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하늘의 무지개는 아름다운 만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자연적 현상으로서 무지개를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지개가 보이는 상황이 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청명한 날은 절대 무지개를 볼 수 없습니다. 천둥과 먹구름 속에서 장대같은 비가 내리고 난 후 햇살이 찬란할 때 무지개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무지개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관공서에는 사시사철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축 늘어져있는 깃발은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깃발이 아름다울 때는 바람에 나부끼며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일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련이라는 바람을 맞을 때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지요. 옛날 철기시대 때 철을 단단히 만드는 꺾어 접기라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뭉치쇠를 불에 달구어 모루 위에서 망치로 넓게 편 다음 접어서 다시 망치질 하고.... 이런 행위를 반복할수록 단단하고 질긴 쇠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맹자(孟子) 고자(告子) 장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시인)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한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에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열자 설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옛날 제나라 사람 가운데 돈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평상시와 같이 옷을 잘 차려입고 시장에 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어느 금은방에 들어가 금을 훔쳐 도망을 쳤습니다. 관리가 그를 쫓아가 잡고는 물었습니다. “대낮이라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 금을 훔칠 생각을 했는가?”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금을 훔칠 때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신기한 눈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늘, 같은 환경아래 살아가면서도 세상을 보는 눈은 천차만별입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러합니다. 두 사람이 똑 같은 영화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기억나는 장면과 감동 받은 장면은 각각 다릅니다. 그건 자신의 경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장점만 보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단점만 보입니다. 사람의 눈은 두개인데도 편협한 시각을 갖기 쉽습니다. 문제는 한쪽 견해에 갇히면 세상의 다양성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지요.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면 그게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인정하든 그렇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습니다. 성격이 꼼꼼하여 완벽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실수는 줄일 수 있겠지만 완전을 이룰 수는 없다는 이야기지요. 우린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기도 하고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기도 하고 쥐구멍을 고치려다가 문을 부수기도 하며 작은 여드름을 짜다가 큰 종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이 생명인 진주에 흠결이 있고 천하의 보배인 옥에 티가 있다면 그것을 없애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온전할 것을 그것을 없애려다 잘못하면 깨버리는 결과를 받아 들 수도 있습니다. 완벽(完璧)이란 말의 의미도 옥구슬을 온전히 지켰다는 인상여의 고사에서 출발한 것이고 보면 옥과 티는 불가원(不可遠)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물건이나 사람에 대하여 결점이나 흠을 찾아내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결점을 애써 찾아 비난 하느라 힘을 낭비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칭찬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합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산에 가면 산자락 아래 흔하게 보이는 꽃이 물봉선입니다.연분홍으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물봉선은 등산의 또 다른 매력이지요. 봉선(鳳仙)은 봉황을 나타내는 봉(鳳)과 신선을 의미하는 선(仙)이 결합된 이름이고 보면 산야에 아무렇게나 자라 흔한 모양이지만 꽃의 아름다운 자태나 색의 고움이 고결한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입니다. 물봉선이라고 이름함은 습지를 좋아하는 습성 때문일 것입니다. 여렸을 땐 밤낮으로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열심히 일을 해도 먹을 것이 늘 부족했습니다. 봄부터 삘기, 진달래, 찔레 순, 아카시아, 잔대 싹........ 독이 없고 순한 것이면 무엇이든 먹거리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봉선 꽃을 따서 돌돌 말린 끝을 떼어내고 빨면 달달한 꿀물이 입 안 가득 퍼지기도 했지요. 빈약한 먹거리에 바짝 마른 사람이 대세였던 시절 배를 쑥 내밀고 사장이 되겠노라 호언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옛날엔 먹을 것이 없어 채소(푸성귀)만 먹고 살았는데 요즘엔 먹거리가 넘치지만 건강 때문에 채소만 먹는 사람이 많으니 흐른 세월 속에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산에 다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당신 김태희가 예뻐 내가 더 예뻐?" 도대체 왜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객관적으로 김태희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요? 단지 여자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겠지요. "몰라서 물어? 그야 김태희가 훨씬 예쁘지.." 이렇게 대답한 남자는 아침밥을 굶거나 각방을 쓸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정답은 "당신이 훨씬 더 예뻐, 김태희 한 트럭을 갖고 와도 안 바꿔!"입니다. 마음은 “먼발치라도 김태희 같은 미모의 여자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원이 없겠다.”이지만 대답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요? 그런데 그 말에 속고 싶고, 또 아주 작은 일말의 믿음 때문에 여자는 하루를 즐겁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영혼 없는 칭찬이나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거짓말을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4대 미녀는 양귀비, 초선, 서시, 왕소군을 꼽습니다. 그 가운데 양귀비는 약간 통통한 체형을 갖고 있었지요. 그녀는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성당시절의 시인 이태백은 양귀비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는 당현종 앞에서 양귀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세 가지 독이 있으니 그것을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탐냄(貪, 탐), 성냄(嗔, 진) 어리석음(痴, 치)가 그것입니다. 