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은 장 도 - 김남희 가까이 오지마라 나는 시퍼렇게 독기 품은 조선의 여자다 굽힐 줄 모르는 정절 당당함이 미덕이다 가슴에 숨기고 살아온 꽃다운 순애보 조선 여자의 자존심이다 맺히고 맺힌 한 올올이 풀어 흰 버선코 날 세운 도도함으로 그대 앞에 선 수호신이다 지난 1982년 8월 5일부터 1982년 10월 29일까지 방영된 MBC 텔레비전에서는 여인열전 세 번째 시리즈로 이혜숙, 유인촌 주연의 <은장도>가 방영되었다. <은장도>는 사대부 가문에서 양반집 여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정한 속에서 굴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여인의 역정을 그렸다. 은장도는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로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임진왜란(1592) 이후부터는 사대부 양반가문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몸에 지녔다. 여인들의 장도는 이후 노리개 장식으로도 쓰여 화려한 모습도 나타나게 되었다. 여인들이 몸에 지녔던 것은 은(銀)장도가 주였지만 은장도 말고도 칼자루와 칼집의 종류에 따라서 백옥(白玉)장도, 죽(竹)장도, 먹감장도, 오동(烏銅)장도, 대모(玳瑁, 바다거북의 등딱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노 을 - 백성일 서녘 하늘 붉게 이글거리는 노을 아무도 모르게 한 바가지 퍼담아 늦은 저녁나절 울타리 물주는 내님 손톱을 슬쩍 담갔더니 봉숭아 꽃물 붉게 물들었네 우리 겨레의 풍속 가운데 입하와 소만 무렵에 있었던 것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었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봉숭아꽃이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인다. 이 풍속은 붉은색이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요즈음도 소만 무렵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노을에 대해 조병화 시인은 ‘해는 온종일 스스로의 열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여놓고’라고 했고, 김규동 시인은 ‘노을은 신이 나서 붉은 물감을 함부로 칠하며 북을 치고 농부들같이 춤을 춘다’라고 했으며, 김광균 시인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산사(山寺) 돌계단 - 김 상 현 중생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주는 절간 오르는 돌계단이 바로 누워있는 부처님이시다 “절간에 부처가 있나? 절간은 스님들 숙소지 부처는 한 놈도 없다. 여러분이 못하는 일을 공양주가 하고, 처사가 한다. 그들을 선지식으로 받들어 모셔라. 여러분이 하지 못하는 하찮은 일을 하는 그들이 문수고 보현이야.”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이 지난 2012년 동안거 해제법회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어서 스님은 말씀하신다. “내 주변에 있던 내게 밥해주던 공양주보살, 군불 때주던 부목처사가 선지식이다. 산문을 나서서는 주막의 주모가 선지식이었고, 어부ㆍ대장장이ㆍ서울 시청 앞 노숙자가 내 삶의 선지식임을 깨달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스승이었다.” 엄청난 말씀이다. 고매한 조실스님께서 공양주보살ㆍ부목처사ㆍ주모, 어부ㆍ대장장이ㆍ노숙자가 바로 문수고 보살이요 자신의 스승이라고 일갈하셨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공양주보살과 노숙자들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있을까? 사실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민의 종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님의 말씀처럼 국민을 공양주보살ㆍ부목처사로 생각지 않는 듯하다. 강원도 고성군에는 천년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가 바라는 세상 - 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나태주 시인은 그의 시 <풀꽃>에서 노래한다. 여기서 나태주 시인이 말한 “너”는 바로 “쥐꼬리망초”를 보고 노래한 것일지 모른다. 쥐꼬리망초는 꽃의 크기가 2~3m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꽃이어서 앙증맞고 귀여운 꽃이다. 