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꽃인듯한데 꽃이 아닌 것을 화비화(花非花)라고 합니다. 당나라 유명한 시인 백거이가 단풍을 두고 표현한 글귀지요. 온 대지를 형형색색으로 뒤덮은 단풍이 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한여름을 푸르름 속에서 비바람, 폭풍우와 같은 고난을 견디고 가을에 이르러 장엄하게 물드는 단풍이야말로 그 불타는 요염함보다 삶의 환희로서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산책하러 집을 나서면 길가에 싸리나무가 노란색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교대 앞의 은행나무는 황금빛으로 삶의 진수를 방출하다 노랑나비 되어 한들거리며 보도에 내려앉음이 멋스럽습니다. 어느 시인은 단풍을 "초록이 지쳐서 단풍 드는데…."라고 표현했는데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생명이 다해가는 잎새를 그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나이가 이순을 훌쩍 넘었습니다. 어쩌면 이 가을이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왔기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가을의 잘 물든 단풍처럼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살아왔는지 돌이켜 볼 일입니다. 단풍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거대한 꽃밭을 동장군이 사정없이 걷어갈 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선당! ‘착한 성품을 기른다’라는 뜻의 자선당은 세종이 큰아들인 세자 ‘향’에게 선물한 세자궁이었다.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궁’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문종은 자랐다. 그러나 자선당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궁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며 궁궐이 불탔고, 이때 자선당 또한 주춧돌과 기단석만 남은 채 모조리 불타버린 까닭이다. 우리아가 쓴 이 책, 《돌아온 자선당 주춧돌》은 세종이 세자를 위해 지은 ‘자선당’에 쓰였던 주춧돌이, 임진왜란 때 화재에 불타고 고종 때 다시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일본에 실려 가는 수모를 당하는 신산한 세월을 겪은 끝에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자선당이 다시 지어진 것은 수백 년이 지나 흥선대원군 때가 되어서였다. 자선당이 완공되며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자선당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 시기도 잠시, 결국 순종은 일본의 위협에 자선당을 지키지 못하고 창덕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p.35)자선당 터로 흥선대원군이 신하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을 지어라. 세자궁은 조선의 미래이다.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조선을 넘보려고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의 역사 중심이었던 교토나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거의 일본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한 미술관이 일본 으뜸 정원이라는 평가를 20년째 받아오고 있는 것을 아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는데, 필자는 이 미술관을 두 번이나 방문하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지난 6월 중순 10년 만에 다시 방문한 이 ‘아다치미술관’이란 곳, 관람객들과 함께 복도를 따라가며 멋진 정원을 내다보던 중에 한 건물 입구 벽에 낯익은 사인이 눈에 들어오기에 가까이 가서 보니 ‘魯山人’이라는 한자 사인이었다.‘ 그것은 일본 근대의 유명한 도예가인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의 탄생 140돌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시실 입구였다. 마침 폐막 열흘 전이었다. 운 좋게 전시장을 발견하고 전시된 도자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동백꽃사발(椿碗)도 있었다. 10년 전에는 이런 시설이 없었는데, 3년 전에 새로 전시실을 마련하고 해마다 그의 작품과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은 근대 일본의 전설적인 예인(藝人)이다. 도예가인 동시에 서예가, 전각가이며 무엇보다도 음식의 격조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해 전 우린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10월 29일 이태원 할로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생한 압사 사고. 이 사고로 인해 196명이 부상을 당하고 159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때 나는 추모 현장을 지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었지요. 다시 한번 당시를 떠올려 보고 자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올려봅니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옛 그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혼자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친절한 안내가 없으면 옛 그림은 다소 어려운 분야다. 이 책,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의 지은이 장세현은 옛 그림을 ‘읽는다’. 보통 그림은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인 까닭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상형문자를 읽듯, 그림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또 하나, 옛사람들에게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하나의 수양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붓질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헛된 생각과 욕심을 다스렸다. 이런 마음 수양 그림의 대표적인 분야가 ‘사군자’다.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선비들에게 두루 사랑받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대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대나무를 운치 있고 격조 있게 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나무 그림에 바위가 더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우리는 공연의 3요소를 흔히 무대ㆍ배우ㆍ관객으로 말한다. 