이는 불가에서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탐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고 진은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 불쾌의 감정이며 치는 지적인 번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탐냄이란 무언가를 가지거나 차지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즐겁거나 매혹적인 대상과의 접촉에서 발생하게 되지요. 주변의 끌리는 현상을 마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탐냄에 물들게 됩니다.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아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습니다. 성냄은 일을 그르치는 단초입니다. 성내지 말고 다른 사람이 성내어도 성냄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보복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귀신은 부적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만들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노력과 배움, 이것 없이는 인생을 밝힐 수 없다.“ “탐진치”는 무엇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끔 군대 간 아이가 집에 옵니다. 부사관이니 출퇴근이 자유로운 게 이유이지요. 그럼 파이를 시켜서 같이 먹을 때가 있습니다. 파이는 정확하게 8조각으로 분리되도록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는 파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분배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전체적인 파이의 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 많이 먹으면 누군가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안의 사소한 일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사회적으로 인식을 높이면 분배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곧 사회적으로 생산된 파이의 총량은 같습니다. 이 총량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더 많이 가져가는데 혈안이 된다면 분배의 불균형이 만들어지게 마련이고 이는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더 많은 폐지를 줍게 되겠지요. 그런데 폐지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누가 많이 주워간다면 좀 굼뜬 사람의 몫은 적어지게 마련이어서 그 가난의 정도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진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성장우선이냐 분배우선이냐 하는 것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파이를 키우는 데에만 신경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의 아침시평 13] 저는 들꽃(야생화)을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아는 합니다. 들꽃 가운데서도 특히 패랭이꽃을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고향집 논과 밭에 가려면 들길에 곱게 피어있던 패랭이 꽃 그 고운 빛깔의 앙증맞은 꽃에 발걸음이 무뎌지곤 했습니다. 옛날 서민들이 쓰던 모자를 패랭이라고 합니다. 꽃이 꼭 그 패랭이 모자를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대나무처럼 줄기에 마디가 여러 개 나 있어서 석죽(石竹)이라고도 불리지요. 감사의 꽃인 카네이션이랑 많이 닮았는데 둘 다 같은 석죽과 패랭이속입니다 이 꽃을 만나려면 햇빛이 충분한 오래 묵은 넓은 풀밭이나 무덤가로 가야 합니다. 특히 사람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이면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패랭이꽃은 군락을 이루는 듯 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거리를 두고 서식하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함이 멋스런 꽃이지요. 패랭이꽃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거친 황무지에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단원(檀園) 김홍도도 패랭이를 즐겨 그렸다고 하니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킨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원에서 피어난 꽃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산기슭이나 들녘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피워 올린 순박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늘이 초복(初伏)입니다. 옛날부터 삼복더위라는 표현이 있고 보면 앞으로 더위의 절정기가 올 것입니다.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을 지칭하는 것이니 24절기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복(伏)이란 글자를 파자하면 “人”과 “犬”이 나오니 사람 옆에 개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복날에 복놀이 용으로 개를 식용하니 그렇게 썼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어찌되었던 복날엔 개와 닭이 수난을 당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영양이 비교적 부실했던 시기에 날을 잡아 보양식을 먹어야 더운 여름을 날 수 있으니 어쩌면 선조들의 지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식재료를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을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밥투정이나 반찬투정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 없이 살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까요.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 식문화가 또 도마에 오른 모양입니다. 먹는 것도 문화입니다. 물론 개인의 식생활의 호오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삶은 밀웜(딱정벌레목에 속하는 식용곤충 애벌레)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바다를 잘 그리고 싶다면 매일, 매시간 같은 장소에 가서 바다를 관찰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특정한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특정한 소재를 계속 반복해서 그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빛은 곧 색이라는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켰으며 같은 주제를 가지고 시간과 날짜를 달리하여 반복하여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유명한 것 하나가 수련입니다. 요즘 각종 연꽃이 한창입니다. 연은 크게 백련이나 홍련, 어리연, 개연, 가시연, 수련 등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수련은 한자로 ‘水蓮’이 아니고 ‘睡蓮’으로 씁니다. 물에서 피는 연꽃의 의미가 아니라 잠잘 수자를 쓰니 밤에는 연꽃잎이 오므라드는 특성을 살려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홍련이나 백련은 물 밖으로 잎이 1m이상 자라기도 하지만 수련의 잎은 꼭 물 높이 만큼만 자랍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모습을 지켜가는 아름다움이 있으며 주돈이가 지은 애련설에서 밝혔듯이 연은 연못 한가운데 피어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