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3년 창립해 독립운동에 뿌리를 둔 흥사단(이사장 대행 조현주)은 제106돌 삼일절을 맞이해 전국에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겨레의 함성을 외치며 기념행사를 열었다고 4일 밝혔다. 흥사단 조현주 이사장 대행은 “106년 전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부당한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에 항거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우리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세계에 알린 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는 동시에 ‘다케시마의 날’을 철폐하고 우리의 고유영토 독도를 수호하며, 70년 이상의 분단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전국의 흥사단 단우들이 협심하고 단결하자”라고 역설했다. 이날 흥사단 본부와 전국 지부는 삼일절과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며 전국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기념행사에는 △서울흥사단 △대구ㆍ경북흥사단 △대전흥사단 △울산흥사단 △수원ㆍ용인흥사단 △강원흥사단 △충북흥사단 △전주흥사단 △함양흥사단 △밀양흥사단 △거제흥사단 △충주흥사단이 나섰으며, 성인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며 시민들이 주체가 돼 그날의 함성과 자주독립의 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 족 등 꼭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먼 곳을 보라한다 자기 발밑은 보지 않고 허공만 보라한다 그래서 지금도 조족등이 필요한 건 아닐까 잡다한 곳 비추지 말고 자신의 발밑을 비추는 조족등 네가 그립다. 조족등(照足燈)은 밤거리에 다닐 때 들고 다니던 등으로 댓가지로 비바람에 꺼지지 않게 둥근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촛불을 켜는 등이다. 특히 조족등은 순라군이 야경을 돌 때 주로 썼다. 조족등을 이름 그대로 풀어 보면 비출 조(照), 발 족(足), 등잔 등(燈) 자를 써서 발을 비추는 등이라는 뜻이 된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6년 전인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만세운동의 시작일이다. 총칼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독립을 열망한 선열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특별히 되새겨야 하는 기회다. 당시 수원에서도 만세운동이 격렬했다. 기미년 3·1만세운동의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인사를 일컫는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세환(1889~1945)이 수원 만세운동의 도화선을 만들었고, 이후 한 달 동안 20여 회에 달하는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이어졌다. 김세환의 업적과 1919년 수원, 그리고 이를 기억하는 수원을 확인해 본다. 김세환 선생, 수원 독립과 근대 교육 이끈 정신적 지주 김세환은 수원의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교육과 체육 발전에 56년의 삶을 헌신했다.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건국훈장 가운데 독립장 이상을 받은 인물은 1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국가보훈부가 지난 2020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할 정도로 공로를 높이 인정한 자랑스러운 수원 출신 인물이다. 김세환은 1889년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전시장 이모저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는 120개국에서 수집한 2,000여 점의 악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악기를 수집한 지역을 보면 아프리카ㆍ중동ㆍ인도ㆍ동북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오세아니아ㆍ유럽ㆍ아메리카 등 지구촌 구석구석의 다양한 악기들이 총망라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한국의 악기들도 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악기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학예사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김효은 선생은 박물관에 입장한 관람객들을 지하 1층으로 안내했다. 2일(일) 낮 2시 무렵,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살고있는 도시 고양시의 옆 동네 파주시 탄현 헤이리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들른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영진 관장, 아래 ‘악기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동안 ***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은 사설 박물관들을 가끔 들어가 본 적이 있지만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는 내용물로 실망한 적이 제법 있었다. 그런 기억으로 악기박물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섰는데 아뿔사! 1층 입구부터 전시된 악기들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이날 악기박물관 설명은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자,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악기, 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0세기 초 일제의 야욕으로 대한제국이 위기에 처하자, 당대의 많은 지식인, 유학자들은 항일구국운동에 나섰다. 당대에 영남에서 명망을 얻고 있었던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6)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석영은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주요 조선인들의 회유를 목적으로 제공한 은사금을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항일 운동가들과 함께 만주와 시베리아를 답사하고 《요좌기행》을 남기기도 하였다. 장석영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초안문을 작성하였으며, 성주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장석영은 석방된 이후 성주지역 독립운동의 전개와 옥중 생활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흑산일록》이다. 그런데 후일 기억에 상당 부분 의존하여 작성된 까닭인지 《흑산일록》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소략한 내용들이 있다. 