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여 우 비 - 한준ㆍ박세준 별안간 맘이 왜 이럴까 아무 예고도 없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사랑을 가득 품은 그대 여우비가 내려요 난 아직 준비 안 됐지만 그댈 향한 이 맘 사랑인 것 같아요 혹 착각이 아닌지 또 내게 물어봐도 내 맘은 말하죠 이미 그댈 사랑을 한다고 난 벌써 시작해버렸죠 그댈 향한 이 맘 놓을 수가 없네요 난 착각이라 해도 난 이어 가볼래요 그댄 아니래도 이미 나는 사랑하고 있죠 활짝 갠 날, 갑자기 비가 잠깐 쏟아진다. 그렇게 내리는 비를 우리는 ‘여우비’라 한다. 옛이야기에 여우를 사랑한 구름이 여우가 시집가자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을 ‘여우비’라고 했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비구름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대기 높은 곳에서 강한 돌풍이 몰아쳐 그 탓에 맑은 곳까지 비가 온다고 얘기한다. 비를 표현하는 우리말 이름이 참 많다. 봄에는 ‘가랑비’, ‘보슬비’, ‘이슬비’, ‘모종비’, 모낼 무렵 한목에 오는 ‘목비’도 있다. 또 여름에 비가 내리면 일을 못 하고 잠을 잔다고 하여 ‘잠비’, 여름철 세차게 내리는 ‘달구비’, ‘무더기비’(폭우, 집중호우), ‘자드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첫눈 오는 날’ 일부) 지난 11월 22일은 첫눈이 온다는 소설이었다.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 ‘소설(小雪)’을 맞아, 우리떡과 민속놀이 전통나눔으로 양산시민들과 따뜻한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부산대학교 박물관은 ‘소설’을 맞아 낮 11시부터 우리떡을 나누고 민속놀이를 체험하는 '따뜻한 첫눈이 내리는 날, 소설(小雪)' 행사를 연 것이다. 행사장에서는 다양한 전통떡(4종) 시식과 박물관 소장 민속문화재를 딴 미니 에코백(4종) 꾸미기 체험, 민속놀이인 윷놀이ㆍ투호ㆍ활쏘기ㆍ제기차기ㆍ팽이치기 체험 등을 했다고 한다. 소설 무렵은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볕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을 첼로 - 정진규 가을 첼로는 해 지는 기인 능선을 지니고 있다 소리의 윤곽이 뚜렷하다 능선 위 서 있는 나무들의 각자가 보인다. 그저 통주저음(通奏低音)으로만 젖던 제 슬픔을 비로소 가볍게 추스른다. 처음처럼 슬픔의 모서리를 문지르는 손, 와서 닿는 살갗이 차끈하다. 정신이 든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처음부터 등장한 첼로 음악을 리학성이 수학을 풀 때마다 듣는다. 리학성은 그렇게 첼로 음악을 들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추스른다. 리학성은 마치 우리의 전통악기 아쟁의 산조처럼 마음이 아프지만, 펑펑 울 수 없을 때 첼로 음악을 듣고 추스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연주되는 첼로 음악은 가장 종교적이며 가장 인간적인 작곡가 J. S. 바흐의 위대한 첼로 작품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가운데 ‘프렐류드’였다. 서양 클래식 연주에서 저음역을 맡는 첼로라는 현악기는 따뜻한 음색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울림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특히 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라는 악기의 깊이와 규모를 체험할 수 있는 장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이 음악은 19세기 말까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 면 - 허홍구 당신은 누굽니까? 늑대입니까? 양입니까? 언 듯 언 듯 더럽고 치사한 나의 얼굴도 보입니다 이제 우리 가면을 벗어 던집시다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그믐 전날, 탈을 쓴 방상씨(方相氏)가 <처용무(處容舞)>를 추면서 잡귀를 쫓아내는 놀이 곧 <나례(儺禮>를 했다. <처용무>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이다. 《삼국유사》의 <처용랑ㆍ망해사> 조에 보면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으로부터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런데 처용무의 특징은 자기의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다. 우리 역사에 보면 <나례> 말고도 탈 곧 가면을 쓰고 놀았던 탈놀이들이 많은데 크게 황해도 지방의 ‘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영남지방의 오광대ㆍ들놀음[野遊], 동해안지역의 ‘별신굿놀이’ 등이 있다. 그 탈놀이 가운데 고성오광대를 보면 말뚝이를 내세워 신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까 치 밥 - 김정원 늦가을 햇살 거푸 불러와 할머니는 감 너댓 개를 가지 끝에 다독였다 쪽마루에 앉아 푸른 산맥 굵은 손등을 만지며 혼자 중얼거렸다 ‘시린 추위 치열해도 잘 버텨 줘야 해 허기진 까치가 올 때까지 알았제......’ 텅 빈 하늘에 주홍빛 까치밥 자비의 눈빛에 반짝거렸다 온 마을 등불 같이 환히 노을 속 번져가는 할머니의 하얀 박꽃미소. 이틀 뒤면 24절기의 열아홉째인 ‘입동(立冬)’인데 이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으로 입동이라 부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궁궐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이런 궁궐의 풍습처럼 민간에서도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도 있다. 이는 입동 등에 나이 든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다. 이때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운 집이라도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 날 - 김미숙 읍내 오일장 서는 날 새벽밥 지어 놓고 십 리 길 나선 엄마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용바우재 넘어간다 이리저리 해종일 보내다가 산그림자 길게 내려오면 엄마는 보따리 이고 지고 험준한 고갯길 넘느라 작은 키가 더 작아진다 바다가 없는 산골 마을 저녁 밥상에 노릇노릇 구워 놓은 고등어 한 마리에 여섯 식구 얼굴들이 달빛처럼 환해진다 우리나라에 상설시장이 들어서기 이전 온 나라 곳곳에는 닷새마다 ‘오일장’이라는 장이 열렸다. 