차림 예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옷을 깨끗이 차려 입는 것은 자신의 품격을 높이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전통적인 옷차림 예절을 소개했다.노동신문은 우선 남녀 모두 저고리나 윗 옷을 입을 때 동정의 이가 꼭 맞도록 단정하게 입고, 옷고름도 아무렇게나 매지 말고 나비매듭이 되도록 맬 것을 요구했다.
무용총 주실동벽-가무도해방 이후 서양문화가 물밀듯 밀려오면서 우리 문화가 서서히 힘을 잃어 갔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에 따라 한복도 서서히 주인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젠 명절 때도 일부의 사람만 찾게되었고, 정부나 단체나 회사나 심지어 집안의 큰일에서조차 한복을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러다간 우리의 옷 한복이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는 험난한 꼴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지만 분명히 한복은 우리 민족이 수 천년 역사 동안 발전시켜왔던 우리의 옷임에 틀림없음이 각종 사료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민족이 입어온 옷의 변화를 대강 살펴보기로 한다. 1. 옷의 기원 맨 먼저 우리 옷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언제일까?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바늘이나 실을 잦던 도구들은 가장 오래된 우리 옷의 자료이다. 또 농경문 청동기에는 저고리와 바지의 기본 복식에 성인 남자는 상투를 하고, 미혼남자는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나타난다. 그 뒤 부족국가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면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허리띠, 신 등의 양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옷은 아한대성 기후로 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