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눈을 들어 앞을 보니 8개의 기둥이 수평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기둥 사이 7칸의 공간이 하나하나 병풍의 면처럼 보인다. 둥글넓적한 자연 그대로의 돌을 다듬지 않고 주춧돌로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덤벙주초>의 누각 건물, 2층에는 마루를 깔았다. 정면이 7칸이지만 측면은 2칸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쭉한 건물이라고 하겠다. 이 건물이 만대루(晩對樓)다. 이 만대루가 새해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찍으면서 만대루에 소품으로 청사초롱을 걸어놓기 위해 기둥에 못을 박은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어떻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에 못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진의 부주의 혹은 실수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고 이 문화재를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문제도 거론되었다. 그런데 만대루는 뭐 하는 곳이고 만대루는 무슨 뜻인가? 만대라, 늦을 ‘만(晩)’, 마주볼 ‘대(對)’, 늦게까지 마주 본다라는 뜻이란다. 무엇을 마주 볼까? 만대루 앞에는 강이 흐르고 강 건너가 병산(屛山이다. 병풍산이란 이름 그대로 만대루 앞에 산이 병풍처럼 수직으로 펼쳐져 있다. 나무계단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은 철저한 ‘사농공상’의 나라였다. 벼슬하는 선비가 으뜸이었고 물건을 만드는 ‘장이’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아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사회 분위기는 조선의 발전이 늦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전문성으로 꽃을 피운 이들이 있었다. 이수광이 쓴 이 책, 《조선의 프로페셔널》에서 소개하는 조선의 명인들은 자신이 ‘꽂힌’ 한 가지 분야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사회적 인정과는 별개로 자신이 원하는 일에 푹 빠지는 것이 진정한 명인의 기질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자신의 열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던 장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에서 황기와를 처음으로 구웠던 역관 방의남의 이야기다. 광해군은 즉위하자 대궐의 중건에 나섰고, 이에 기와를 굽는 와장들이 많이 동원되었다. 특이한 점은 광해군은 대궐의 기와를 청기와나 황기와로 올리려 했다는 것이다. (p.177-178) “대궐을 중건할 때 청기와나 황기와를 사용하도록 하라.” 광해군은 대궐을 중건하면서 새로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계엄령과 탄핵으로 필자의 슬픔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지난 29일 갑작스러운 여객기 사고 소식으로 깊은 아픔이 밀려왔다. 필자는 아프고 애석한 마음까지 겹겹이 쌓이며 숨이 막힐 듯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말을 의미와 값어치가 있는 공연으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30일 저녁 7시 30분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의 ‘무명씨의 아홉 짐’의 공연이 눈에 띄었다. ‘무명씨의 아홉 짐’은 전통적인 지게꾼들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창작된 마당극이다. 여기에서 ‘아홉 짐’은 세시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무를 아홉 짐하고, 새끼를 아홉 발로 묶으면 부자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공연은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예술 창작 활동 지원사업에 뽑힌 <가락프로젝트> 연속물 가운데 하나다. 급속한 산업화로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민속 문화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작되었다. 이창훈 감독은 “민속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사라져가고 있는 민속 문화를 만나기 위해 가락프로젝트의 길을 계속 가겠다.”라고 말했다. 무대는 양쪽에 계단을 놓았고 악단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보려고 책상 한편에 쌓아놓은 책들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전에는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책을 주문하여 항상 볼 책이 쌓여있었는데, 이번에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새 책만 계속 볼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았던 책 가운데서 기억에 남는 책을 다시 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닥이 드러나자 ‘무슨 책을 볼까?’ 하며 책장을 둘러보는데, 그런 내 눈에 먼저 《미술쟁점》이란 책이 들어왔습니다. 최혜원 씨의 호 청련(靑蓮)은 푸른 연꽃이란 뜻이겠지요? 청련은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직접 화가로도 활동하면서 아트컨설팅, 경매기획자 등의 일도 하고,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에서도 미술을 가르칩니다. 그러다가 조선일보에 「명화로 보는 논술」을 연재하였는데, 이 책은 그렇게 연재한 글을 중심으로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책 제목이 《미술쟁점》이지요? 책 제목에서부터 시중에 널려있는 일반 미술이야기 책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청련은 책을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수많은 명화를 보고 있자면 수백 년 전의 사람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주말 광화문을 봅니다. 촛불 대신에 응원봉을 들고 축제같은 시위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비폭력적으로 축제같은 모습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지요. 펜은 칼보다 강하고 촛불은 총구보다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무기는 중요합니다. 원래 무기는 강자의 상징이지만. 역사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무기는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 도구입니다. 역사 속 혁명과 저항의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돌멩이, 낫, 맨손까지도 무기로 사용하며 권력에 맞서왔지요. 이번 계엄령이 포고된 12월 3일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맨몸으로 군인들의 장갑차를 막은 시민을 봅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인 힘의 표출뿐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가난한 이의 무기가 등장합니다. 그 살벌한 계엄의 현장에서도 슬기말틀(스마트폰)을 이용한 현장중계로 가난하고 힘없는 대중이 지식과 정보를 무기 삼아 사회 변화를 끌어냅니다. 