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줄다리기는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입니다. 그 가운데 충남 당진 기지시리에 가면 국가무형문화제 제75호로 지정된 “기지시줄다리기”가 있습니다. 이 줄다리기는 마을을 뭍(육지)과 바닷가쪽 두 편으로 나누는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바닷가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줄다리기는 윤년 음력 3월초에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졌지요. 전설에 따르면 기지시리는 풍수적으로 옥녀가 베 짜는 모양이어서 베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데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줄의 길이는 50∼60m이며 지름이 1m가 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이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하지요. 또 줄이 커서 손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기 때문에 원줄의 중간 중간에 가늘게 만든 곁줄을 여러 개 매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듭니다. 줄 위에 올라선 대장이 지휘를 하면 줄다리기가 시작되지요. 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칼로 줄을 끊어 가는데 이 줄을 달여 먹으면 요통이나 불임증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줄에 양잿물을 떨어뜨리거나 바늘을 꽂으면 줄이 끊어지고 여자가 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낮때와 밤때가 똑 같다 하느니 오면 앗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고 고요히 깊어가는 갈 선비는 졸 닦고 위 노래는 일본 교토의 한밝 김리박 선생이 쓰신 “갈 같 날”입니다. 여기서 ‘갈같날’은 추분(秋分)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며, ‘앗’은 책, ‘갈’은 가을, ‘졸’은 지조(志操)를 뜻합니다. 조금 쉽게 풀어본다면 “추분은 낮과 밤이 똑 같다 하느니 / 추분 오면 책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나는 때라 / 고요히 깊어가는 가을, 선비는 지조를 닦고 있어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분은 낮과 밤이 같다고 하는데 춘분과 함께 바로 “더함도 덜함도 없는 날”이어서 우리는 이때 중용(中庸)을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세상일이란 너무 앞서가도 뒤쳐져도 안 되며,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슬기로운 삶임을 추분은 깨우쳐 줍니다. 더불어 가을 벌판 고개 숙이는 벼가 보여주는 겸손, 그리고 한여름 강렬한 햇빛과 천둥과 비바람을 견디어낸 벼의 향[香]를 생각해볼 때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에는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전해 오는데 그 세시풍속 가운데 민속놀이는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밭고랑기기, 원놀이, 올게심니, 소싸움, 닭싸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밭고랑기기”는 전남 진도에서 전해지는 것인데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깁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고 믿었습니다. 더 재미난 것은 “거북놀이”입니다. 거북놀이는 수수 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지요.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이 방문하는데, 대문에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곳간, 마굿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합니다. 이때 조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구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 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걸립패가 마당굿에서 잘 되기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열다섯째로 흰 이슬이 내린다 하는 백로(白露)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때만 되면 편지 앞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옵시고”라는 인사를 꼭 넣었습니다. 그것은 포도가 제철인 때 곧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절기에 어른에게 안녕하신지 묻는 것입니다. 포도는 예부터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맨 처음 따는 포도는 사당에 고사를 지낸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통째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처녀가 포도를 먹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들었지요. 또 이때쯤 되면 ‘포도지정(葡萄之精)’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포도를 먹일 때 한 알 한 알 입에 넣고 씨와 껍질을 발라낸 뒤 아이의 입에 넣어주던 정을 일컫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땐 어머니의 지극 정성한 공으로 자라건만 다 자라면 저 홀로 자란 듯 부모의 은공을 잊고 때론 부모를 죽이기까지 하는 세상이어서 참으로 씁쓸합니다. 백로 때는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집니다. 원래 이때는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때입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인 “처서(處暑)”입니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만큼 여름은 가고 본격적으로 가을 기운이 자리 잡는 때입니다. “處暑”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라는 뜻이 되지요. 하지만 아직 찌는 듯한 더위는 처서를 무색하게 합니다. 처서 무렵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하는데 모기 입이 삐뚤어지기는커녕 아직 매미만 신이 난 듯합니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 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ㆍ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 오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처서 때의 세시풍속 가운데 가장 큰 일은 포쇄(曝曬)라고 해서 뭔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복날에는 보신(補身)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지요. 