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펴보고 있는데 주요한 인물의 한 분이 바로 부인 소헌 왕후다. 태조 4년(1395)에 출생하여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문하시중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며,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태종 8년(1408)에 충녕군(忠寧君) 이도(李祹)와 가례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태종 18년(1418) 4월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으로 봉해졌으며, 같은 해 9월에 세종이 즉위하니 12월에 왕후로 봉하여 공비(恭妃)라 일컬었다. 수난상황 소헌 왕후는 어릴 때부터 정숙하고 총명하여 14살에 세종과 혼인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친정아버지인 심온이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면서 친정집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대신들은 반역자의 딸도 궁궐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야단이었지만 세종은 자신의 아내 곧 왕비가 궁궐에서 내쫓길까 노심초사하였다. 심온은 세종이 즉위한 뒤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청(沈泟)이 군국대사를 상왕(上王: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大逆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정의공주의 생애 세종 때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특히 가족으로 세종을 도운 부인 소헌(昭憲)왕후와 딸 정의공주(1415년 ~ 1477)가 있다. 세종은 딸 2명과 아들 8명을 두었다. 맏딸 정소(貞昭) 공주와 맏아들 이향(李珦, 문종)에 이어 둘째 딸 정의 공주다. 세종은 그 밖에 아들 7이 더 있다. 정의공주는 세종 즉위 전에 출생하였다고 하나 다만 오빠 문종(文宗)과 동생 세조(世祖) 사이에 태어난 사실에 비추어 태종 15년(1415)~16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세종 10년(1428)에 정의공주에 봉해졌고, 안맹담(安孟聃)과 가례를 치렀다. 안맹담은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이다. 그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이후 안맹담은 계유정난에 협조하여 성록대부로 가자(加資)되었고, 세조 3년(1457)에 수록대부에 가자되었다. 이러한 남편의 공훈에 힘입어 정의공주는 세조로부터 노비와 전토 등을 받았다. 또한 성종은 공주의 건강이 좋지 않자 4남 안빈세를 동부승지에 임명하였고, 왕비와 함께 친히 문병을 하러 가기도 하였다. 정의공주는 1477년(성종 8)에 세상을 떴다. 정의공주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의학을 정립시킨 사람으로 노중례(盧重禮, 또는 盧仲禮, 미상~1452)가 있다. 그는 평민 출신으로 출생 연대는 전해지지 않으나 뛰어난 의료 활동과 한의학 서적 등을 펴냈다. 문종 2년(1452) 3월에 죽었다. 조선전기 의관으로 그의 깊은 학식과 뛰어난 의술을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간략한 생애를 보자. 생애 및 활동사항 ∙세종 5년(1423) : 3월에 김정해(金正亥) 등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산 약재 62종 가운데 중국산과 같지 않은 것을 비교 연구하여 약효의 적부를 감별하게 하였다. ∙세종 9년(1427 ~1428) : 이때부터 뛰어난 의술로 인하여 세종 초기부터 전의감(典醫監, 조선 때, 왕실의 의약을 맡던 관아)에서 일하였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약재들의 성미와 효능, 그리고 다른 나라 약재들을 대비 고찰하는 연구 사업을 진행하였다. ∙세종 12년(1430): 명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소산 약초들의 진가를 태의원(太醫院) 의사(醫士) 주영중(周永中) 등과 판별, 조사하여 약초로 쓸 수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 20종에 달하였다. ∙세종 13년(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