이 전통적 개념에서 볼 때, 공연을 완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창작자의 것을 바라보는 관객이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작자가 무대 위에서 창의적 활동을 할 때, 이를 보고 소통하는 관객이 없다면 공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에서 관객은 시대에 따라 그 대상이 점점 더 다양해졌다. 예전에 예술은 소수의 부유층이 누리는 문화예술로서 그 희소가치가 높은 것을 의미하였다. 곧 특별한 것을 누리는 고급문화로서 계급적 권위와 품격을 높이는 행위로서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예술은 대중의 향유에 시선을 맞추고 대중성에 입각한 상업의 흥행을 목적으로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술의 값어치를 돈으로 지급하는 부유층의 후원에 따라 진행하던 것이 나중에는 대중의 흥행에 의한 것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관객은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살고 있다. 소수의 부유층이 향유 했던 예술을 전통 또는 클래식으로 말했지만, 이는 소수의 예술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향유되는 예술로서 그 범위가 확산하였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은 정원의 나라다. 일본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모두 1,000여 곳의 정원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어디일까? 일본연구가 황현탁에 따르면 전통적으로는 가나자와시의 겐로쿠엔(金沢市の兼六園), 오카야마시의 고라쿠엔(岡山市の後楽園), 미토시의 가이라쿠엔(水戸市の偕楽園)을 꼽는다. 이 세 정원을 이름난 정원(名園)으로 꼽는 까닭은 눈, 달, 꽃(雪月花)이 각각 유명하기 때문으로 겐로쿠엔은 눈, 고라쿠엔은 달빛, 가이라쿠엔은 꽃이 유명하다. 이 세 정원은 모두 인공 연못이나 개울을 조성하고, 다리, 섬, 산을 만들거나 돌이나 바위를 옮겨 산책로를 조성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으로 일본 각지의 영주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일본정원학회라는 데서 1999년에 창간해 전 세계에 배포하고 있는 《SUKIYA LIVING MAGAZINE》라는 격월간지는 세계 정원의 순위를 매기면서 2003년부터 20년 넘게 오직 이곳을 1위로 꼽고 있는데, 바로 시마네현 야스기시(安來市)에 있는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이다. 이 학회는 해마다 일본 내 정원을 규모나 지명도와 관계없이 전 세계 전문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들을 걷다 보면 씨앗의 끝이 4지창으로 갈라진 화살표 모양의 열매를 맺은 식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식을 멀리 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는 열매지요. 우린 그 열매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몸에 달라붙어 매우 귀찮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 식물의 이름은 도깨비바늘입니다. 사지창처럼 되어 있는 뾰족한 침에는 아주 작은 가시가 붙어 있어서 한번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안으로 파고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바짓가랑이에 붙어서 따가움을 유발하는 이유기도 하지요. 비슷한 것으로는 도꼬마리나 가막사리가 있습니다. 도꼬마리는 통통한 열매에 낚시처럼 가시가 있어 몸에 잘 붙고요. 가막사리는 도깨비바늘보다 씨앗의 옆면적이 큰 특징이 있지요. 식물은 되도록 씨앗을 멀리 보내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열매의 꼬투리를 터뜨려서 조금이라도 멀리 보내려는 식물이 있고 동물의 위장을 이용하여 먼 거리를 이동하는 식물도 있고 바람을 이용하여 되도록 멀리 가려는 식물도 있고 이렇게 붙어서 이동의 자유를 얻는 식물도 있습니다. 문제는 붙어서 이동하는 것들이 인간 활동에 장애를 준다는 것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슬슬 거닐다》 ‘숨어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책길 34곳’이라는 부제처럼,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고 싶을 때 보기 좋은 책이다. 어디론가 바쁘게 가야 하는 일상, 그 일상을 내려놓고 ‘슬슬 거닐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책 《슬슬 거닐다》은 번역가이자 작가인 지은이 박여진이 월간지 기자이자 사진가인 백홍기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두루두루 찾아다닌 기록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아니었다면 쉬이 몰랐을 주옥같은 명소들이 유려한 문체로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문경 고모산성이다. 산성을 걸어본 이라면 한편으로는 그 촘촘한 짜임새에, 한편으로는 이제 부질없어져 버린 산성의 튼튼한 기능에 알 수 없는 감회를 느꼈을 법하다. 지은이 또한 그랬다. (p.225) 성곽길에는 특유의 결연함이 있다. 촘촘히 올라간 돌 마디마다 조금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강이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엄도 근사하다. 다만 활과 포를 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나른함과 성곽의 결연함이 잘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비장할 필요가 없어진’ 고모산성은 이제 슬슬 거닐기 좋은 산책로가 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하러 떠날 때, 마속이 몇십 리를 전송했습니다. 제갈량이 묻지요. "오늘 가르침이 없겠소?" 마속이 대답합니다. "남쪽의 소수 민족은 거리가 멀고 지형이 험한 것을 믿고 불복한 지 이미 오랩니다. 비록 오늘 이긴다 해도 내일이면 또 불복할 것입니다. 군사를 쓰는 법에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치는 것이 하책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심리전이 상책이고 군사로 싸우는 것이 하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속의 말을 들은 제갈량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사는 이치도 그러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현란한 말솜씨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과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일은 열과 성을 다하는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지요. 마음을 얻는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항우는 연전연승으로 성공을 눈앞에 둔 지도자이지만 신안에서 항복한 포로 20만 명을 계곡에 생매장합니다. 하지만 유방은 백성의 민심을 얻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지요. 그것이 천하의 패권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됩니다. 그건 유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조에게 패해 형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