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차를 타고 가면서 아가씨는 담배를 한 대 꺼내었다. 김 교수는 차에 달린 전기부싯돌을 달구어 불을 붙여 주었다. 잠시 뒤 아가씨가 말했다. “오빠는 왜 자꾸 나를 만나려고 하시죠? 부담되네요.” “저런! 너에게 부담을 주었다면 미안하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오빠는 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별것을 다 묻는군.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내가 이미 다른 데서 소주를 한잔했기 때문에 맨정신은 아니었고. 그렇지만 처음 본 순간 ‘얘는 보통 아가씨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너는 왜 나에 대해서 여태껏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니? 나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 “오빠, 저는 손님의 신상에 관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요.” “그래? 그러면 너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니?” “아니에요, 오빠. 다른 사람에게는 제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어요. 가게 번호를 적어주지요.” “그런데 왜 나에게는 너의 전화번호를 주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했어?” “글쎄요. 죄라면 술이 죄지요, 오빠~” 마지막 말을 조금 느리게 하면서 아가씨는 김 교수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아가씨 눈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어찌 된 일인지 약속 시간이 삼십 분이나 지나도록 아가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궁금하여 공중전화를 걸어보았다. 아가씨가 받는데,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먹어 못 일어나고 있었단다. 기다릴 테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라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삼십 분 이상이 지나서 미스 최가 나타났다.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피곤한 모습이다. 사실 술집아가씨들이 술을 즐겨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이니까 할 수 없이 마시는 것이리라. 그런데도 짓궂은 손님들은 자꾸 술을 먹여서 젊은 여자가 해롱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일종의 가학성 술 먹이기라고 할까? 어제는 단골이 아닌 웬 뜨내기손님이 왔는데, 폭탄주를 5잔이나 돌려서 고생했단다. 김 교수는 평소에 마시는 커피 대신 미스 최에게는 생강차를 시키고 자신은 구기자차를 시켰다.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보니 생강차는 숙취 해소에 좋다고 쓰여 있고, 구기자차는 시력이 좋아진다고 쓰여 있다. 김 교수는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은 항상 젊다고 큰소리치지만, 육체가 노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나이가 들어가자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나기 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덟 번째 만남 김 교수는 그때까지 계속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데 어떻게 거부한다는 말인가?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참고 다닐 수밖에. 전에는 입시가 전기와 후기로 2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제도가 바뀌어 가나다라 군으로 4번의 기회가 있게 되었다. 수험생의 처지에서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아들의 수능 점수로는 아무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어렵다는데, 아들은 원서를 한번 넣어 보잔다. 김 교수는 조건을 붙였다. 가군과 나군은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되 다군은 김 교수가 근무하는 수도권의 S대로 원서를 넣자. 수도권의 S대에 합격하면 교직원 자녀로서 등록금이 면제되니까 조건이 좋았다. 이제는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이번에는 김 교수가 미스 최에게 전화했다. 만난 지 1주일도 안 되었는데 웬일일까 미스 최는 의아해한다. “웬일이에요 오빠?” “갑자기 네가 만나고 싶어서 전화했다” “오빠, 나 《아리랑》 아직 다 못 읽었어요.” “《아리랑》이 그렇게 중요하냐?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 “알았어요, 오빠. 그런데 오빠 바람났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