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실 어제 작가들 작품 발표를 하면서 이번 여행의 큰 줄기는 끝난 것이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카트만두 시내 관광을 하고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밤 비행기로 떠나고, 외국 작가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다들 며칠 정도만 더 머무르다 네팔을 뜬다는데, 요코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간다고 한다. 중국 쪽에서야 차타고 휑하니 갔다 왔지만, 여기서는 15일간이 소요되는 트레킹 일정이다. 하여튼 요코 대단하다! 저 조그만 체구에 카메라 짐이 많아 배낭도 앞뒤로 메고 다니던데 또 15일간의 고난의 행군을 하려 하다니... 짐을 다 싸서 호텔 로비에 맡겨놓은 후 우리는 시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헨릭은 그대로 호텔에 남는다. 몸살이 났단다. 세미나까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일까? 하긴 5,200m의 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현지인들과 그렇게 미니 축구를 하였으니, 아무리 강인한 헨릭이라도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이 날만 하지. 사실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나로서는 전에 이미 가보았던 곳이고, 따라서 여행기로 기록을 남긴 곳이다.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훑으며 지나가자. ▲ 스와얌부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오늘은 네팔 국립박물관의 세미나실을 빌려 작가들이 지금까지의 여정 동안 구상하고 다듬고 완성시킨 작품들을 발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날이다. 그 동안 아침이면 일어나 준비하기에 바빴지만 오늘은 오전을 느긋하게 호텔에서 보내며 각자 발표 준비의 마무리를 한 다음 점심을 먹고 박물관으로 향한다. ▲ 네팔 국립박물관 ▲ 겨우 군인들 검사를 받고 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왔다. 네팔 여학생들이 박물관 들어가고 있다 박물관 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전 통지가 잘 안 되었는지 한 군인이 나타나 제지한다. 박물관 직원이 나와 설명을 함에도 군인은 우리의 소지품을 다 검사하고서야 들여보낸다. 그 동안 공산반군과의 오랫동안의 싸움이 이런 경직된 문화를 낳았구나. 국립박물관이라지만 우리나라 지방 박물관보다 못한 너무 초라한 박물관인데 그나마도 일본의 도움으로 지어진 박물관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건물 모서리에서 처마를 받치고 서 있는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지 거시기를 우뚝 세워 자기 아랫배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하! 고놈, 정말 우람하게 생겼네. ▲ 박물관 처마 밑의 조각이 우람한 거시기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에 일어나니 약하게 비가 흩뿌린다. 여기서 국경까지는 다시 얼마정도 꼬불꼬불 길을 내려가야 한다. 길을 돌다보니 떠나온 장무가 눈 위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장무가 티벳에서 내려오는 산비탈의 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겠다. ▲ 장무에서 국경으로 내려가는 사진 - 머리 위로 산허리에 걸린 도시 장무가 보인다 ▲ 국경에 도착하니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유럽인이 보인다 - 이들은 티벳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네팔로 넘어가려고 국경에 왔다 국경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국경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위에서부터 급하게 내려오던 급류가 네팔과 티베트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문이 열리면 우리는 다리를 건너 네팔 코다리로 건너가게 된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유럽 사람들이 많고, 그 중에는 자전거를 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뜻밖에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유럽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먼 유럽에서 이런 오지까지 자전거를 타러 오다니... 유럽인들의 모험심과 탐구심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이윽고 국경의 문은 열리고, 중국 국경관리들의 융통성 없고 불친절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이 밝아오고, 우리는 다시 행장을 꾸려 이제 이 세계의 지붕에서 내려가려 한다. 이 고원이 저 밑 세상과 연결되는 길고 깊기 만한 협곡을 통하여 네팔과의 국경도시 장무로 내려가려는 것이다. 방작가는 아직도 얼굴이 간 상태이지만 낮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다시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티베트는 우리를 순순히 낮은 세상으로 내려 보내지는 않는다. ▲ 팅그리에서 장무로 향하는 국도 - 아직은 티벳 고원을 지나고 있다 장무로 가기 위해서 다시 한 번 5,000m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산증세가 두렵더라도 티벳인들이 수많은 룽다와 타르초를 바람에 휘날리며 신께 염원하는 5,000m 고개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고개에서 내려 잠시 걸으니 또다시 머리가 띵해 온다. 가자! 가자!! 빨리 이 천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밖에는 없구나. 드디어 버스가 고원 평원을 지나 협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황량한 고원의 세계만 보이던 내 눈앞에 키 작은 관목들이 듬성듬성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무들이 일어나서 내려오는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나무들은 온대의 숲에서 아열대의 숲으로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이다. 오늘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와야 하고, 또 돌아와 팅그리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어야 하기에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한다. 어제 저녁에 이교수님이 호텔 사장에게 물어보니 팅그리 민속악단이 있다고 하여 즉석에서 공연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몸 상태를 점검해보니 어제보다 한결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다. 박병욱 작가가 걱정을 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서 에베레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설사 중간에서 어떻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가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휴대용 산소통을 갖고 가기로 한다. ▲ 퍼포먼스를 펼치는 방효성 작가 - 이 후유증으로 방 작가는 에베레스 베이스캠프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어제 나보다 증세가 심했던 방효성 작가는 끝내 못 일어난다. 