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찜통더위 여전히 한창인데 도둑같이 찾아온 입추(立秋). 여름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까스로 마련되는 가을의 거점. 위는 정연복 시인의 <한여름의 입추>라는 시 일부입니다. 시인은 “찜통더위 여전히 한창인데 도둑같이 찾아온 입추(立秋).”라고 노래합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13번째 입추(立秋)로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해가 지나가는 길인 황경(黃經)이 135°에 도달하는 때지요.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종요로운 때이므로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씨가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입추가 지난 뒤 비가 5일 이상 계속되면 비가 멎기를 바라는 기청제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는 비가 오기는커녕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위 시 <한여름의 입추> 뒷부분에는 “여름의 끝 아직 저만치 있어도, 가을 또한 첫발을 내디뎠으니. 익을 대로 푹 익어버린 한여름 속에, 머잖아 아기같이 가을은 생겨나리.”라고 언어의 농축을 합니다. 지금 불볕더위기 기승을 부려 열대야로 몸살을 앓고 온열환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잦지만, 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전통사회 사람들이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쉬었던 다양한 방식을 소개한다. 오늘날과 같은 연차 휴가는 아니었지만, 관료에게는 제도화된 휴일과 휴가가 있었고, 선비는 독서와 교유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농민들은 농사일이 한고비를 넘으면 호미를 씻어 걸어 두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쉬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쇄미록(瑣尾錄)》과 《해주일록(海洲日錄)》에는 무더위와 고된 노동 속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재충전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다. 관료에게도 휴일과 휴가가 있었다 신라시대에도 관인의 휴일과 휴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는 더욱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됐다. 고려의 관인들은 매월 1일ㆍ8일ㆍ15일ㆍ23일, 대략 7일마다 하루씩 쉬는 ‘칠가(七暇)’를 누렸다. 자신이 병들거나 부모를 간병할 때, 멀리서 사는 부모를 찾아뵙거나 부모의 묘를 돌볼 때에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혼례ㆍ상례ㆍ제사ㆍ질병ㆍ부모 봉양 등을 위한 ‘급가(給暇)’가 운영됐다. 세종은 젊고 재능 있는 문관들이 공무에서 벗어나 독서에 전념하도록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무더위의 한가운데인 중복(中伏)입니다. 여기서 ‘복(伏)’ 자는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는 모양으로, 가을철의 금(金)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다가 아직 더운 여름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이 복날을 '서기제복'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서기제복에서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써서 복날은 더위를 피하는 피서가 아니라 정복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중복은 삼복의 둘째 날인데 하지 뒤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 뒤 첫 경일을 말복(末伏)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또는 삼복이라 합니다. 천간(天干: 갑-甲ㆍ을-乙ㆍ병-丙ㆍ정-丁ㆍ무-戊ㆍ기-己ㆍ경-庚ㆍ신-辛ㆍ임-壬ㆍ계-癸) 가운데 ‘경(庚)’이 들어간 경일을 복날로 삼은 까닭은, 경(庚)이 계절로 가을을 상징하는데 이날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립니다. 그러나 올해처럼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걸리기도 하는데,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