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벚꽃이 폭발하듯 피었다가 꽃비 되어 장엄하게 스러져가고 남은 대지엔 조팝나무가 하이얀 순결을 이어받았습니다. 이제 곧 아카시아와 라일락의 향기가 진동하겠지요. 봄에 돋아나는 생명의 잎은 유난히 싱그럽습니다. 그 아기 손 같은 연한 새싹이 두꺼운 대지를 밀어내는 것을 보면 자연에 깃들어 있는 위대함이 느껴집니다. 작년에 화사한 꽃을 피웠던 백합이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고 주인의 배려로 겨우내 실내에서 동사를 면했던 달리아와 칸나도 분주히 싹을 틔워 올렸습니다. 참 좋은 계절이지요. 산이 푸르러지고 있습니다. 봄의 푸름은 같은 푸름이 아니어서 이맘때의 산의 색을 흉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천재적인 미술가가 있어 색의 마술을 부린다고 한들 여기저기서 색색으로 수놓아지고 있는 자연을 모방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찬란한 색을 감탄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 썩어가는 고목에 생명의 새싹이 돋아난다는 것은 희열입니다. 그러니 인고의 세월, 겨울의 절망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울한 마음을 버리고 삶의 환희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봄이니까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농부아사침궐종자(農夫餓死枕厥種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농부는 굶어죽더라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내년에 심을 종자는 남겨둔다는 의미랍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씨앗을 종묘상에서 구입해 쓰지 않고는 다수확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토종 씨앗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한 작물의 씨앗을 포기하고 외래종을 선택하는 이유는 수확량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해마다 거액의 돈이 외국의 종자상으로 흘러 나갑니다. 심지어는 유전자를 조작하여 씨앗이 싹트지 못하게 불임씨앗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도 있어 국부의 유출이 심각한 것이 현실입니다. 옛날 어릴 적에는 자주감자가 대세였습니다. 길쭉길쭉 한데다 크기가 작고 생으로 먹으면 아주 아린 맛이 나는 감자이지요. 그 감자는 껍질이 두꺼워서 집집마다 달챙이 숟갈이라고 부르는 반쯤 달아 없어진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얗고 매끈매끈한 외래 감자가 들어오더니 그 토종감자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토종감자를 보기가 하늘에 별달기만큼이나 어렵지요. 랜드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끔 무료할 때 유튜브에서 마술쇼를 봅니다.마술은 신기함으로 포장된 눈속임의 미학을 보여주지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 속내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저변에는 속임수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하지만 그냥 재미로 보는 것에 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진실만을 보지 않습니다. 엊그제 <재심>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그 속 주인공의 억울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 왔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고 진범이 나타났음에도 자신이 한 수사의 정당성과 사회적 영달을 위하여 거짓으로 일관한 기득권자의 모습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울컥하였습니다. 우린 어쩌면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 거짓을 택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느슨한 잣대로 타협을 통해 세상과 영합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정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 있고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엄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남이 보지 않아도 같은 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의 두 번째 책 제목이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두뇌로 인식하는 것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붙여본 제목입니다. 경험은 생각보다 강한 것이니 말입니다. 자동차의 비약적인 증가와 탈것이 만연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걷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걷는 것이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버스 두 정거장 정도 되는 짧은 거리임에도 자가용을 몰거나, 택시를 부르니 걷는 문화의 실종시대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걷기는 단순한 발걸음을 옮기는 행위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네 삶의 궤적이 존재하고, 배려와 존중도 함께 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는 남녀가 같이 걷는 것을 데면데면 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삼사 미터 앞에 가고 여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지요. 그 간격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 걷는 속도는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단지 사회적 체면 문화가 그런 문화를 창출한 것이지요. 그들이 따로 떨어져 걷는다고 해서 사랑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같은 공간에 함께 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기자] 강원도 양구여자고등학교 정운복 교사의 글을 연재합니다. 교육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깨끗한 눈으로 글을 씁니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편집자말) 세계에는 약 6,8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문화를 비롯한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금세기 말에는 언어의 90%인 6,000여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문제는 언어가 사라지는 것보다 다양한 정신문명이 함께 소멸한다는 것에 있지요. 우리나라는 훈민정음이라는 매우 우수한 부호체계로 이루어진 한글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자이기도 하지요(1997년 등재) 그런데 우리나라 국어정책은 물론 국민들도 한글에 대한 관심도가 적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인을 제외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세운 영어를 위한 예산이 한글을 위한 예산보다 무려 37배나 높습니다. 영어 사교육까지 거론한다면 계산할 수조차 힘든 천문학적인 돈이 영어를 위해 쓰입니다. 심지어 옛날에는 공문과 회의를 영어로 진행할 것과 영어를 제2공용어로 지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