인터넷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하니까요.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96년 강원도 양구군 우망리장을 구경하러 가 보자. 많은 장사치와 백성들이 장터에 모여 있다.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다. 운집한 군중 가운데에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질러 무언가를 읽고 있다. 《독립신문》이다. 사람들은 신문을 들으러 이 장터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양구군 군수였다. 군수는 일부러 시장을 열고 친히 장터에 와서 시국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한다. 이어서 부하로 하여금 신문을 낭독하게 하는 것이다. 양구군 원님만 훌륭했던 건 아니다. 장터 마을에 사는 백성 김기서, 조성룡, 김리선은 이런 글을 《독립신문》(1896년 4월 7일)에 보냈다. 요사이 군수가 장터를 열고 친히 장에 나와 장사치와 인민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시국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소리를 크게 질러 《독립신문》을 읽게 하니, 오는 사람과 가는 손님이며 장사하는 사람과 온 백성들이 어깨를 비비고 둘러서서 재미를 붙여 듣고 모두 찬탄하더라. 이후부터는 물건 매매하는 상인들뿐 아니라, 《독립신문》 들으러 오는 백성들이 멀고 가까운 곳을 헤아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다투어 모여들어 서로 말하여 가로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富)의 심리학 물 쓰듯 돈 쓰면 짜릿하겠지(빛) 짜릿함 멈추면 무엇 남는가(돌)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것을(심) 가난이 없으면 부도 없으리(달) ... 24.12.22. 불한시사합작시 *설명 / 중국의 땅끝 하이난(海南)은 성(省)급에 해당하는 큰 섬으로 옛날엔 버려진 땅이자 적거지로 소동파가 3년 동안 이곳에 귀양을 다녀간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은 그 반대로 대륙의 돈 있는 자들 호화 별장이 즐비한 휴양의 섬이 되었다. 황학루(黃鶴樓) 금장의 담배 한 상자가 550만 원을 하고 1억 5천만 원 마오타이 술을 마시는 부자를 소개했더니, 한빛이 부(富)의 심리학을 제목과 더불어 시구를 내었다. (돌)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기(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습니다. 동해에는 티없이 맑은 새해가 떠오릅니다. 중국 역사에 전국시대라는 시기가 있었지요 그때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라는 두 책사가 활약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귀곡자(鬼谷子)로부터 설득하는 유세술을 배워 전국시대 일곱 개 나라가 치고받던 시대를 흔들었지요. 먼저 소진이 연(燕)ㆍ제(齊)ㆍ초(楚)ㆍ한(韓)ㆍ위(魏)ㆍ조(趙) 같은 여섯 나라의 합종책(合從策)으로 재상이 되었고 이에 대항해서 장의는 연맹을 맺는 연횡책(連橫策)으로 진(秦)의 재상에 올랐습니다. 두 세객(說客, 말솜씨 능란한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세 치 혓바닥이었고요. 장의가 어느 날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재상이 갖고 있던 당대 으뜸 보물인 ‘화씨의 벽(和氏之璧)’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며칠 동안 수 없이 매질을 당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목숨만 살아서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자신의 입을 벌리면서 “내 혀가 붙어있는가 보시오”라고 했답니다. 기가 막힌 아내가 퉁명스럽게 “내가 보니 혀는 그래도 붙어있는 것 같소”라고 대답하니 장의는 “그럼 됐소. 나에게는 혀만 있으면 괜찮소.” 하며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2월 20일 저녁 8시와 9시 연희동에 있는 데스툴(Derstuhl) 카페에서 현대무용 작품 ‘홈(HOM)’이 선보였다. ‘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필자는 목구조에서 부재와 부재를 끼워 넣어 연결하기 위해 안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생각났다. 또, 영어로 ‘홈’은 ‘집’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연달아 나면서 두 단어의 기묘한 연관성이 무엇일지 궁금함을 가지고 공연장으로 서둘러 출발하였다. 이효정 안무가는 홈에 관하여 한국어로는 움푹 들어간 부분의 ‘파인 공간’, 영어로 ‘집’을 뜻한다며 두 단어 모두 ‘안정’을 의미한다고 소개하면서 여성들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가장 친밀한 공간인 집에서 육체노동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공연은 모두 네 군데의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관객들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관람하였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한 무용수의 불안정한 움직임에서 시작하여 네 명의 무용수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동작을 선보였다. 무용수들은 공연 내내 무표정으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든 관절을 사용하며 거칠고 투박하게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있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2012년 10월 6일 자 빌보드 차트 순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위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정도가 지난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랑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빌보드는 이제 한국 음악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김치와 태권도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과거와 달리 K-POP이라는 우리의 대중음악으로 외국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임세혁의 K-POP 서곡’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 치열하게 음악의 탑을 쌓아서 오늘에 이르게 만든 음악 선학들의 이야기다. 1. 장면 하나 1992년이었나 1993년이었나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늘 그렇듯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가요톱텐’인지 다른 방송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음악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댄스 가수들의 순서가 끝나고 나서 마르고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혼자 목에 하모니카, 어깨에는 기타 하나를 메고서 텅 빈 무대 위에 섰다. 그때는 발라드를 불러도 뒤에 무용단이 나와서 무대를 채우곤 했던 때였는데 아무것도 없는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