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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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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지방(經驗之方, 경험으로 안 방책)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8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백성이 잘사는 길을 추구하는[民爲邦本] 세종은 그 실천과정의 하나로 신제(新制, 新製)나 창제를 목표로 삼았다. 그 방법으로는 고전에서 관례를 찾고 토론을 통해 현실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이를 실천하고 법제화 해나가려 했다. 여기서 또 하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체계화하고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각도에 《농상집요》 등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면하다.) 호조에 전지하기를, "각도에 공문을 내어 메밀을 경작하게 하되, 《농상집요(農桑輯要)》ㆍ《사시찬요(四時纂要)》 및 본국(本國)의 경험방(經驗方)으로 시기에 따라 경작할 것을 권면시키라." 하였다.(⟪세종실록⟫5/6/1) 이미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경험과 논리적인 방법을 종합해 만든 《농상집요(農桑輯要)》ㆍ《사시찬요(四時纂要)》가 있지만 여기에 우리나라 및 각 지역 특성에 맞는 ‘경험방’을 활용하여 경작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전의제조(典醫提調, 궁중에서 약을 짓고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우두머리) 황자후(黃子厚)가 종친 양부 이외에서는 병가에서 말을 보내어 의원을 청할 것을 아뢴 일이 있었다. “병이 나면 치료할 처방 방안으로 《집성향약방(集成鄕樂

안거락업(安居樂業), 편안히 살고 즐겁게 일하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7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안거락업’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업을 즐기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안거락업 : 본도 백성이 다시 들어가서 살게 하지 않는다는 교서를 받들고 이곳에 내려와 펴서 읽어 주면, 사람마다 모르던 것을 갑자기 깨달아서 안거락업(安居樂業)할 것이며,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모두 고향 마을에 돌아오게 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이 당연히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어리석은 신의 계책입니다. (⟪세종실록⟫ 25/10/24) 함길도 도관찰사 정갑손(鄭甲孫)이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지만 여기서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안심하고 ㉯이 땅에 돌아와 업에 기쁘게 종사하고 ㉰안거락업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목표는 모두가 안정되어 업에 종사하여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는 비록 신하가 올리는 말이지만 당시 세종대 정치의 목표이기도 한 락생(樂生)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직(職)과 업(業)이 등장한다. ‘직’은 맡은 바 일[직무]이고 ‘업’은 일에 임하는 정신적 자세다. 생업은 살아가며 중히 여겨야 하는 일에 임하는 정신이고 천직은 일을 하늘이 준 일이라 중히 여기는 일이다. 업과 생업 : (허조에게 명하여 도도웅와

열민지사(悅民之事, 백성을 기쁘게 할 일)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6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가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간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과제가 정해지면 좋은 해답이 나올 때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요즘 정치에서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종은 신하들의 관점과 달리 백성 편에서 생각해 보려고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에 ‘열민지사(悅民之事)’에 대해서 두 개의 뒷이야기가 있다. 백성이 원망하는 것과 백성을 기쁘게 할 일을 진술하라 세종 25년에 비가 오지 않자 비를 오게 하려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신하와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나이 든 자에게 영직(직함만 있고 일이 없는 허직)을 제수하고 환상(還上, 고을의 사창에서 봄에 백성에게 빌려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받아들이던 일)을 면제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게 된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고려 때에는 원단제(圓壇祭)를 지냈었는데, 우리 태종(太宗)께서 참례(僭禮, 분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예의)의 일은 다 혁파하셨다. 원단제를 혁파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

간행언청(諫行言聽, 간하면 행하고 말하면 들어주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5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가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간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과제가 정해지면 좋은 해답이 나올 때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그리고 좋은 해법을 찾아 현장에서 실현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갔다. 특히 임금이라면 백성을 보는 눈이 신하들이 보는 관점과 다를 수 있는데 세종은 신하들의 건의[소, 訴]를 비교적 잘 받아들였다. 이의 대한 한 증거로 신하가 직접 임금을 평가하는 말을 한 증거가 허조의 졸기에서 나왔다. 간(諫)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유한(遺恨)이 없다.(허조의 졸기) 좌의정 허조(許稠)가 졸(卒)하였다. 허조는 경상도 하양현 사람인데 나이 17살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9살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뒤에 은문(恩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자기의 시관(試官)을 가리켜 일컫는 말) 염정수(廉廷秀)가 사형을 당하였는데, 문하생(門下生)과 옛 부하이던 아전들이 감히 가 보는 이가 없었는데, 조(稠)는 홀로 시체를 어루만지며 슬피 울고, 널을

