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장매성(1911~1993)ㆍ박옥련(1914~2004)ㆍ박현숙(1914~1981)ㆍ장경례(1913~1997) 선생을 ‘2021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네 명의 선생은 1928년에 여성 항일운동단체로 비밀결사인 ‘소녀회’를 결성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한 주요 인물들이다. 1928년 11월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장매성, 박옥련, 장경례 등이 중심이 되어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올라 여성 항일운동단체인 소녀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인 1929년 5월에는 장매성의 집에서 박현숙 등이 소녀회에 가입했다. 소녀회는 “여성을 남성의 압박에서, 한국인을 일본의 압박에서,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여성 해방, 민족 해방, 계급 해방을 지향했다. 또한, 독서회 회원들이 만든 연합 단체인 ‘학생소비조합’이 출범할 때 30원을 출자하는 등 남학생들이 주도하는 독서회와 연대 활동도 펼쳤다. 특히,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충돌인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소녀회원들은 “붕대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원박물관이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독립운동가 이선경(1902~1921)의 순국 100돌을 기려 주제전 ‘수원 산루리의 독립영웅들’을 연다. 4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수원 산루리의 독립영웅들’은 이선경을 비롯한 수원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다.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관련 유물ㆍ자료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현재 팔달구 중동ㆍ영동ㆍ교동 일원인 산루리는 수원에서 가장 먼저 일제의 침탈을 받은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팔달문 밖 마을을 ‘산루동’이라고 불렀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시달리던 산루리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나서며 일제에 대항했다. 대표적인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선경은 1920년 중국 상해에서 발행하던 독립신문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줘 독립운동을 독려했다. 수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인 ‘구국민단’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떠나려던 찰나에 일제에 들켜 8달 동안 옥고를 치렀다. 계속된 고문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일제는 이선경을 풀어줬고, 서대문형무소를 나온 그는 수원 큰오빠 집에서 치료받다가 석방 9일 만에 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미녀는 ‘남자의 앞길에 해로운 존재’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오고 있는데 그도 그럴 만하다. 이마카와 우네메(今川采女)라는 사람은 태어난 에치고(越後, 현재의 니가타현)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거듭하다 결국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일가(一家)가 없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2년 남짓 정을 나누던 여자가 있었는데 이 여자가 이 무렵 이별을 슬퍼해 “어디든 함께 데려가 주세요”라며 소맷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여자가 워낙 절실히 원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자를 데리고 두 사람은 지역의 경계인 검문소를 피해 도망쳐 간신히 위험한 에치고를 벗어나 시나노(信濃, 현재의 나가노현) 길로 들어섰다.“ 이는 에도시대의 인기작가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가 지은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西鶴諸国ばなし)》 제5권 제4화의 첫 대목이다. 살던 고향에서 간신히 도망친 부부(정식 부부는 아니지만 편의상)는 밤이 되어서야 낯선 동네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생판 모르는 동네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 마을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집이 몇 집 있었으나 부부가 워낙 늦게 마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西鶴諸国ばなし)》라고 하면 얼른 이해가 안가겠지만 ‘일본판 신전설의 고향’ 이라고 하면 ‘어? 재미있겠는데..’ 라며 흥미를 가질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고전(古典) 독해를 하면서 함께 공부한 내용을 알기 쉬운 한국어로 번역해 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고전명저독회> 회원들이 이번에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를 펴냈다. <일본고전명저독회> 회원들은 3년 전 《우지습유모노가타리》(지만지 출판)에 이번에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지만지 출판)를 출간했는데 실은 코로나19로 예정보다 1년 늦게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으로 유명한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대표 작가 이하라 사이카쿠로 그는 일본 전역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해 작가 특유의 해학을 보태 새롭게 설화를 창작했다. 말하자면 옛것(전설)과 지금(사이카쿠가 생존해 있던 에도시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엮어낸 ‘일본판 전설의 고향’ 쯤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방은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아래 의열단사업회, 회장 박우섭)는 “친일청산을 주장하면 정치개입이고 광복회장직을 사퇴할 일인가? 오히려 지금까지 친일잔재청산의 민족적 과제를 이루지 못하고 국가정체성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정치권의 직무유기는 아닌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의열단사업회는 대일항쟁기, 조선의열단의 항일무장독립투쟁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단체다. 의열단사업회는 성명서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친일청산 노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라며, 이번 제102돌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식장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이 무분별한 회원 ‘김임용’으로부터 ‘백주습격’을 당한 사태에 직면하여 광복회장의 친일청산 행보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친일반민족세력의 계획된 사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또 의열단사업회는 “적폐의 가장 근본 원인은 친일 미청산이다. 