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선당! ‘착한 성품을 기른다’라는 뜻의 자선당은 세종이 큰아들인 세자 ‘향’에게 선물한 세자궁이었다.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궁’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문종은 자랐다. 그러나 자선당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궁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며 궁궐이 불탔고, 이때 자선당 또한 주춧돌과 기단석만 남은 채 모조리 불타버린 까닭이다. 우리아가 쓴 이 책, 《돌아온 자선당 주춧돌》은 세종이 세자를 위해 지은 ‘자선당’에 쓰였던 주춧돌이, 임진왜란 때 화재에 불타고 고종 때 다시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일본에 실려 가는 수모를 당하는 신산한 세월을 겪은 끝에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자선당이 다시 지어진 것은 수백 년이 지나 흥선대원군 때가 되어서였다. 자선당이 완공되며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자선당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 시기도 잠시, 결국 순종은 일본의 위협에 자선당을 지키지 못하고 창덕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p.35)자선당 터로 흥선대원군이 신하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을 지어라. 세자궁은 조선의 미래이다.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조선을 넘보려고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늦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린다. 이런 날엔 시집이 읽고 싶다. 그 누구의 시집이라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시집이 배달되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를 쓴 사람은 손선아 시인이다. 아! 벌써 그녀가 환갑의 나이를(?) 하며 책장을 연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한다” 라는 머리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침묵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첫 시집을 낸 이후....사느라 바빠서, 개점휴업, 장기간의 코로나, 게으름의 늪, 갑작스레 닥친 친정어머니의 죽음,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졌던 일” 등의 사연이 있어 두번째 시집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공감 모드다. 친정어머니의 죽음까지 어쩌면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과 같을 수가 있을까? 듣고보니 손선아 시인의 ‘개점휴업’ 이유가 명색이 시인인 내 삶과 닮은 것 같다. 그래, 누구든 비슷한 삶을 사는 게 틀림없어...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시를 읽어 나갔다. 행간을 살피며 시를 감상해 나가는 동안, 나는 손선아 시인이 ‘명색이 시인’인 나와 다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글을 쓴 손 시인의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말글을 아끼고,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활용하여 <날마다 쓰는 우리문화 편지>를 쓰기 시작하여 올해로 4,800회(19년째)가 넘었다. 그러나 아직 목이 마르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한국문화’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교과서 같은 한국문화를 벗어나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그러면서 재미난 한국문화를 다룬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한류를 꿈꾸는 이들이 ‘제대로 된 한국문화’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새 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를 쓴 김영조 작가의 이야기다. 공감한다. 사실 기자는 일본어 전공자이다 보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상당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그다음에 찾는 것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다. 한결같이 그들은 이갸기한다. ‘쉽고 재미난 한국문화 책’을 소개해 달라고 말이다.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자 그동안 기자는 수없이 대학도서관이나 서점에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을날 맑아 - 나태주 잊었던 음악을 듣는다 잊었던 골목을 찾고 잊었던 구름을 찾고 잊었던 너를 찾는다 아, 너 거기 그렇게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가 좋은가 나도 여기 그대로 있단다 안심해라 손을 흔든다. 지난 9월 말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를 맞았다. 그런데 온갖 펼침막이나 광고판에는 ‘한가위’보다는 ‘추석’이란 말이 많이 보였다. 심지어는 ‘秋夕’이라고 한자로 써 놓기도 했다. 그 유래가 어디서 왔건 버릇처럼 ‘추석을 되뇐다. 늘 하는 말이지만, ‘추석’이라는 말은 5세기 송나라 학자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에 나온 “추석월(秋夕月)”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추석월”은 천자가 가을 저녁에 달에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명절과 잘 맞지 않는 말이 아니던가? 그에 견주면 ‘한가위’는 ‘크다’라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에서 유래한 것인데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나라 안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음력 7월 열엿새 날부터 8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옛 그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혼자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친절한 안내가 없으면 옛 그림은 다소 어려운 분야다. 이 책,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의 지은이 장세현은 옛 그림을 ‘읽는다’. 보통 그림은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인 까닭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상형문자를 읽듯, 그림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또 하나, 옛사람들에게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하나의 수양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붓질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헛된 생각과 욕심을 다스렸다. 