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석복(惜福). 누릴 복을 아낀다는 뜻이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니, 절제와 겸양으로 누릴 복을 아껴 오래오래 보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약간 모자란 느낌이 들 때 그치는 슬기로움과도 통한다. 복록은 무한정 있지 않으니 아껴서 조금씩 누리고, 나 혼자 누리지 않고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 현명하게 누리는 길이다. 정민이 쓴 이 책, 《석복》은 이와 같은 슬기로움을 가득 품고 있다. 고문헌과 고사에서 오늘날 꼭 필요한 지혜를 찾아내 명쾌한 해설을 곁들였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이 청량한 죽비처럼 정신을 깨운다. 이런저런 욕심과 근심으로 혼탁해진 마음에 맑은 슬기로움 한 사발을 들이켜는 느낌이다. 책은 ‘마음 간수’, ‘공부의 요령’, ‘발밑의 행복’, ‘바로 보고 멀리 보자’의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복’은 그 가운데 ‘마음 간수’ 편에 실려있다. 석복의 지혜는 광릉부원군 이극배와 홍언필의 몸가짐에서 잘 드러난다. (p.12)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석복수전서》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평부원군 이극배(1422~1495)의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거문고 산조(散調) 천년 오동 깊은 가락 감추고 (돌) 만년의 바람 소리 벗하는데 (달) 간만에 술대 잡고 궤 짚으며 (빛)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탄다네 (심) ... 25.9.26. 불한시사 합작시 새재는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길. 새재 곧 조령(鳥嶺)은 길이 가파르고 평탄치 않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과거에 통과한 선비의 경사스러운 소식은 이 새재를 통해 재빨리 넘어온다. 그래서 경사스러운 소식을 남 먼저 듣는 곳이 바로 문경(聞慶)이다. 낙방한 선비들은 다리에 힘이 빠진 채 다음을 기약하며 이 조령을 되넘어 온다. 지금도 첫 관문 입구에 옛길박물관이 있고 아리랑노래 비석공원이 있다. 진도아리랑에 문경새재가 나오는 연유는 뭘까? 기쁜 소식 들으려 호남선비도 이 새재를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경의 옛 지명은 문희(聞喜)였다. 기쁜 소리를 듣는 고을이다. 온천마을 문경읍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제주 성산일출봉을 닮은 주흘산이 있고, 동남쪽을 바라보면 운달산(雲達山)이 보인다. 그 남쪽 기슭에 있는 금용사(金龍寺) 소속 암자에 한 산승이 독거하고 있었다. 그 승려가 거문고의 숨은 실력자라는 소문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내가 시라큐스에서 배거로 일할 때 재미있는 일을 겪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던 아가씨 중에 슈(Sue)라는 이름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미국 여자들은 슈라는 이름이 많던데요. 정식 이름은 수산나인데 그냥 슈라고 줄여서 부르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아마도 그날이 추수감사절이었을 거에요.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잖아요. 추수감사절이 되면 학교 기숙사도 문을 닫고, 모두 고향으로 갑니다. 그날 밤은 손님이 없어 한가했습니다. 그래서 슈에게 물었지요. 너는 고향에 가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안 간다는 것이에요. 은정 씨도 잘 알겠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아마 멀어서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시러큐스라는 거에요. 그래서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슈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나는 근처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러큐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친구도 만나게 되고 애인도 생기게 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을 1주일 앞둔 1987년 12월 10일 전주 유세에서 새만금 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새만금 사업 기공식은 1991년도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완공 목표연도는 2004년이었다. 기공식 연설문 일부를 인용한다. “(새만금 개발 사업은) 이곳 변산반도와 저 바다 한가운데 고군산군도, 그리고 군산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쌓고 그 안의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강화도만큼 큰 새 국토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정부는 총 1조 3,000억 원을 들여 1998년까지 33km의 방조제 건설과 외곽 공사를 끝내고, 이어서 1억 2,000만 평에 이르는 방조제 안쪽의 개발사업을 2004년까지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1998년까지 끝내겠다는 방조제 공사는 12년이 지연되어 2010년에 완공되었다. 2004년까지 끝날 것이라던 내부 개발사업은 2025년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새만금 사업이 끝나면 지역발전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 부자 전북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북도민은 오랫동안 전라북도에 국제공항을 가지는 것이 숙원이었다. 김대중 정권 시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9월 21일 토요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이재화거문고회 창단연주회 「현묘(玄妙)」는 단순히 한 단체의 출범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전통음악사의 맥락 속에서 오랫동안 잊히거나 변형되어 전해지던 풍류의 한 갈래를 다시 무대 위에 되살려낸, 역사적이고도 예술적인 사건이었다. 이번 무대에서 복원된 것은 1920년대 거문고 명인 백낙준(白樂俊, 1884~1933?)이 남긴 투리(投理)다. 투리는 그 이름조차 대중에게 생소하지만, 바로 그 낯섦이야말로 전통의 깊은 저변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의 값어치를 일깨운다. 이번 복원은 춘산 전재완이 1958년에 채보·발간한 악보를 근거로 이루어졌다. 전재완은 특히 서양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는데, 그의 채보 방식은 전통 정간보의 세로 배열과 달리 가로형 정간보를 택했다. 이는 전통음악을 서양 기보법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시도이자, 전통과 근대적 음악 교육이 충돌하고 융합하던 시대적 맥락을 반영한다. 더구나 이 귀중한 악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진원 교수가 제공한 자료로, 이번 무대를 위해 이재화 명인에게 전달되었다. 연구와 교육의 맥락에서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운영의 김옥균 암살 미수 사건이 불거져 세상이 한바탕 떠들썩했다. 1886년 7월 13일 김옥균은 내무대신 야마가타 아리모토로부터 통지문을 받는다. 15일 안으로 일본 영토를 떠나라. 추방명령이었다. 당시 김옥균은 치외법권 지역인 요코하마 프랑스 조계에 묵고 있었다. 