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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쓸데 없이 때는 불?'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군불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옛날이나 요즘이나 오란비철에 여러 날 비가 오면 겪게 되는 어려움이 바로 숨씨 가운데(공기 중에) 물이 많은 것과 이어지기도 하죠.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빨래가 잘 안 마르는 것도 그렇고 벽지가 떨어지기도 하고 사이사이에 곰팡이가 자라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요즘이야 뽀송이(제습기)나 찬바람틀(에어컨)으로  말리면 되지만 옛날에는 그런게 없었으니 아궁이에 불을 넣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렇게 아궁이에 때는 불을 ‘군불’이라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신 분들은 어릴 때 "군불 넣어라.", "군불 좀 때야 겠다."는 말을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오란비(장마)철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 방을 데울 때에도 군불을 땐다는 말을 하는데 처음에 ‘군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불을 땐다고 해도 될 텐데 왜 ‘군불’이라고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요

그냥 불을 땐다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두 가지 말을 가려서 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따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불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불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값진 일은 먹거리를 익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밥을 할 때 국을 끓일 때도 불이 있어야 했지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할 때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게 바로 방을 데우는 구실도 했습니다. 먹거리도 익히고 방도 데우고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부엌이 딸리지 않는 방을 데우려면 아궁이에 걸려 있는 빈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솥이 달구어져 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먹거리를 익힐 일도 없는데 오로지 방을 데우려고 불을 때야 하는 것이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듯합니다. '군불'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음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방을 덥히려고 아궁이에 때는 불'이라고 풀이를 한 까닭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군불’이라는 말이 ‘군+불’의 짜임입니다. 앞에 있는 ‘군-’이라는 앞가지(접두사)는 ‘군것’처럼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기도 하고 ‘군사람’처럼 ‘가외로 더한’, ‘덧붙은’의 뜻을 더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군불’도 ‘음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방을 덥히려고 아궁이에 때는 불’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군불'을 때는 곳이 드물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의 짜임을 알아두면 새로운 말을 만들 때 써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간추려 보면 ‘군불’은 ‘군+불’의 짜임이고 ‘군-’이 가진 뜻 때문에 ‘군불’은 ‘쓸데없이 때는 불’이라는 뜻으로도 쓰고, 가외로 더한 불이라는 뜻의 ‘가욋불’이라는 뜻으로 쓰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불’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군-'이 들어 간 '군살'과 아랑곳한 이야기도 해 드리겠습니다. ‘군-’이라는 앞가지에 그런 뜻이 있다 보니 우리가 흔히 ‘나잇살’이라고 하는 ‘군살’이라도 말도 ‘불필요하게 덧붙은 살’이라는 뜻이 되고 이 살을 빼려고 애를 쓰는 것을 두고  ‘다이어트’라는 들온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군살을 빼는 것’인 만큼 그런 뜻을 담아서 ‘군살빼기’라고 해도 얼마든지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것', '군것질'도 같은 짜임으로 된 말이니 따로 풀이를 해 드리지 않아도 뜻을 바로 알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말 살리는 일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누구나 잘 아는 말을 가지고 필요한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일이 바로 우리말 살리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 말을 갖다 쓰는 것이 쉽고 편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말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토박이말을 잘 가르치고 배워서 될 수 있으면 토박이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고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일에도 더욱 힘과 슬기를 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