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강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류은규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성에 집착하며 지금껏 30년 동안 중국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의 발자취를 밝혀내는 사진을 찍고 또한 수집해왔다. 그의 인생 동반자인 도다 이쿠코 작가는 방대한 사진 자료를 함께 정리하고 글을 쓴다. 부부는 5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정리하고 앞으로도 계속 ‘간도사진관’ 시리즈로 펴낼 예정이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역사를 더듬어가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도서출판 토향’이 펴낸 책 《기억의 기록》은 해방 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재중동포가 아직 한국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기의 사진 170장을 수록한 생활사 다큐멘터리 사진 자료집이다. 지난 시절 우리가 한 장의 사진을 얻으려면 꼭 거쳐야만 했던 곳이 사진관이다. 사진사들은 누군가가 영원히 남기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기억을 각인하고 후대에 전하는 중개자 역할을 했다. 그들은 기자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배경 그림이나 패널, 합성, 채색 등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한 장의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려고 애를 썼다. 빛바랜 옛 사진에서 서민들의 순수하고 가슴 아린 사연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오래전 4·1아우내 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아우내(병천, 竝川)에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과 생가, 열사를 기념하는 공원을 나의 산책 코스로 정하고 거의 날마다 그곳을 거닐었다. 그러면서 나는 유관순 열사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는 《김구응 열사 평전》(틈새의 시간 출간)을 쓴 전해주 성공회 신부의 말이다. 전해주 신부는 충남 아우내(병천) 성공회교회에서 사제로 지내면서 뜻밖에 ‘4·1아우내 만세운동’의 주역이 유관순 열사(이화학당 유학생, 당시 17살)가 아닌 당시 지역 유지이자 아우내에 첫 근대식 학교인 청신의숙(靑新義塾)을 세우고 더 나아가 성공회에서 운영하던 진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구응 열사(당시 32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글줄깨나 쓰는 신부'로 알려진 전해주 신부는 아우내 성공회교회에 부임한 뒤, 4년 뒤에 맞이할 성공회교회 100돌을 기념하기 위한 ‘100주년 교회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회사(敎會史) 집필을 위해 교회에 보관되어 오던 1920년~30년대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인물이 김구응 열사였다. 그 자료는 강애단 신부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는 고등학교 야구 중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선수들이 입고 나온 운동복에는 학교 이름이 모두 한자로 쓰였습니다. 운동복에 학교 이름을 쓰는 것은 자기의 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알리려는 뜻일 텐데 굳이 한자로 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학교의 이름을 몰라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자료를 찾으려고 1960년 치 조선일보를 보니 온통 한자투성이였습니다. 신문 이름은 물론 1면 머리기사부터 정치, 사회면은 물론 광고면까지 우리나라 신문이라고 하지 못할 만큼 한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특히 광고면의 영화광고도 물론 한자로 도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情熱的인 長時間킷스나 가벼운킷스를 不問하고 입과 입이 交錯된 것을 1回로 셈함. 主役킷스와 助演陣킷스를 모두 셈해야 됨.”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요?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4년 동안이나 옥고를 치르시고 광복 뒤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편수국장에 두 차례 지내시면서 각종 교과서에 한글만으로 가로쓰는 체재를 확립한 외솔 최현배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 음식점의 금서집(錦書集,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1월 17일. 대련 수상경찰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는 짧았다. 그가 살다 간 태산 같은 인생에 견주면 허무한 결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살아간다지만, 30년이 넘는 숱한 시련에도 건재했던 아버지였기에 아들 이규창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그는 곧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아버지가 대련으로 간다는 정보가 어떻게 일본 경찰에게 들어갔는지 모든 연결망을 동원해 샅샅이 알아보았다. 아버지를 죽게 한 밀정이 누구인지 찾게 될 때는,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김은식이 쓴 이 책, 《이회영-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1910년, 망국의 파도가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그해, 일제의 치하에서 단 한 해도 살 수 없다며 1910년 12월 30일 재산을 처분해 전 가족이 만주로 망명한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다. 나라가 망했을 때 조상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으며 조선을 좌지우지하던 권문세족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책에 소개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자결, 사설 게재, 무장투쟁을 하는 저항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대다수 양반은 일제가 던져주는 달콤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편식하는 사람들만 받는 식당이 있다? 물망초 식당은 주인공 ‘문망초’의 이름을 딴 간이식당으로, 망초는 100일 동안 7명의 손님을 맞아 그들의 편식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성공하면 엄마 금귀비 여사가 운영하는 일류 식당 〈금귀비 정찬〉을 물려받을 수 있다. 물망초 식당으로 첫 번째 손님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망초는 손님들의 사연을 듣고 그에 맞는 음식 처방을 내린다. 김치를 못 먹는 유현, 꽁치를 보면 화가 난다는 학원 원장 등 다양한 손님들이 음식으로 인한 아픈 기억을 내보이며 물망초 식당을 찾아올 때, 이들이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일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게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망초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되는데... 