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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일본 으뜸 정원, ‘아다치미술관’의 의미

20년 이상 격월간지 《SUKIYA LIVING MAGAZINE》서 1위 오른 세계 정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은 정원의 나라다. 일본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모두 1,000여 곳의 정원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어디일까? 일본연구가 황현탁에 따르면 전통적으로는 가나자와시의 겐로쿠엔(金沢市の兼六園), 오카야마시의 고라쿠엔(岡山市の後楽園), 미토시의 가이라쿠엔(水戸市の偕楽園)을 꼽는다.

 

이 세 정원을 이름난 정원(名園)으로 꼽는 까닭은 눈, 달, 꽃(雪月花)이 각각 유명하기 때문으로 겐로쿠엔은 눈, 고라쿠엔은 달빛, 가이라쿠엔은 꽃이 유명하다. 이 세 정원은 모두 인공 연못이나 개울을 조성하고, 다리, 섬, 산을 만들거나 돌이나 바위를 옮겨 산책로를 조성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으로 일본 각지의 영주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일본정원학회라는 데서 1999년에 창간해 전 세계에 배포하고 있는 《SUKIYA LIVING MAGAZINE》라는 격월간지는 세계 정원의 순위를 매기면서 2003년부터 20년 넘게 오직 이곳을 1위로 꼽고 있는데, 바로 시마네현 야스기시(安來市)에 있는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이다. 이 학회는 해마다 일본 내 정원을 규모나 지명도와 관계없이 전 세계 전문가들이 각 미디어 업계의 평가를 바탕으로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는데,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이 부동의 1위를 20년째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의 눈이 아니라 미국인이 눈으로 본 으뜸 정원이다.

 

 

아다치미술관은 16만 5천 평방미터(5만평)에 이르는 넓은 터에 조성된 거대한 정원과 그 안의 미술관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독도를 놓고 분쟁하는 시마네현에 있고, 외국인들이 찾기 어려운 곳인데도 이런 높은 경가를 받고 있다. 무엇이 이 미술관 정원을 세계 으뜸으로 만들었을까? ​

 

그것은 이렇게 넓은 곳을 정원으로 했기에, 정교하고 세밀하고 조용하고 호젓한 분위기 위주로 조성된 다른 일본의 내로라 하는 정원과는 차원이 다른 호방함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눈앞 저 멀리까지가 정원이어서 눈이 갑자기 확 터지는 느낌이 된다. 나지막한 외곽산을 살려 작은 자갈과 모래를 깔고 못을 만들고 거기에 미송(美松), 철쭉류, 거석 들을 배치하고 있다.

 

일본의 정원은 흔히 카레산스이(枯山水), 곧 물을 사용하지 않고, 바위나 모래 등으로 산수를 표현하거나, 흰 모래밭 사이에 푸른 소나무를 심어 가꾸는 하쿠샤세이쇼(白沙靑松), 못을 만들어 놓는 이케정원(池庭), 이끼를 덮어 자라게 하는 이끼정원(苔庭) 등의 조성방법이 있는데 이런 기법들이 고루 채용되어 차례로 선보이게 해 놓았다. ​

 

눈 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은 보는 이의 가슴을 활짝 펴게 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람자들의 통로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그 벽을 잘라 그림 액자 크기로 창을 뚫어놓아 눈앞의 정원이 그대로 살아있는 동양화처럼 보게 한다는 것이다. 설립자인 아다치 젠코(足立全康, 1899~1990) 씨가 생각해 낸 득의의 전시방법이다. 이것을 위해 칸막이를 길게 판 다음 창을 만든 '살아있는 칸막이', 바깥 경치를 족자의 그림처럼 보는 '살아있는 족자', 서양화의 액자 속에 넣어서 보는 듯한 '살이있는 액자' 등의 방법으로 저 멀리 있는 멋진 정원풍경을 살아있는 그림으로 감상하게 하였다.

 

 

 

 

먼 곳 야산에는 인공폭포를 만들어 물을 흐르게 했다. 이것은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요코하마 다이칸(横山大観 1868~1958)이 그린 <나치의 폭포(那智乃瀧)> (와카야마현에 있는 유명한 폭포로 일본 으뜸이라고 한다.)를 실물로 옮겨놓은 듯하다. 비가 오면 이 폭포 주위로 물안개가 올라가게 해 놓아 그림을 다시 실물로 감상하게 하는 살아있는 그림이다.

 

 

「살아있다」라는 이름 그대로 이러한 창으로 보이는 경치들은 가을에, 겨울에 다른 색갈과 형상, 이미지를 주니까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그림들이 되는 것이다.

 

 

이 미술관이 자랑하는 것은 자신들이 소장한 미술품을 실제로 정원에 조성해 놓은 것이다. 앞에서 나치의 폭포를 재현한 광경을 보았지만 일본 정원의 특색 가운데 하나인 <백사청송(白砂青松)>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요코하마의 그림을 다시 풍경으로 재현해 놓았다.

 

 

이런 작품들은 실제로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전시하고 있는 근대미술관의 큰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일본 으뜸 화가의 작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전시하면서 정원풍경으로 재현해 놓아 그것을 감상하자는 것이다. 정원도 곧 그림이라는 설립자의 말 그대로다. ​

 

 

 

대전시실 한가운데 걸린 작품은 요코야마 다이칸(横山大観, 1868~1958)의 대표작인 「단풍」으로 가로 5.6미터의 6폭 병풍이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 으뜸 작가인 요코야마의 작품 120점을 비록해 2천여 점의 근대미술품 가운데 으뜸만을 모아 전시를 병행하기에 일본 최고의 미술관이자 곧 정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좀 특별한 것이어서, 필자는 이 미술관 정원을 2013년 여름에 다녀왔고 10년 만인 지난 6월에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2020년에 일본 근대 도자기를 일으킨 대표적인 예술가인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의 특별 전시실을 만들어 그의 작품과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로산진은 젊을 때 우리나라의 공주 등에 와서 가마를 조사하고 우리 도자기 가운데 특히 분청을 많이 연구해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 냈고 또 자신의 그릇을 요리 담는 그릇으로 용도를 넓혀 도자기와 음식, 글씨 등 다방면에 재주를 보인 예술가다. 또 그의 도자예술과 요리철학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데, 그런 그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마침 올해가 로산진 탄생 140돌이어서 일본 전역에서 기념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작품을 많이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정원은 대부분이 중앙정부나 지방의 정권들이 세금으로 조성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미술관(정원)은 사업가인 아다치 젠코(足立全康) 씨가 1970년에 자신 재산를 모두 투척해 만든 가장 큰 규모의 문화예술시설이다. 이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일본 으뜸 미술관으로 꼽힐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투자를 한 것은 일본의 문화예술계를 위해서는 엄청난 공헌이다.

 

그의 뜻을 통해 일본의 예술과 정신이 근대를 넘어 현대로 이어지고 있고 이것이 세계인들의 찬탄을 받기까지 하니,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지원에 목을 매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와 사뭇 비교되는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평생 모은 귀중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국가에 기증한 삼성 이건희 회장과 그 가족들이 있다. 이 회장의 공덕은 사후 더욱 빛이 난다. 문화의 달 10월을 보내며 고맙고 존경하는 인물들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오늘이 이건희 회장의 3주기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