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 화 - 김 태 영 한때 그럴싸했던 친구 물어물어 찾았다며 전화가 왔다. 보고 싶다고 만나자고 가끔씩 생각나고 잊을 뻔했던 그 옛날 친구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건가 그도 이젠 외로운 건가 힘겹게 외로울 땐 나도 꼭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으니까 ------------------------------------------------------------------------------------------------------------------ 미국인 벨이 발명한 전화는 우리나라엔 1890년 무렵 궁궐 안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종은 당시 이 전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는데 특히 동구릉에 있는 대비 조 씨의 무덤에 아침저녁으로 전화해 문안을 드릴 정도였다. 그런데 고종이 전화를 하면 전화를 받는 신하는 임금을 직접 뵈었을 때처럼 극진한 예를 다했다. 먼저 전화벨이 울리면 신하는 전화기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세 번 하고 전화를 받아 임금의 말씀을 들었다. 말소리로만 들리지만, 전화기를 임금으로 생각하고 삼배(三拜)의 예를 다했다. 이때 전화기는 영어말 ‘텔레폰’을 한자식으로 바꾼 ‘덕률풍(德律風)’, ‘덕진풍((德眞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바지가 닮은 고부 - 황경연 아가야! 많이 이뻐졌구나 직장생활 핑계대고 일 년에 고작 몇 번 얼굴 내미는 염치없는 막내며느리 치매 걸린 눈으로 보아도 예쁜 구석 찾을 수가 없으셨나 당신 입은 꽃무늬 몸빼 바지와 내가 입은 먹물들인 풍덩한 바지를 번갈아 보며 반복하는 말씀 너 참 많이 이뻐졌다 이제야 우리 식구가 된 것 같구나 새우처럼 굽은 등으로 마주 누워 고달팠던 지난날 되뇌다가 두 손 잡고 잠들어 버린 바지가 닮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 시어머니와 며느리, 한자말로 고부 사이라 한다. 블로그를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참으로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단다. 선승으로 유명했던 춘성 스님에게 한 부인이 고부갈등이 있다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소연했다. 이때 스님은 “거울에 똥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더러워지면, 아름다운 꽃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깨끗해지는가? 거울은 더러워지지도 않고 깨끗해지지도 않는다. 거울에 무거운 것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무거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목욕탕 순자 씨 - 김 태 영 평생 생선 장사를 했었다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며느리와 함께 목욕탕에 와서 얼른 칼 가지고 오라며 큰소리를 칩니다. 이 광경 보며 때를 밀어주던 순자 씨 나도 늙어 정신 줄이라도 놓게 되면 어쩌나요? 치매는 과거만 기억한다는데 걱정이 태산이란다. 엎드리세요. 돌아누우세요. 바로 누우세요. 입에 익은 이 말만 기억하면 정말 나 어쩌지요 사랑한다는 멋진 말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 저기 저 목욕탕의 순자 씨, 나 어렸을 적 우리 마을 순자를 닮았을까? 그때 어느 마을이건 순자 한 명은 꼭 있었지. 그때의 순자는 이름처럼 청순하고 예뻤다. 그 순자는 잘 웃었지만, 그렇다고 수다스럽지는 않았다. 순자의 그런 점이 내가 순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가 없게 했다. 손잡고 뒷동산에 올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었건만 연애편지를 썼다 고쳤다 쓰기를 여러 번 용기를 내지 못해 쉽게 건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호박잎 쌈 - 황 경 연 고향서 보내온 호박잎쌈 반가워 강된장 한 숟가락 듬뿍 얹어 볼이 미어지도록 한 쌈을 쌉니다 입안 가득 그리움의 고향 맛이 곰실곰실 맛있게 배어 나오고 그리운 어머니의 정 사무쳐 올 때 까닭 모를 눈물이 눈꼬리를 적십니다. 강된장에 든 고추 핑계를 대며 버무려진 한 쌈 눈물로 삼킵니다. 허기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흐뭇해집니다. ----------------------------------------------------------------------------------------------------------------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은 호박에 대한 한 토막의 추억이라도 있지 않나?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어 먹거나 호박떡을 해 먹으면 일품인 걸 어쩌랴? 그런데 여기 호박잎도 있다. 어릴 때 비가 오면 호박은 자신의 넓은 잎을 내주어 아이들이 우산 대신 쓰도록 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의 어머니는 호박잎을 쪄 강된장과 함께 싸 먹도록 해주었는데 그 환상적인 맛이란 지금도 재래시장에서 호박잎을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 어머니가 그리워져 왈칵 눈물이 솟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느 날 걸망을 메고 - 이 승 룡 가끔은 일상의 껍데기 벗어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흙 내음 들꽃 향기 물소리 들으며 마냥 짙푸른 숲길 걸어볼 일이다 부질없는 세상사 눈물 쏟아질 때면 그저 고요한 산사 한번 찾아볼 일이다 담쟁이 어우러진 물푸레나무 아래서 향 짙은 솔잎차 한잔 마셔도 좋고 잠시라도 바람과 얘기 나눠도 좋다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 소리 서로 어우러져 하나인 이들에게 그리 살아가는 법을 배워볼 일이다 ------------------------------------------------------------------------------------------------------- 이승룡 시인은 “가끔은 일상의 껍데기 벗어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걸망을 메고 말이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9일 치에는 서산 부석사 주지 주경 스님의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걸망을 멘 스님은 길을 떠난 스님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누구든 때가 되어 떠나게 되면 걸망 하나로 짐을 정리한다. (가운데 줄임) 나누어줄 만한 것은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버린다. 