이런 마음 수양 그림의 대표적인 분야가 ‘사군자’다.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선비들에게 두루 사랑받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대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대나무를 운치 있고 격조 있게 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나무 그림에 바위가 더해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한국외국외국어대학교 서울 이문동캠퍼스에 가니 학생들이 “韓國外大”라고 한자로 쓰인 점퍼를 입고 다녔다. “韓國外國語大學敎”라고 전체를 다 쓴 것도 아니고 줄여서 쓴 한자를 학교가 아닌 밖에서 보면 중국인들도 잘 이해할 수가 없을 듯싶었다. 그냥 “한국외대”라고 쓰면 될 터인데 세계 공통어라고 할 영어도 아니고 굳이 한자로 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지난 4월 17일에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의 우리문화편지에 고등학교 야구 중계에 나온 선수들의 운동복에는 학교 이름이 한자로 쓰인 것을 꾸중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진을 보면 ‘全州’, ‘慶北高校’라고 한자로 쓴 운동복이 아니던가? 김 소장은 이 글에서 “운동복에 학교 이름을 쓰는 것은 자기의 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알리려는 뜻일 텐데 굳이 한자로 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학교의 이름을 몰라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세계 으뜸 글자라는 한글을 가진 겨레가 이렇게 스스로 얼빠진 짓을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얼마 전 우리는 제577돌 한글날을 지났다. 이때 많은 행사를 하는데 그런 정신으로 행사만 하면 무엇할까? 제발 스스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실없이 가을을 - 나해철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 지난 10월 24일이 상강(霜降)이었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풀과 나무)들은 자람을 멈춘다.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데 들판과 뫼(산)는 깊어진 가을을 실감케 하는 정경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운문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을 얘기했나 보다. 이제 상강도 지나고 바야흐로 가을이 깊었다. 엊그제 한낮의 기온이 20도를 웃돌 듯하더니 이제 겨우 10여 도를 넘길 만큼 쌀쌀해졌다. 농촌 들녘도 가을걷이가 끝나고 휑한 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난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먹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란 구절을 정운복이 쓴 《행복한 그루터기》라는 책에서 본다. 그는 <우리문화신문>에 ‘정운복의 아침시평’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강원 동산중학교 교장으로 “봄향기를 대하며 더불어 사람 냄새나는 싱그런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날마다 아침 편지를 써서 번개글(이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란다. 그는 책에서 말한다. “제가 30년 넘게 아침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고 글 쓰는 잔재주를 드러내려 함도 아닙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공중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어두운 소식들 흉악범, 사기군, 협잡꾼, 권모술수가 난무한 세상. 하지만 흉측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더 많고 아프고 슬픈 것보다는 기쁜 것이 더 많고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행복의 가치가 더 큼을 같이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땅이 척박해도 풀들은 제각기 뿌리를 내리고 아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슬슬 거닐다》 ‘숨어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책길 34곳’이라는 부제처럼,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고 싶을 때 보기 좋은 책이다. 어디론가 바쁘게 가야 하는 일상, 그 일상을 내려놓고 ‘슬슬 거닐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책 《슬슬 거닐다》은 번역가이자 작가인 지은이 박여진이 월간지 기자이자 사진가인 백홍기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두루두루 찾아다닌 기록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아니었다면 쉬이 몰랐을 주옥같은 명소들이 유려한 문체로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문경 고모산성이다. 산성을 걸어본 이라면 한편으로는 그 촘촘한 짜임새에, 한편으로는 이제 부질없어져 버린 산성의 튼튼한 기능에 알 수 없는 감회를 느꼈을 법하다. 지은이 또한 그랬다. (p.225) 성곽길에는 특유의 결연함이 있다. 촘촘히 올라간 돌 마디마다 조금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강이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엄도 근사하다. 다만 활과 포를 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나른함과 성곽의 결연함이 잘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비장할 필요가 없어진’ 고모산성은 이제 슬슬 거닐기 좋은 산책로가 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민초 꽃 - 이서정 얕보지 마라 태풍에도 살아남는 것이 풀뿌리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이들아 봄을 빼앗긴 민초는 밟으면 밟을수록 더 질기게 더 깊게 뿌리내린다는 것을 아는가 귀 막고 눈 가리고 진실을 외면해도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음지에도 태양은 뜨고 꽃은 핀다 지난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올렸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록물로 썩은 지도층과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한국이 번영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나라 밖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보면 농민지도자 20여 명이 방 가운데 백지를 펼치고 백지 가운데에 큰 사발을 엎어 놓고 사발을 중심으로 각자의 이름을 쓴 ‘사발통문’이 있는데 이는 동시에 참여자 모두가 주모자가 되어 똑같이 책임을 나누어지겠다는 뜻이 담겼다. 더 나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