그곳의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구명운동을 꾀할 생각이었다. 일본 경찰은 그를 일본인이 운영하는 미쓰이 여관으로 퇴거시킨다. 연금조치다. 김옥균은 미국행을 서둔다. 여비마련을 위해 애쓰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2주일만 더 연기해 줄 것을 외무성에 요청한다. 김옥균은 일본 측에 “다음번 미국 우편선의 출범일”에 출국하겠노라고 통보한다. 막상 그가 미국으로 떠날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정부가 방침을 돌연 바꾼다. 오가사와라 고도로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유배를 보낸다는 게 아닌가. 분기탱천한 김옥균은 항의함과 동시에 외국 공사들에게 이런 요지의 편지를 보낸다. “원래 본인은 15일 이내로 일본 영토를 떠나라는 추방명령을 받고 미국행을 준비중이었지만, 여비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일본 정부는 갑자기 오가사와라로 추방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통보했습니다. 놀라움을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가을의 문턱에 선 과천은 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예술’로 물들었다. 2025년 과천공연예술제의 주제는 ‘기억과 상상이 솟아오르는 시간’. 단순한 표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며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감각적 중심어가 눈길을 끌었다. 축제의 현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풍선을 활용한 야외 공연장이었다.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설치 구조물은 관객들에게 마치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안겨주었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았다. 공간 자체가 공연의 일부가 되어 관객의 감정을 예열하는 효과적인 연출이었다. 올해 축제는 ‘지역축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뚜렷했다. 특히 나라 밖 예술단체들의 활발한 참여가 눈에 띄었다. 무언의 신체극, 독창적 오브제 퍼포먼스, 현대무용과 영상이 결합한 무대 등 익숙하지 않은 형식들이 주제의 서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는 과천공연예술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지구촌 예술 축제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나라 밖 단체의 참여가 신선한 자극을 준 반면, 지역 예술단체와의 긴밀한 서사의 연결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02) 매화나무 드문드문 꽃 적게 붙어 있고 그 성기고 마름과 비스듬히 기운 것 사랑하네 다시 삼성이니 저녁이니 새벽이니 변별할 필요 없으리니 향기로운 가지 끝에 달이 떴나 바라보게나 지폐 속에는 우리 역사가 가득하다. 천 원, 오천 원, 만 원, 오만 원권은 이제 카드에 밀려 점점 꺼낼 일이 없어졌지만, 언제든 꺼내 들면 역사 속 인물과 그에 걸맞은 문화유산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하나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폐는, 가장 손쉽게 지니고 누릴 수 있는 우리 역사다. 박강리가 쓴 이 책, 《지갑 속의 한국사》는 그런 지폐의 친근한 매력으로 우리 역사에 한 발짝 다가가는 책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모르는 것들, 아마 지폐 속 인물과 배경도 그러한 것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눈에 익어서 오히려 무심히 지나치게 되지만, 한 번쯤 알아두면 두고두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 책은 만 원, 천 원, 오만 원, 오천 원에 각각 실린 세종대왕, 퇴계 이황, 신사임당, 율곡 이이를 차례대로 다룬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지폐에 담긴 그림과 문물은 이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친절히 일러준다. 그 가운데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자는 말합니다. "들은 것은 잊고, 본 것은 기억하고,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 이 간결한 문장 속에는 학습과 숙달,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이해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정보에 노출됩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듣지요. 이러한 간접적인 경험은 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되지만, 쉽게 잊히기 마련입니다.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금방 희석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지요. 그처럼 듣는 정보는 우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금세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시각적인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세상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지요. 마치 사진을 보듯이,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 경험이 비교적 오래 남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접 해보는 것이지요. 직접 행동하고,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앎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배웁니다. 자전거 경주를 아무리 많이 본들, 타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오래 들은들 자전거를 탈 수는 없습니다. 직접 페달을 밟고 여러 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억새풀 가을바람에 흰머리 날리며 (달) 우는 소린가 너털웃음인가 (심) 으악새는 새인가 갈대인가 (돌) 잎새 슬피울어 하얘진 넋들 (초) ... 25.9.19. 불한시사 합작시 197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은 가을이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 가사가 있다. 박영효 작사, 손목인이 작곡하고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이다. 바로 이 노래에는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사람들 대부분은 으악새가 쓸쓸한 가을숲에서 저 혼자 울고 있는 '새(鳥)'를 연상한다.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따라 흥얼거렸을 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가을이 되면 슬피 우는지 젊을 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으니까. 80년대 부산에 살 때였다. 예총부산지부 부회장을 지내던 천봉이라는 연예분과 원로에게 "으악새는 어떤 새인가?" 물었다. 그는 <앵두나무 우물가에>, <엽전열단냥> 등 히트곡을 수없이 작사한 분이었다. 그로부터 돌아온 답은 실망스럽게도 새가 아닌 갈대과의 '억새'풀의 사투리였다. 마른 억새잎들끼리 바람에 서걱이며 부딪치는 소리를 소쩍새 슬피 울듯 '슬피 운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