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아가는 곳에 광명이 있나니 젊은 그대여 나아가자! 오직 앞으로 앞으로 또 앞으로 가시덤불을 뚫고 비록 모든 사람이 주저할지라도 젊은 그대여 나아가자! 용기는 젊은이만의 자랑스런 보배 어찌 욕되게 뒤로 숨어들랴 진실로 나아가는 곳에 광명이 있나니 비록 나아가다가 거꾸러질지라도 명예로운 그대, 젊은 선구자여 물러섬 없이 오직 나아가자! 이는 박팔양 시인이 《중앙》(1936년 2월호)에 발표한 ‘선구자’라는 시다. 박팔양 시인은 1905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녔고 이때 정지용 시인 등과 <요람>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18살 되던 해인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신의 주(神의 酒)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박팔양 시인의 필명은 김려수(金麗水)인데 여기서 여수(麗水, 如水)는 호다. 그의 대표 시집 《여수시초(麗水詩抄)》(1940)는 말하자면 박팔양 시인의 호를 딴 시집인 셈이다. 박팔양 시인의 《여수시초(麗水詩抄》가 일본의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4) 씨에 의해 지난 8월 15일 일본 오사카에서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시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대중 대통령의 출신지가 신안군 하의도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울살이 속에서 ‘하의도’는 머나먼 땅으로만 여겨왔다. 막연히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지난 9월 12일, 한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마침내 그 땅에 발을 디뎠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승용차로 간 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신의도행에 배에 승용차를 싣고 2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신의도(신의여객선터미널)였다. 이곳에서 다시 승용차를 30여분 달려 하의도에 도착했다. 신안을 흔히 천사섬이라고 해서 솔직히 ‘신안에 왠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1004개의 섬이 있어서 이를 한글로 천사(1004) = 천사(天使)가 된 것이란다. 오호라! 하의도는 어촌이라기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섬이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이 이를 말해준다. 맨 먼저 찾아 간 곳이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이하 농민운동기념관)’이다. 농민운동기념관 입구에서부터 천사상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민운동기념관에는 조선후기부터 광복까지 무려 360년 동안 하의 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주민들의 빼앗긴 토지를 탈환하기 위해 흘린 ‘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60년 동안 토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인 구라하시 요코(倉橋葉子, 71)씨로부터 신문 기사 한 장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어제(7일) 석간 아사히신문이었다. 기사 내용은 50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일본인 기사였다. 이 기사는 6일(월)과 7일(화)에 걸쳐 2회로 연재했는데 구라하시 씨가 보낸 것은 2회차였다. 50년 전에 한글 교실을? 그렇다. 이날 기사는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와 그들이 현재 지속하고 있는 일을 두 팀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었다. 한 팀은 한국어를 배워 현재 한국의 소설가 황석영 씨의 수필을 읽고 있는 팀이고, 다른 한 팀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해 학살당한 조선인을 추도하는 모임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61) 씨 이야기다. 이들은 1970년부터 ‘현대어학숙(現代語學塾)’이라는 한국어교실을 만들어 꾸준히 한국어 실력을 쌓아 왔다. 한국어교실은 김희로공판대책위원회가 사무실로 쓰기 위해 빌린 도쿄 요요기역 근처의 사무실이었다. 이들이 한국어교실 문을 연 계기는 1968년 재일동포 김희로 사건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김희로는 가난한 집안형편과 일본사회의 차별과 천대를 겪어내면서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세상에서 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3년 9월 1일 낮 11시, 일본 관동지방(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 군마, 도치기, 이바라기, 치바현)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리히터 지진계로 7.9도를 기록한 이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를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간토다이신사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관동대지진’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관동지방에 체재하던 조선인들은 일제의 조직적인 ‘조선인 학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지진으로 혼란한 틈을 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이를 제압하기 위한 명목으로 도쿄ㆍ가나가와ㆍ사이타마ㆍ치바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들은 ‘조선인 폭동’에 대한 전문(電文)을 준비해 9월 2일 오후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後藤文夫)의 명의로 전국의 지방 장관과 조선총독부ㆍ타이완총독부에 타전했다. 전문 내용을 보면 “동경 부근의 대지진을 이용해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하는 등 불령(不逞 : 불평불만이 많아 멋대로 함)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여, 현재 동경 시내에는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는 자가 있다. 동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재일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명성 높은 일본 청소년 야구의 본선 무대에서 8강을 차지하여 재일동포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잔치 분위기다. 교토국제고는 24일 아침 8시 효고현(兵庫県)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있는 한신고시엔구장(阪神甲子園球場)에서 열린 103회 고시엔(甲子園) 대회에서 도쿄도 대표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부속고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대 4로 꺾고 승리했다. 시합에 앞서 본선 경기가 열리는 날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가 방송을 통해 전국 생중계되자 재일동포들의 감동은 더욱 컸다. 1947년 한국계 민족학교로 세운 교토국제고는 야구부 창단 22년 만에 야구 청소년들의 꿈의 무대인 여름고시엔(夏の甲子園)에 처음 출전하여 8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봄고시엔(春の甲子園) 대회 때 16강에서 패배하는 설욕을 당했으나 분발하여 이번에 8강에 오른 것이다. 8강에 오르기까지 상대한 팀은 예선전을 포함해 무려 3,603개로 이들 팀과의 접전을 뚫은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고시엔구장(甲子園球場)은 일본 프로야구팀인 한신타이거즈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카지 와타루(鹿地亘, 1903~1982)란 일본인이 있다. 