이 꽃은 한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한꺼번에 피지 않고 한 개나 두 개씩 차례로 천천히 꽃을 피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단번에 터뜨리는 것이 두려워서 조심스럽게 꽃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 람 - 소 복 수 바람 소리에 무심하고져 삶의 처마 끝 풍경을 뗀다 가만히 불 밝혀 차 따르고 혜능선사의 지혜를 읽으면 - 바람이냐 깃발이냐 그건 결국 마음이라고, 내 속 뜰엔 여전히 꽃잎 지고 산새도 노래를 그치지 않는데 다시금 풍경을 달아야겠다. 애꿎은 바람 한 자락 내 안에 있음을. 속세를 벗어난 숲속 고요한 산사. 그 산사 아름다운 처마 끝에 고즈넉한 풍경 하나 걸렸다. 그리고 그 풍경이 청아하고 작은 소리를 내고 있다. 저기 바람이 불고 있음이렸다. 풍경은 바쁜 이 시대 사람들이 마음속에 일렁이는 온갖 상념을 가라앉히는 소리, 그리워해도 좋을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소복수 시인은 그의 시 <바람>에서 그 바람 소리에 무심하고져 삶의 끝 풍경을 떼었단다. 그 작고 아름다운 풍경 소리마저도 거부하려는 몸짓인가? 그러나 혜능선사는 바람이나 깃발 탓이 아닌 결국 마음 탓이라고 달랜다. 풍경을 떼도 여전히 꽃잎도 지고, 산새도 노래를 그치지 않는데 애꿎은 바람 한 자락, 풍경 하나 탓할 일이 아니란 속삭임이다. 그래서 소복수 시인은 다시금 풍경을 달아야겠다고 손을 들었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l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엄마의 사랑법 - 박 혜 성 나만 보면 하시는 말씀 치매에 걸렸어도 요양원에서도 만날 때마다 하시는 말씀 밥 먹었나? 듣기만 해도 눈물 나는 사랑입니다. 농부 전희식 선생은 《똥꽃: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을 펴냈다. 선생은 언제나 어머니의 건강보다도 '존엄'을 더 귀하게 생각한다. 매일 집을 나설 때와 집에 들어올 때,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린다.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음식을 적게 주지도 않고, 거동이 불편하다고 마냥 누워만 계시라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치매에 걸린 어머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주고, 어머니를 바보로 만드는 도시를 떠나, 어머니 원래의 영역인 산과 들로 모시고 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극력 노동운동가였던 전희식 선생은 자신이 수배당해 숨어다닐 때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머니 치매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귀농했다고 하는데 이후 어머니는 의사가 놀랄 정도로 회복되었단다. 그러면서 선생은 그런 치매 노인들이 꿈을 현실로 착각한다고 믿는다. 여기 박혜성 시인이 노래하는 것을 보면 치매 노인들이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치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할머니의 연등 - 유 봉 수 오늘은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시골 작은 절집에도 이웃 사람들 모여 저마다의 연등을 받아 들고 절 마당 곳곳에 꽃등을 달고 있습니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구석진 해우소 쪽으로 들고 갑니다 “할머니! 제가 좋은 곳에 달아드릴게요 왜 하필 이 구석진 여기로 오셨어요?” “우리 스님이 어둡고 구석진 곳을 밝혀야 진짜 등불을 밝히는 것이라 말씀했어요.” 이제 다음 주 19일이면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이다. 그래서 곳곳에 연들이 달린다. 대낮에도 켜는 연등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자 함”이란다. 그런데 많은 이는 연등을 걸어놓고 소원을 빈다. 무엇을 빌었을까?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에서 “연기(緣起)의 가르침은 단지 불자(佛子)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은 우리 인류 모두가 함께할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라는 그 지엄한 진리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뜻깊은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비록 힘드시더라도 모두가 환희로운 마음을 가득 담아 이웃과 함께 염화미소를 나누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혼자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 미 - 주장성 저의 잔을 늘 넘치게 부어 주시사 교만의 가시가 돋는 것을 몰랐습니다. 