락어토론(樂於討論, 토론을 즐겨 하시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가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간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과제가 정해지면 토론하여 좋은 해법을 찾아 현장에서 실현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갔다. 이 가운데 특히 필요한 문제는 좋은 해답이 나올 때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을 즐겨하시다 (성균 생원 방운 등이 회암사의 대대적인 수리와 아울러 불교의 폐단에 대하여 상소하다) 성균 생원 방운(方運) 등이 상서하기를, "신 등이 그윽이 천하의 도리를 살피옵건대, 바른 것이 있고 사특한 것이 있사와, 바른 것이 오르면 우리의 도가 행하여... 이제 우리 주상 전하께옵서는 하늘의 운행이 질서 있음을 본받으시어 이(离, 주역의 괘명)를 잇고 밝음을 향하사, 몸을 다스리시되 항상 조심하시고 삼가심을 잊지 아니하심에 이르시고, 덕(德)이 비록 성하시나 더욱 토론을 즐겨하시고, 열성(列聖)의 아름다운 법을 본받으시어 만대에 길이 힘입을 것을 넓히려 생각하셨나이다. (그 결과) 노비의 수효를 감하여 관부(官府)에 적(籍)을

문어농부(問於農夫, 농부에게 까닭을 묻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3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가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간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과제가 정해지면 토론하여 좋은 해법을 찾아 현장에서 실현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갔다. 이 가운데 특히 필요한 문제는 해당 관련된 사람에게 물었다. 농민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농사법을 개량해 나갔다. 다른 임금에게서 찾을 수 없는 세종 7년의 한 예가 있다. (심한 가뭄으로 농사 사정을 알아보고자 서문 밖에 나가 두루 살피다.) 임금이 말하기를,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잠시 내렸으나,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이렇게 되니, 장차 벼농사 형편을 나가 보리라." 하고, 드디어 서문 밖에 나가 두루 살피고 돌아와서, 대언(代言, 승지)들에게 말하였다. "금년 벼농사는 모두들 ‘꽤 잘 되었다.’라고 하더니, 오늘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늘 본 영서역(迎曙驛) 홍제원의 땅은 비옥한 편인가 메마른 편인가." 하니 지신사 곽존중(郭存中)이 대답하기를, "이들 땅은 원래

고제이문(古制以聞, 옛 제도를 조사하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2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임금에게 고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의제가 되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고 더욱 연구하여, 그것도 두뇌집단인 집현전의 집단지성을 통하여 좋은 해법을 찾아 현장에서 실현하고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나갔다.’(以爲恒式) 그 가운데 경연 등을 통해 옛 문헌을 공부하고 현실에서 고쳐 나갈 길을 찾으려 했다. 그 첫 번째 과제로 옛 문헌이나 관례를 찾는 ‘고제이문(古制以聞)’이 있다. 둑제(纛祭)에 대한 의견 한 예로 세종 12년 둑제를 지낼 때 무반의 참여 여부를 문헌에서 찾는다. 이에 무반의 배제를 허락지 말 것을 건의한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이제 교지(敎旨)를 받자온즉, ‘서반(西班)에서 호군(護軍, 정4품의 무관) 이상은 둑제(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국가 제사)를 지낼 때 재계(齋戒,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함)를 드리지도 않고 배제(陪祭, 임금을 모시고 함께 제사 지냄

광문편부(廣問便否, 좋은지 나쁜지를 널리 물어보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11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일처리에 앞서 문제점을 조사하고 옛 문헌과 자료를 살피고, 여러 사람에게 물으며, 관계자와 토론하며 더 좋은 방안을 찾으려 했다. 답을 찾은 후에는 항식(恒式, 항상 따라야 하는 형식이나 정해진 법식)으로 법제화하고자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옳고 그른 것인지 널리 물었다. 여기 세종 4년에 한증소의 이익과 무익에 대해 논의한 예가 있다. 예조에 전지(傳旨)하기를, "병든 사람으로 한증소(汗蒸所)*에 와서 당초에 땀을 내면 병이 나으리라 하였던 것이, 그 탓으로 죽은 자가 흔히 있게 된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널리 물어보아(廣問便否)’, 과연 이익이 없다면 폐지할 것이요, 만일 병에 이로움이 있다면, 잘 아는 의원을 보내어 매일 가서 보도록 하되, 환자가 오면 그의 병증세를 진단하여, 땀낼 병이면 땀을 내게 하고, 병이 심하고 기운이 약한 자는 그만두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4/ 8/ 25) * 숯이나 도자기를 굽고 남은 가마 속 열기로 땀을 내 몸의 독소를 배출하던 곳 또 다른 예로 세종 17년 좌의정 최윤덕이 국경방비에 따른 군사시설정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