동경제국대학 국문과 출신의 카지 와타루를 일본 위키사전에서는 소설가로 소개하고 있는데 뜻밖에 그가 쓴 소설 《태평의 눈》(1931)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이라는 데 시선을 끈다. 카지 와타루는 일본인이면서 이 책에서 일제에 저항한 조선 민중의 치열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다. 그는 왜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 민중에 관한 소설을 쓴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강연이 지난 7월 24일, 일본 도쿄에 있는 고려박물관에서 있었다. 강사는 한국독립기념관 연구위원 윤소영 박사로 이날 강연 주제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일본인들 – 서로 비난하는 근대 한일의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발견한 희망(韓国の独立運動を支援した日本人たち-罵り合う近代日韓の歴史のはざまで見つけた希望)”이었다. 카지 와타루는 청년기에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뜻을 두고 고바야시 다키지, 나카노 시게하루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인들과도 어울리며 유랑하는 환경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반전항일운동을 이어 나갔으며 조선의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쿄 올림픽이 8일 막을 내렸다. 일본올림픽조직위는 총괄 브리핑에서 "대회가 성공적이냐, 실패였냐?"라는 기자단의 질문에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이 끝나봐야 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각 언론에서는 “올림픽의 성패,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여론조사 경쟁을 하고 있다. 먼저, 야후제팬의 <모두의 의견> 여론조사에서는 10일 현재 267,528명이 투표하였는데 이 가운데 56.8%가 실패했다, 37.3%가 성공했다. 기타 6%는 모른다고 답하고 있다. 이 조사는 8월 9일부터 8월 19일까지 실시하는 설문이다. 반면에, 요미우리신문은 7일~9일 동안 전국여론조사에서 올림픽 개최를 잘했다는 응답자가 64%, 올림픽 개최를 잘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28%로 나왔다. 다시 말하면 64%는 ‘성공’ 나머지 28%는 ‘실패’의 의견으로 봐도 좋다. 물론 야후제팬 여론조사의 질문 내용과 요미우리신문의 질문 내용이 서로 같지 않아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대강의 뜻으로 보면 요미우리가 점수를 후하게 준 것 같다. 야후제팬의 56.8%의 실패 견해와 요미우리의 64% 성공 견해는 완전히 상반된 견해가 아닌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어에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겠지만 <다음 국어사전>의 뜻을 빌리자면 “지은 죄가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는 말”이라고 한다. 일본어에는 이런 말이 없지만 구태여 일본말로 옮겨보면 “悪いことをすると気がとがめて必ずばれてしまう(나쁜 짓을 하면 마음의 가책을 느껴 반드시 들통난다)”라는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제(2일), 교도통신(共同通信) 보도가 볼썽사나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한국선수단이 선수촌에서 제공되는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피해 자체 급식센터를 설치했다”라면서 근거없는 피해(風評被害, 후효히가이)를 조장하는 한국선수단의 급식센터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러한 교도통신의 뉴스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의 언론에서도 “2008년 북경 올림픽 때부터 자체 급식센터를 운영해왔는데 새삼 무슨 소리냐.”라고 반박하는 기사가 나와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본질은 일본이 후쿠시마산 식재료에 대해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단순한 관광객들이 아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전염병, 코로나19로 지각 올림픽(2020년)이 열리고 있는 도쿄 날씨는 그야말로 불가마 속이다. 한국보다 습기가 많은 날씨이기에 그 더위의 강도는 더 세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탁 막히는 이때, 경기장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일본인들은 무더위 속의 안부 편지인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보내는 풍습이 있다. 쇼츄미마이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무더위 속 안부편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쇼츄미마이는 편지나 엽서를 이용하기도 하고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엽서의 경우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산과 바다 풍경이나 찬 수박,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 사진 등 ‘시원한 그림’이 주종을 이룬다. 일본우편주식회사(日本郵便株式会社)에서는 이때를 특별 엽서보내기 기간으로 정하여 1950년부터 “쇼츄미마이용우편엽서(暑中見舞用郵便葉書)”를 발행하고 있다. 또한 1986년부터는 엽서에 복권 번호처럼 번호를 새겨 넣어 당첨되면 선물을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무더위 안부를 묻는 쇼츄미마이 엽서 이름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주최국인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과연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서는 ‘열린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응원 준비가 한창이다.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7월 21일 보도를 보면, ‘선수들을 직접 못 만나지만 우리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는 제목 아래 종이학으로 브라질 국기를 만든 도쿄 시내 한 초등학교를 소개했다. 그 내용은 “선수와 직접 교류할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조금이라도 일본인의 환영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브라질 선수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자 브라질 국기를 만들었다.”라고 하는 무라카미 타카시 교장을 소개했다. 무라카미 교장은 도쿄도 츄오구 구립 도요미소학교 (東京都 中央区 区立 豊海小学校)에 재직 중이다. 츄오구(中央区)는 2017년 브라질 올림픽위원회와 양해각서를 맺고 선수 훈련 등을 위해 선수촌 바로 앞 학교 건물 일부를 대회 기간에 제공하기로 했었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학생들과 선수의 교류 이벤트를 열 기획이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두 중지된 상태다. 하지만 브라질 선수가 이 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