푸른 잎 하나 이슬 한 방울. 심히 부끄럽습니다. 엎드려 기도합니다. “수만 송이의 장미와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마치 내가 장미가 된 듯하다. 나이 들수록 두꺼워지는 것은 얼굴밖에 없는지 근거 없는 자존감만 높아지고 있다. 작은 키와 수영선수처럼 떨 벌어진 어깨, 다리가 불편해서 뒤뚱거리는 걸음까지 어딜 봐서 내가 장미를 닮았을까. 하지만 꽃이나 사람이나 저마다의 개성이 따로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장미가 있는가 하면 키 작은 민들레나 제비꽃, 채송화도 자기만의 매력이 충분하지 않은가.” 수필가 서미애는 그의 수필 <장미가 있는 저녁에>에서 그렇게 읊조린다. 그렇다. 장미가 어디 똑같은 모습이런가? 어디 붉은 장미만 장미인가? 붉은 장미가 있는가 하면, 노랑, 파랑, 흰 장미들도 있다. 따라서 남이 볼품없다고 바라볼지라도 장미는 장미일 뿐이다. 스스로 교만의 가시가 돋아 있더라도 말이다. 주장성 시인은 “교만의 가시가 돋는 것을 몰랐다.”라고 했다. 장미 스스로 가시가 돋는 것을 안다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풀꽃들의 수다 - 유 미 영 부쩍 시끄러워진 양지뜸 소곤소곤 도란도란 떠들어 대는 풀꽃들의 수다에 귀를 쫑긋 세운 봄볕이 녹아든다 바람이 순해진다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이승철 시인은 그의 시 <변산바람꽃>에서 “급하기도 하셔라 / 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중간 줄임) 언 땅 녹여오시느라 /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 잔설 밟고 오시느라 /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라고 노래했다. 아마도 바람이 불어 언 땅을 녹여 변산바람꽃은 피었나 보다. 그렇게 봄의 풀꽃들은 우리 곁에 다가섰다. 이렇게 바람이 피워낸 꽃의 종류를 보면 “여기도 바람꽃, 저기도 바람꽃 하니까 이것저것 생김새 보고 이름 붙여주다가 나도 끼워 달라고 귀찮게 하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럼 너도바람꽃이라고 해라.”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너도바람꽃’, 그럼 나도 빠질 수 없다고 해서 ‘나도바람꽃’, 꽃대가 1개씩 자라서 ‘홀아비바람꽃’, 회오리바람처럼 보인다 해서 ‘회오리바람꽃’, 꿩 발자국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꿩바람꽃’도 있다. 그밖에 만주바람꽃, 풍도바람꽃, 태백바람꽃이 있으며, 그저 아무 꾸밈도 없는 소박한 이름 ‘바람꽃’도 있다. 이렇게 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공 부 - 김기준 운구를 해 보면 안다 저 길이 곧 나의 길이라는 것을 운구를 하다 보면 철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언젠가 친구를 운구해 보면 이윽고 깨닫게 된다 먼 길 가는 길이 이미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운구는 하늘이 주신 기회이자 참다운 공부다 “눈물 짓고 이별하고, 황천길로 떠날 적에” / “빈손 들어 배 위에 얹고, 황천길로 들어갈 때 /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가운데 줄임) 방문 안을 바라보니, 머리맡에 약그릇과 / 지성구원 하던 모양 여기저기 던져있고” / 처자권속 돌아앉아, 눈물 짓고 있는 모양 / 산천초목도 설워하고, 일촌간장이 다 녹는다.“ 이는 서울시 휘몰이잡가 예능보유자 박상옥 명창이 부르는 상엿소리 사설이다. 우리 겨레는 사람이 살다가 이승을 떠나면 상여를 태워 저세상으로 보낸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온갖 궂은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에는 누구나 아름다운 꽃상여를 태워주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주검을 운구한다. 앞에는 동네에서 가장 목청 좋고 곡을 잘하는 사람이 상엿소리를 하고 좌우로는 상여꾼들이 적게는 20명이 좌우에서 상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