얼마간이건 살다가 떠날 때, 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담장과 담쟁이 - 이 승 룡 죽기 살기로 오르고 올라도 무슨 까닭으로 버티고 서서 담 너머 세상을 못 보게 했을까 줄기 뻗어 몸집을 불려 봐도 고개를 쳐들고 몸부림쳐 봐도 못 본 체 외면하는 줄 알았다 지난밤 휘몰아친 비바람 속에 둘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고마웠다 허벅지를 '탁' 치는 깨우침! 날 지켜주는 버팀목인 줄 알았다. -----------------------------------------------------------------------------------------------------------------------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라는 시에서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라고 노래한다. 또 이경임 시인은 “마침내 벽 하나를 몸속에 삼키고 온몸으로 벽을 갉아 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라고 중얼거린다. 담쟁이에서 어떤 이는 도전, 어떤 이는 지독한 사랑을 본다. 하지만, 여기 이승룡 시인은 “지난밤 휘몰아친 비바람 속에 둘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자 화 상 이 승 룡 지리산 법계사 부처님께 참배하고 보시함 앞에서 지갑을 열어보니 오만 원 한 장에다 천 원짜리 두 장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이천 원을 넣었다. 하산길 해우소에 볼일 보고 일어서다가 아차, 이걸 어쩌나요? 지갑을 똥통에 빠뜨린 속인(俗人) 한 명 저기 터덜터덜 걸어가네요. ------------------------------------------------------------------------------------------------------------------------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는 여러 사람의 자화상이 있는데 그 가운데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정말 특별한 자화상이다. 그 까닭은 자화상에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괴기한 모습이어서 그렇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적외선 투시 분석을 한 결과 윤두서의 자화상은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것은 물론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던 양쪽 귀 또한 작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윤두서 자화상은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미의 계절을 보내며 이 승 룡 붉은 너의 입술에 한마디 말도 못 할 만큼 (반해버렸다) 붉은 너의 가시에 꼼짝달싹 못 하도록 (찔려버렸다) 붉은 그대 무덤 앞에 고개 숙여 있어도 (무지무지하게 보고 싶다) 이는 이승룡 시인이 지난 5월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에 쓴 시다. 때는 장미의 계절. 시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장미에 이입시킨다. 장미는 북반구의 한대, 아한대, 온대, 아열대에 걸쳐 자라며 약 200여 종에 이른다는데 꽃이 아름다운 대신 가시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하지만 가시에 무수히 찔려 만신창이가 되어도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유혹은 떨칠 수 없다. 그래서 시인도 붉은 장미 같은 그대 무덤 앞에서 보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백은 입속에서만 뱅뱅 돈다. 《삼국사기》 열전 〈설총〉 조에도 나오는 장미는 꽃말이 ‘행복한 사랑’, ‘애정’, ‘사랑의 사자’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장미 가운데 적은 빛으로도 잘 자라고 흰가루병에 강한 ‘엔틱컬’, 꽃이 일찍 피는 ‘옐로우썬’, 꽃이 크고 수량이 많은 ‘화이트뷰티’, 꽃 모양이 아름다운 ‘핑크뷰티’, 꽃잎 수가 많고 절화(자른 꽃)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1950년대를 풍미하던 시인 김춘수는 꽃을 이렇게 얘기했다. 그 어떤 삶이든 내가 불러 주면 모두가 내게 와서 꽃이 된단다. 그런데 여기 이상현 시인은 그 어떤 이의 삶도 꽃이라고 노래한다. 내가 불러 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저 목련은 수줍음만으로도, 장미는 기쁨만으로도 꽃이란다. 작은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송이에 사람들이 위로를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 그냥 꽃 한 송이로도 아름답지만, 빨간꽃, 하얀꽃, 노란꽃 등 여럿이 함께하면 그 자체로도 이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운 꽃천지가 되고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꽃은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코스모스의 해맑음으로 울다 / 홀가분한 갈대로 다시 태어나 / 봄날 아지랑이 기다리며 / 눈꽃으로 새로 움튼다”라며,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꽃은 봄날을 기다리며, 눈꽃으로 새로 움튼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우리문화평론가 김영조> 이상현(시인) 한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는 간송미술관에서 신윤복의 그림 ‘주유청강(舟遊淸江)’ 곧 맑은 강에서 뱃놀이하는 모습을 본다. 그림 속의 화제(畵題)에는 “젓대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백구만 물결 좇아 날아든다.(一笛晩風聽不得, 白鷗飛下浪花前)”라며 이날의 풍경을 전해준다. 녹음이 우거지고 산들바람이 일어나자 두서너 명의 양반들이 한강에 놀잇배를 띄우고 여가를 즐긴다. 호화스러운 배도 아니다. 꾸미지 않은 일엽편주(一葉片舟) 곧 한 척의 작은 배에 차일(遮日)을 드리우고 풍류를 즐기고 있다. 뱃전에 엎드려 스치는 물살에 손을 담가 보는 여인이나 턱을 고인 채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선비의 자태가 정겹다. 신록이 그늘진 절벽 밑을 감돌아 나가는 뱃전에서는 생황 소리와 젓대 소리가 어우러지고 잔물결은 뱃전을 두드리니 그야말로 선계(仙界)이리라. 하지만, 이런 선계도 그저 삿대질만 하는 뱃사공과 함께 묵묵히 흐르기만 하는 물결이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저 한 척의 작은 배와 그 배에서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 우리의 이상현 시인은 “꽃이 돋보이려면 흙이 있어야 하고 유람선은 묵묵히 흐르는 물이 늘 생명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