그 고지대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고 원산폭격 비슷한 자세까지 취하고 했으니, 고산병이 요놈 봐라 하며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방으로 가보니 완전 환자가 되어 누워있다. 사람들은 마음 같아서는 옆에 있어주고도 싶으나 다들 여기까지 와서 에베레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표정. 그래서 우리는 호텔 주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시가체에는 타쉬룸포 사원이 있다. 포탈라궁이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라면, 타쉬룸포 사원은 라마교의 제2의 지도자인 판첸 라마의 상징이라 하겠다. 타쉬룸포 사원 뒤의 헐벗은 니세리산은 타르초와 룽다로 길게 덮여있다. 티베트의 어디를 가나 타르초와 룽다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여기처럼 산꼭대기뿐만 아니라 아예 산 전체를 덮은 곳은 없을 것 같다. 타쉬룸포 사원은 단순히 사원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이 거주 공간까지 하여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전성기 때에는 승려가 수 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관리하는 승려들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에도 조캉사원처럼 경배 드리려는 사람들이 어느 건물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이번에는 우리도 기다림의 줄에 합류한다. 이곳에는 판첸라마의 영탑들이 모셔지고 있는데, 5세부터 9세까지의 영탑은 합장탑이다. 원래 각각으로 모셔지던 것이 문화혁명 때 파괴된 것. 문화혁명의 광기는 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구나. ▲ 타쉬룸포 사원 ▲ 사원에 경배드리러 온 신자들이 길게 줄을 선 사진 ▲ 타쉬룸포 사원 경내 사진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이하여 《4.16 세월호 참사백서》를 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에 대한변협에서도 변협 차원으로 법률지원단을 꾸렸는데, 무려 514명의 변호사들이 지원단에 자원하여 세월호 유가족을 도왔습니다. 백서는 현장 지원 활동, 입법 지원 활동, 진상 조사 활동, 형사재판 지원 활동, 법률 상담 활동, 언론 대응 활동으로 나뉘어 세부적으로 꽤나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4.6 배판 크기로 무려 573쪽이나 되네요. ▲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이하여 펴낸 《4.16 세월호 참사백서》 백서 발간을 총괄 지휘하고, 백서를 개관하는 글을 쓴 이원목 변호사는 제 고교 동기입니다. 이변호사는 바쁜 변호사 업무 중에도,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래서 요즈음은 법학이 아닌 유학으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는 변호사인데, 세월호 사건에도 애정을 갖고 자기 시간과 노력을 세월호에 쏟아 부었군요. 세월호는 전 국민의 관심사였으니까, 여기서 다시 세월호 이모저모를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테고, 언론 대응 활동에 대해 몇 가지 눈길을 끌만한 것이 있어 이에 대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지난주에 안중근 기념관의 이혜균 처장이 안중근 기념관 앞의 정원에 와룡매가 활짝 꽃을 피웠다며 홍매와 백매 사진을 찍어 보내오셨습니다. 아! 와룡매가 지기 전에 보러가야 하는데... 그런데 매화는 다른 곳도 많은데, 왜 굳이 남산의 매화를 보러 가려고 하냐고요? 사실 이 와룡매는 사연이 많은 매화입니다. 저는 이 사연을 뒤늦게 알고 난 후, 얼마 전에 동서 부부들과 남산 간 김에 잠시 와룡매를 보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안내문이 없어 어느 나무가 사연 많은 와룡매인지 알 수 없어, 대충 짐작이 가는 나무에 눈길만 주고 왔네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이혜균 처장에게 얘기를 했더니, 이번에 와룡매가 꽃이 피는 화려한 시간에 사진을 찍어 보내오셨네요. ▲ 안중근 기념관 앞 정원에 심어진 와룡매 후손 2 아! 참! 제가 와룡매, 와룡매 하면서, 아직도 와룡매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을 안 드렸군요. 이거~ 성질 급하신 분들은 벌써 슬슬 눈꼬리가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말씀드리겠습니다. 와룡매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미야기현 센다이의 맹주 다테마사무네(伊達政宗)가 매화의 자태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1593년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지난주에 롯데백화점 12층에 있는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한 김두례 화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2012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 때는 화려한 색채가 단지 추상의 세계에서만 춤을 췄다면, 이번에는 그 추상의 색채 속에 인물이 걸어 들어갔네요. 추상의 세계에 인물이 들어가 있으려니, 인물들도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그냥 색채의 덩어리로 서 있기도 하구요. 롯데갤러리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주로 한국적인 색채로 추상과 구상 색면을 활용한 빛을 표현합니다. 오방색으로 표현한 화면 자체는 단순하지만 대담하고 역동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는 가벼운 붓질로 표현된 인물상들이 색채의 장 위에 등장합니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통해 한국적 영감을 시각화하였으며, 색면의 아름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미를 완성시켰습니다. 작가의 작품이 들려주는 한국적 모성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한국 전통의 오방색으로 색채를 눈부시게 뿜어내는 김화백의 그림을 보노라면 우선 당장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림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라싸를 떠나 시가체(Xigaze)로 간다. 가이드가 2대의 지프를 더 마련하여, 나는 얼른 그중의 한 지프를 찜했다. 차창 밖을 스쳐지나가는 주위의 산들은 약간의 풀만 있을 뿐 황량하기만 하다. 왜 이리 나무가 없을까? 나무가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 차가 지나가고 있는 이곳은 보통 4,000m를 넘나드는 곳이니, 이보다 높은 저 보이는 산들은 이미 수목 성장한계선을 넘어선 곳이 아닌가? 길은 나무가 없는 황량한 산들 사이로 계곡을 따라 가다가, 계곡을 나와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흐르는 얄룽창포 강을 따라 가며 이따금 마을을 지나가기도 한다. ▲ 시가체 가는 길 ▲ 시가체 가는 길에 본 눈 덮인 산 그런데 이 황량한 길에 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 나는 뭔가 을씨년스러운 어느 다른 행성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가다보니 조금 더 웃자란 산들은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다. 4,000m 길을 달리면서 바라보는 하늘의 구름도 뭔가 다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구름의 표정도 다양하다. 길을 달리다보면 지평선과 만나는 곳에 시꺼먼 구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비를 뿌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