친일적폐세력은 정치, 언론, 사법, 행정,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을 유지한 채, 민족의 분단극복과 사회개혁에 대해 여전히 저항하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방해하고 있다. 이 중심에 그대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국회 정무위의 막강한 국회 상임위원의 권능으로 소속 산하 공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2편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문전옥답을 버리고 매서운 한파를 뚫으면서 만주 망명길에 오르는 내용이다. 당시 망명길에 관한 내용은 일기와 회고록 등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자료로 고성이씨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서사록(西徙錄)》이 있다. 《서사록》은 음력 1911년 1월 4일부터 4월 13일까지의 망명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만주망명을 결심하게 된 이유와 전답 등을 처분하고 짐을 꾸리는 준비과정 등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또 백하 김대락이 쓴 《서정록(西征錄)》 역시 만주망명을 위해 서울에서 의주행 기차에 올라타는 내용부터 만주에 도착하여 정착해가는 초기 망명생활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상룡 선생의 《서사록》과 김대락 선생의 《서정록》에 따르면, 당시 만주망명길에 오른 일행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 안동에서 추풍령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 서울로 간 뒤 경의선을 통해 서울 - 평양 - 의주 - 신의주로 이동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 산하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인 (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아래 항단연, 회장 함세웅)은 “국민의힘은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의원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국민의 통합과 화합이란 거창한 명분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하수 정치를 제발 멈춰라!”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항단연은 “그간의 광복회 갈등 양상은 ‘친일청산’ 공약으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김원웅 광복회장의 공약이행을 위한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의 내부 진통으로 공법단체인 광복회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외부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향단연은 “정부가 주관한 임시정부수립 기념식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의 수장인 광복회장의 멱살을 잡은 한 광복회원의 광기 어린 일탈행위조차도 정치적 편향성이니 국론분열이니 하며 광복회원들이 선거로 선출한 김원웅 회장에 대하여 국회의원이라는 엄청난 권력으로 국론을 호도하고 사퇴하라며 월권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윤주경과 국민의힘 정무위원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더하여 향단연은 “광복 76주년이 되도록 바로잡지 못한 잘못된 역사에 대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 잡고 잘못을 뉘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노랑, 빨강, 하양, 보라...그야말로 형형색색의 튜울립이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손짓한다. 어쩌면 빛깔도 그리 고운지 원색의 향연이 황홀하다.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는 지금 튜울립이 한창이다. 튜울립을 심은 곳은 해마다 고양꽃박람회를 열던 공간 주변이다. 이곳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해마다 꽃박람회를 열던 곳으로 올해도 꽃박람회는 중단된 대신, '2021 고양시민 참여정원' 전이 4월 19일 부터 열리고 있다. 튜울립도 보고 시민들이 만든 정원 구경도 해볼만 하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센병과 조선인> 연구회 팀 이끔이(팀리더)로 전체를 아우르던 와타나베 마사에(渡辺 正恵) 씨가 1월 13일(2021) 세상을 뜨셨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는 며칠 전 일본의 고려박물관에서 보내온 제59호(2021.3.1.) 회보를 읽다가 와타나베 씨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 내용이었다. 아니! 와타나베 씨가 세상을 뜨다니? 너무나 놀라운 소식에 일본의 지인(松崎恵美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와타나베 씨의 죽음에 대해, “저희도 매우 놀라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2020) 11월 28일, 고려박물관 총회에서 ‘한센병과 조선인’ 관련 보고를 할 때만 해도 건강했었는데…. 이후 12월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올 1월 13일에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가족에게서 들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내가 와타나베 씨를 만난 것은 2019년 여름 도쿄에 갔을 때로 그때 와타나베 씨는 ‘2020년 한센병(나병) 전시 준비’로 분주했었고 우리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정겹게 나눴다. 그리고 와타나베 씨는 지난해(2020) 8월 16일 <한센병과 조선인> 전시와 관련된 누리편지를 보내왔다. 이윤옥 님! 더위와 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9일 석성국(창문) 의사 추모제가 내북면애향동지회(회장 양재덕)의 주관으로 충북 보은군 내북면 이원리 석성국 의사의 묘역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정상혁 보은군수를 비롯해 우동교 충북남부보훈지청장, 장기영 광복회충북지부장, 내북면애향동지회원 및 기관단체장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열 체크 및 손 소독 등 철저한 방역 조치하에 진행됐다. 석성국 의사는 구한말 의병장이며 당시 참모장으로서 왜병과의 전투에서 큰 공훈을 세웠다. 1908년 적정을 탐색하기 위해 홀로 출진해 적들에게 포위돼 체포되자 온갖 고문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자결했다. 그의 부인 성산 이씨(星山 李氏)는 남편의 시신을 업고 고향에 돌아와 장례를 치르고 묘 앞에서 자결해 석성국 의사의 묘에 합장됐다. 이러한 호국정신을 받들어 1968년에 뜻있는 내북면 애향동지회에서 묘비를 건립했고 매년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양재덕 애향동지회장은 "앞으로도 애국ㆍ애족 정신을 기리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데 온 힘을 쏟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