특히, 개를 잡아서 개장국을 만들어 먹거나, 중병아리를 잡아서 영계백숙을 만들어 먹고, 또한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거나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탁족(濯足)이라 하여 계곡에 들어가 발을 씻으며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입추와 말복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고 하여 귀가 밝은 개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 속담은 벼가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농사꾼들의 마음과 닿아 있지요. 한편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 보은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 데서 유래한 속설입니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 복날에는 날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임금이 수라상을 밀어 이광좌에게 주니 그는 동료 신하들과 나누어 먹기를 청했다. 임금이 ‘경이 먼저 먹고 난 다음에 우의정에게 주고, 또 나머지를 싸서 좌의정에게 전해주라. 경들이 이 밥을 먹으면 어찌 차마 잊겠는가? 그릇을 자손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하여 오늘 음식을 하사하고 그릇을 나눈 일을 알게 하여 대대로 내 자손을 보필하게 하라’고 일렀다.” 이는 《영조실록》 13년(1737) 8월 14일치 기록입니다. 이렇게 임금이 수라를 들고 난 뒤에 남은 음식은 “퇴선(退膳)” 곧 “상물림”을 합니다. 상물림이란 임금이 수라를 들고 남은 음식을 신하나 아랫사람들에게 내려주어 먹을 수 있게 한 것을 말하지요. 수라상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차려진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임금이 혼자 먹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상물림은 궁궐뿐 아니라 감영 등 관아에서도 있었지요. 예를 들면 감사가 밥을 먹고 나면 이 물림상은 이방, 호방 등 6방과 비장, 수청기생들이 번갈아 차례를 정해가며 받아갑니다.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물림”을 찾아보면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 물림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밤한울 구만리엔 은하수가 흘은다오 / 구비치는 강가에는 남녀 두 별 있엇다오 / 사랑에 타는 두 별 밤과 낯을 몰으것다 / 한울이 성이 나서 별하나를 쪼치시다 / 물건너 한편바다 떠러저 사는 두 별 / 秋夜長 밤이길다 견듸기 어려워라 / 칠석날 하로만을 청드러 만나보니 / 원수의 닭의소리 지새는날 재촉하네” 위는 《삼천리》 잡지 1934년 11월호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견우직녀> 시입니다. 오늘은 칠월칠석인데 흔히 칠석이면 내리던 비는 오지 않고 무더위만 기승을 부립니다. 흔히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린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칠석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요. 장마가 끝나고 입추와 말복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고 하여 귀가 밝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데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나타난다. 소한 무렵은 정초한파(正初寒波)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때이다. 이름으로만 봐서는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실제 보름 뒤에 오는 대한보다 더 추울 때가 많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간 혹한(酷寒)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나들이가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거리를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 두었다. ▲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특히 동지부터 입춘까지 선비들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벽에 붙이고 날마다 매화 한 송이를 그려나가면서 봄을 기다렸다. 지금에 견주면 난방이 시원찮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누비옷을 입고 방안에 화로를 두는 정도였을 겨울나기에 “구구소한도”라는 것이 한몫을 한 것이다. 이 구구소한도는 동지가 되면 종이에 9개의 칸을 그려놓고 한 칸에 9개씩 81개의 매화를 그린 다음 하루에 하나씩 매화에 붉은빛을 칠해나가게 한 것을 이른다. 그런데 붉은빛을 칠해가는 방법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이제 한국도 서양결혼식에 밀려 전통혼례는 겨우 명맥만 유지 하는 정도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그것도 15분 만에 벼락 치듯 뚝딱 해치우는 지금의 결혼식은 어쩌면 새롭게 부부로 출발하는 당사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저 형식만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전통혼례는 오히려 신랑신부에게 정신적 주춧돌이 될지도 모른다. 이 전통혼례를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전통혼례의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전통혼례 가운데 몇 가지는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 있어 소개한다. 원앙이 아니라 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 ▲ 프랑스 귀메박물관, 전안하는 모양 위 그림은 프랑스 귀메박물관에 있는 전안하는 모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 보이는 전안례(奠雁禮)는 한국 전통혼례의 첫 절차로 신랑이 신부 집에 들어가서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를 말한다. 그래서 그림에도 목기러기가 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혼례에서 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러기는 봄에 북녘으로 날아갔다가 가을에 다시 찾아오는 곧 음양의 이치를 따르는 철새이다. 동시에 배우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새인데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