인동장씨 남산파 회당고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에 기탁한 《회당부군유묵》에 포함된 장석영의 옥중 편지가 그중 하나다. 일제를 척결하려다가 투옥된 노년의 유학자 회당 장석영은 인동장씨 29세로, 여헌 장현광의 증손 만익의 여섯째 아들 대해의 후손이다. 장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성(韓國性)의 원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기와를 주제로 평생 작업을 하고 있는 기와 사진가 원춘호. 와공이었던 부친의 숨결을 이어받아 긴 호흡으로 기와를 담고 있다. 서울의 5대 궁궐을 비롯해 사찰, 서원 등 기와가 있는 곳이면 전국을 다니며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모던함으로 해석한 '천년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검은 꽃, 이고 지고'는 기와의 해체와 수리 복원을 비롯하여 기와가 있는 소소한 풍경 등을 아카이브적인 시각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전이다. 숭례문 복원시 기와 장인인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이근복 번와장(翻瓦匠)과 인연을 맺고 문화재 작업을 함께 해 오고 있다. 숭례문, 경복궁 계조당, 향원정, 진남관, 종묘, 경운궁 아재당 등등... 어쩌면 일·이백 년에 한 번뿐인 소중한 순간들이 원춘호의 손을 통해 역사의 기록들로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영남대학교 철학과 최재목 교수는 "원춘호작가는 한국인의 오랜 생활문화에 살아있는 기와의 생로병사, 그 숨결을 기억하고 기념해주는 우리나라 유일의 예술가이다" 라고 말했다. 기와와 대나무 등 한국적인 소재에 천착하고 있는 원춘호는 그동안 &l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원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수원 화홍문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됐다.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명인 김세환(1888~1945) 선생이 이끌었고, 교사와 학생, 종교인들이 중심이 돼 만세운동을 했다. 방화수류정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수원 전 지역에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원박물관이 광복 80돌, 3·1만세운동 106돌을 맞아 1919년 수원 사람들의 항거를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 ‘항거, 수원 1919’를 3월 1일부터 6월 29일까지 연다. 수원의 3·1만세운동 함성과 전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개도와 ▲3월 1일 방화수류정 만세운동 ▲3월 28일 송산면 사강리 만세운동 ▲3월 29일 수원면 수원 기생 만세운동 ▲4월 3일 우정ㆍ장안면 만세운동 ▲4월 15일 제암리ㆍ고주리 학살 사건에 관한 사진과 유물 40여 점을 전시한다. 수원의 3·1만세운동에는 종교인, 유학자, 농민, 학생, 상인, 기생들까지 모든 계층이 참여했다.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 시작해 사전 계획에 따른 조직적인 항거로 이어졌다.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제의 지배 기구였던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삼일절을 맞이하여 예술을 통해 시대정신을 조명하는 제4회 삼삼삼예술축제가 3월 1일부터 3일까지 삼일대로 일대에서 펼쳐진다. ‘방랑자’를 주제로 한 이번 축제는 역사적 사건과 현대의 사회 문제를 연결하며, 예술의 힘으로 기억과 재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삼삼삼예술축제는 삼일절을 단순한 역사적 기념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시대정신을 오늘의 사회적 문제와 연결하는 예술적 실험으로 확장한다. 올해 주제는 ‘방랑자’로 독립운동을 위해 국경을 넘은 이들, 전쟁과 억압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하며 다양한 예술적 형식으로 탐구할 예정이다. 4년째 민간 예술가들과 학자들의 자발적 참여… 공공기금 없이 추진 이 축제는 정부나 공공기금의 지원 없이 민간 예술가들과 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업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시도와 헌신이 삼일운동의 정신을 오늘날 예술적 실천으로 되살려내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축제들은 첫해 '이방인' (2022년), 두 번째 '보통사람' (2023년), 세 번째 '비인간' (2024년)을 주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맙다, 고맙습니다>란 우리말이고 <감사하다, 감사합니다>는 한자말 감사(感謝)+하다로 이뤄진 말이다. '우리말살려쓰기'라는 뜻에서 보면 '감사합니다' 보다는 '고맙습니다' 쪽이 더욱 정겹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말만이라도 고맙다. 나는 무엇보다 자네의 그 따뜻한 배려가 고맙네. 그녀는 그가 자기를 위해 그렇게 애써 주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다.라는 "고맙다' 예문이 있는가 하면, 나는 친구에게 도와준 것에 감사했다. 그는 매사에 자신이 믿는 신께 감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는 그가 이곳을 직접 방문해 준 것에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감사하다" 예문도 있다. 예문을 살펴보면 '고맙다'와 '감사하다'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고맙다 자리에 감사하다라는 말을 써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말 '고맙다, 고맙습니다'를 정겹게 살려 써 보는 것은 어떨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윤동주 시인의 일본 유학시절 하숙집이 있던 교토 타카하라(高原)에서는 시인을 추모하는 헌화식에 이어 ‘윤동주의 시’에 관한 세미나와 낭독회, 다큐영화 상영 등 다양한 추모행사가 있었다. 먼 고향 북간도의 조선 청년 윤동주(1917-1945)는 도쿄의 릿쿄대학을 거쳐 이곳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적을 두고 타카하라 하숙집에서 고독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 쓸쓸한 하숙집 방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식민지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모국어로 시를 쓰다가 잡혀가 스물일곱에 삶을 마감한 윤동주, 그가 교토에 머물렀던 하숙집은 헐렸고 그 자리에는 일본의 명문 예술대학인 교토예술대학(京都芸術大学)이 들어섰다. 그러자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하숙집 자리에 2006년 시비(詩碑)를 세웠고 교토예술대학에서도 해마다 윤동주 시인의 추모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교토예술대학에서는 지난 2월 14일, 추모행사를 이어갔다. 아침 10시, 국화꽃을 바치는 헌화식에 이어 윤동주 다큐 영화 <高原타카하라> 3회 상영, 문예표현학과 나카무라 준(中村純) 교수와 학생들의 세미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