인천 강화군에 에 ‘강화풍물시장(매 2, 7일)’이 서고, 경기 화성에 발안만세시장(매 5, 10일), 강원도 정선 ‘정선아리랑시장(매 2, 7일), 전남 순천 ‘웃장(매 5, 10일), 경남 함야 ’함양토종약초시장(매 5, 10일) 등이 현재도 열리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조 때 펴낸 《동국문헌비고》에서는 1770년대 당시의 전국 장시의 수를 1,064개로 헤아리고 있고, 19세기의 《만기요람》에서는 1,057개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서 오일장이 운영 중인데 김동리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이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 등은 소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득하다 - 정용국 “모롱이 개암 열매 제풀에 떨어지고 상강도 주춤주춤 잰걸음을 치는 저녁 부뚜막 개다리소반엔 시래깃국 두 그릇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홍적세(洪績世) 까만 시간을 되짚고 돌아왔다“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여덟째 절기 ‘상강(霜降)’이다. ‘상강’은 ‘서리가 내린다.’라는 뜻으로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으며, 이때는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의 계절이다. 1961년 10월 24일 치 동아일보에 보면 “누렇게 시든 가로수 잎들이 포장한 길 위에 뒹굴고, 온기 없는 석양이 빌딩 창문에 길게 비치면 가을도 고비를 넘긴다.”라며 상강을 이야기한다. 예전 농부들은 다 익은 호박을 거둘 때 아무리 급해도 반드시 상강을 지나 첫서리를 한 번 맞히고 나서 땄다고 한다. 그것은 서리를 맞혀야 겨우내 썩지 않고 보존되기 때문이다. 또 국화차는 서리를 맞힌 꽃잎이어야 향이 진하다. 여기 정용국 시인은 그의 시 <아득하다>에서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 홍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기 러 기 - 메리 올리버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지난주 우리는 24절기의 열일곱째 ‘한로(寒露)’를 보냈다. ‘한로’는 이름처럼 찬 이슬이 내리는 날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다. 초후에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름새 대신 기러기 등 겨울새가 날아오는 때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혼례에는 신랑이 목기러기를 받아 상 위에 놓고 절을 두 번 하는 ‘전안례(奠雁禮)’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맞아 기러기처럼 백년해로하고 살기를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기러기가 암컷과 수컷이 한번 만나면 평생 다른 것에 눈을 주지 않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따라 죽는다고 믿었기에 전통혼례에 기러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기러기아빠’라는 사람들이 있다. 조기유학 열풍으로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병(病)> - 허홍구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까? 이름은 병이지만 여러 형제가 있어요 앞뒤가 꽉 막혀 소통되지 않는 곳을 찾아들어요. 막힌 공간에 병이 든다는 것은 다 알잖아요 소통이 없으면 몸도 맘도 괴롭고 답답해요 공기도 통해야 하지만 피도 잘 통해야 하고 마음도 잘 통해야 서로 사랑하게 되잖아요 고집불통 불평불만 욕심 많고 질투하는 맘은 스스로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 갇히게 되지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건강하게 살다 가야겠지요 마음 활짝 열어놓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세요. 조선시대는 기록의 나라였는데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따위가 그 증거다. 그런데 그건 나랏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들도 기록하고 또 기록하면서 살았다. 그 가운데 노인병 다스림의 기록 《정청일기(政廳日記)》도 그 하나다. 《정청일기》는 영의정이면서 영중추부사인 75살 노수신의 병을 다스리는 상세한 기록이다. 1588년(선조 21년)부터 시작해서 1590년 3월 11일까지 병색이 깊은 노수신의 건강상태와 음식 그리고 약 수발 상황이 자세히 쓰여 있다. 기록을 보면 날마다 먹은 식사는 밥을 위주로 탕국, 구이, 마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 반 자 - 고정애 거리에서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네거리에 이르러 의견이 갈렸다 목적지까지 A는 왼쪽 B는 오른쪽 오른쪽이 정답인데 A가 더 우기는 통에 180도 반대로 가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티격태격 서로 옳다며 잘못되게 가기도 하는 A 그리고 B 내 안에도 그 두 사람 살고 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청춘은 아름다워라》, 《유리알 유희》 등을 읽었지만, 특히 당시 우리나라에 《지와 사랑》이란 이름으로 뒤쳐 펴낸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에선 나르치스(지성)과 골드문트(사랑)란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실제 사람의 마음속에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내용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람은 평생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사실 인생이란 크고 작은 갈등과 선택 속에서 헤매다가 죽는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은 도덕이나 규칙 속에서 살게 마련이지만, 그런 삶 속에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또 하나의 요소, 곧 욕망과 쾌락이 불쑥 고개를 내밀어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