과연 망초는 계약을 무사히 이행하고 엄마의 식당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음식에 담긴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종이책과 전자책, 그리고 오디오북 중에 무엇이 살아남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2016년부터 2019년 미국에서 종이책 판매는 다소, 전자책 판매는 급격하게 감소했으나 오디오북의 판매량은 폭증했다. 특히 2020년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 교재를 활용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이는 앞으로의 읽기 매체가 오디오북, 동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매체로 옮겨갈 것임을 시사한다. 저자는 책의 어떤 한 매체가 다른 매체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종이책은 사색과 철저한 평가를 위한 독서에 적합한 반면, 디지털 매체는 온라인에서 정보의 소재를 파악하고 사실을 확인하는데 효과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매체별 읽기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읽기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노르웨이, 독일 등 여러 국가의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등 폭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실험을 통해 도출한 신뢰성 있는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이 책은 디지털 시대의 교사, 강사 등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곡우 단비 - 김용화 하늘이 때를 알아 비를 내리십니다 달팽이는 긴 뿔대를 세우고 가재는 바위를 굴리며 청개구리는 연잎 위에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물새는 수면을 차고 날며 잉어는 못 위로 뛰어올라 농부는 땅에 엎드려 온몸으로, 오시는 비를 마중합니다 며칠 뒤면(4월 20일) 24절기의 여섯째로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다. 이 무렵부터 못자리를 마련하는 일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는데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같은 농사와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전해온다. 논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곡우 때가 되면 농사 준비에 바쁘다. 이제 못자리에 뿌릴 볍씨 소독도 해야 하고 못자리를 만들어 볍씨도 뿌려야 한다. 한해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농촌도 기계화가 되어 쉽게 농사를 쉽게 짓는 때가 되었지만, 예전엔 천수답(天水畓) 곧 천둥지기는 비가 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데 오죽했으면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비라고 했을까? 모심을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까지 나서서 기우제를 지내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봄은 왔다. 비록 35년이나 걸렸지만, 빼앗긴 들은 주인을 찾아 기름진 옥토가 됐다. 특히 우리 문화에 푹 빠진 한류 팬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만큼 문화 강국이 됐다. 그러나 봄이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일본의 위세가 맹위를 떨칠 때,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보배라 할 만한 문화유산도 갖은 수모를 당했다. 이 책,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에 실린 열 가지 유산이 특히 그랬다. 이 책은 다양한 경로로 나라 밖으로 빠져나간 문화재를 다루며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고,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나라의 문화재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을 생생히 일깨워준다. 만약 식민지 시절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문화재가 오롯이 우리 곁에 있었을 텐데, 절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책에 실린 가야 문화재, 경복궁, 경천사 십층석탑, 고려청자, 몽유도원도, 북관대첩비, 의궤, 유점사 53불, 인쇄술, 수월관음도가 모두 보배 같은 유산이지만, 특히 경천사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챗GPT(ChatGP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러한 인공지능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10여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단지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폭넓게 탐구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을 ‘추출 산업’으로 규정한다. 현대 인공지능 시스템을 창조하려면 지구의 광물자원, 인간의 값싼 노동력, 대규모 데이터를 추출해야 한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는 인간이 로봇처럼 취급받으며 일을 하고,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대량 수집하므로 개인의 초상권이 무시되고, 많은 곳에서 개인정보가 동의 없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기계학습 시스템은 운전면허증 얼굴 사진에서 범죄 성향을 탐지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현대인의 삶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는 인공지능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을 통해 인공지능이 가진 문제점을 살펴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조선후기 현감을 지낸 화원으로 화재 변상벽(卞相璧)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영모(翎毛, 새와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 동물, 인물초상을 잘 그렸다. 1850년 무렵에 나온 편저자를 모르는 《진휘속고(震彙續攷)》라는 책에 따르면 “화재는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이’였다. 초상화 솜씨가 대단해서 당대의 국수(國手)라고 일컬었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백(百)을 넘게 헤아린다.”라는 내용이 있을 정도다. 특히 변상벽의 대표작 <참새와 고양이(묘작도, 猫雀圖)>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참새를 쫓아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 아래에 있는 동무를 내려다보는 그림으로 고양이의 털을 잔 붓질로 일일이 꼼꼼하게 묘사한 영모화다. 이 그림은 봄기운이 물씬 나지만 사실은 그림을 선물한 사람의 축원이 담겨 있다. 고양이 ‘묘(猫)’와 70살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