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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묘(武候廟)와 중국인을 신으로 모시는 사당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무후묘를 아십니까? 무후는 제갈공명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러니까 무후묘(武候廟)는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입니다. 그런데 무후묘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사당이 아니라 민간신앙에서 출발한 사당이지요.  

주택가 한가운데인 보광동 419번지에 무후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 전에 아버님 댁에 간 김에 가까이에 있는 무후묘를 찾아보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복잡한 골목길을 이리 저리 돌아가니, 눈앞에 한옥집이 보이고 대문에는 보광사’, ‘무후묘 제전위원회라는 현판을 걸어놓았네요. 내비게이션이 없었으면 이 복잡한 골목길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았어야 하는데, 요즈음은 내비게이션에 주소만 입력하면 걸어가면서도 길을 안내해주니까 참 편합니다. 

 

   
▲ 무후묘 정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작은 마당 저편에 조그만 사당이 있고, 옆에는 일반 주택이 바짝 붙어 있습니다. 아마 저 주택에 거주하는 스님(?)이 보광사를 운영하면서 무후묘도 관리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마당에서 무후묘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택에서 사람이 나와 안에도 볼 테면 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들여다보고 싶긴 하였지요. 그렇지만 괜히 허락도 없이 닫혀 있는 문을 열었다가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 우선 사진부터 찍고 있었지요.  

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문을 여니 정면에는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제갈공명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당연히 초상화 앞에는 제를 올리기 위한 제단이 설치되어 있구요.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는 청룡도를 들고 있는 장수와 화살을 메고 있는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무후묘를 지키는 수호 장수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왼쪽 벽에는 당할머니와 산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후묘도 우리 전통 신앙과 융합되어 있는 것이군요. 

그런데 이 보광동 주택가에 왜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이 있을까요? 보광동 바로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휴전선 때문에 서해 바다에서 한강으로 배가 들어올 수 없지만, 조선 시대에는 한강은 중요한 뱃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상인들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이곳에 배를 많이 대었답니다. 그러니 중국 상인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곳에 제갈공명을 모시는 무후묘가 생긴 것이지요.  

이곳에서는 음력 10월 초하룻날과 3월 초하룻날에 제갈공명을 위한 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은 여기 말고 또 있습니다. 회현동 쪽의 남산 기슭에 가면 와룡묘가 있습니다. 제갈공명을 와룡선생이라고도 하니까, 여기서는 와룡묘라고 합니다. 저는 와룡묘도 가 보았는데, 이곳도 삼성각, 단군묘 등이 같이 있어 불교와 전통신앙이 혼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 무후묘

   
▲ 제갈공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무후묘 안

우리나라에 제갈공명 말고, 아니 제갈공명보다 더 잘 모시고 있는 중국 인물에 누가 있을까요? 물론 공자와 같은 유교 성인들은 빼고요. 바로 관운장입니다. 관운장은 중국에서 무신(武神) 또는 무성(武聖)으로 모셔지고 있지요. 그래서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우러 온 명나라 군대가 관운장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고 조선 정부에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였지요. 그렇게 하여 시기적으로는 차이가 나지만 서울 동서남북에 관운장을 모시는 묘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동관왕묘만 남아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의 동묘앞역이 바로 이 동관왕묘 때문에 생긴 역 이름입니다. 물론 지방에도 여러 군데에 관왕묘, 관제묘 등으로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들이 세워졌습니다. 

이왕 관운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만 더 한다면, 관운장이 무신으로 숭배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관운장이 또한 재물의 신으로도 모셔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운장이 상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나? 물론 그건 아니겠지요? 명청(明淸) 시대에 관우의 고향인 산시성의 상인들은 산시성의 특산물인 소금을 팔러 먼 지방까지 다녔답니다. 이렇게 먼 길을 떠날 때에 상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신이 필요했는데, 그 신으로 관운장을 모셨답니다 

 

   
▲ 서울 동묘앞역 가까이 있는 보물 제142호 "서울 동관왕묘 (서울 東關王廟)", 문화재청 제공

왜냐하면 당시 산시성 상인들은 장사에 있어 의리와 신용을 가장 중요시 했는데, 자기들이 보기에 관운장이 거기에 가장 적격이었다고 본 것이지요. 그리고 산시성 상인들이 관운장을 재신으로 모시고 난 이후부터 이들의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었고, 그러자 관운장은 산시성의 재신뿐만 아니라 중국의 재신으로 퍼져나간 것이지요. 

무후묘가 출발은 중국 상인들 때문이라지만 지금도 제를 올리는 것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네 백성들에게도 제갈공명이 신으로서 모실만한 대상이 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밖에도 유비는 소열황제로, 장비는 장장군으로 우리나라 민간에서 모셔지고 있네요.  

일반 백성으로서는 자기들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수 있는 대상이라면 외국신이라고 마다하지 않았겠지요? 혹시 코빼기 높은 서양 인물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데도 있으려나? 제갈량에게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고 무후묘를 돌아 나옵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 안 서민들 주택가 한 가운데에 중국의 제갈량이 모셔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갈량을 만나보고 돌아갑니다. 답사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에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