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김란사! 언뜻 듣기에도 몹시 이국적인 이 이름은, ‘낸시(Nancy)’라는 세례명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김란사는 구한말 태어나 191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조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아낌없이 헌신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화학당의 교사로 많은 여성을 깨우치고, 또 고종의 비밀문서를 갖고 파리강화회의로 향했던 중요한 업적에 견줘 오늘날 거의 아는 이가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아마 파리강화회의로 향하던 중 베이징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아까운 삶을 일찍 마쳤기 때문이리라. 이 책, 《김란사, 왕의 비밀문서를 전하라!》의 지은이 황동진은 서울교육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활동하는 그림작가다. 2017년 김란사 특별전을 기획하고, 전시가 끝나서도 김란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펴냈다. 김란사는 1872년, 평양의 한 유복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청나라에 오가며 무역한 덕분에 남부러운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혼인을 10대 시절에 일찍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스물한 살에 경무청에서 일하던 하상기와 혼인했다. 여느 여성들과 다르게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적극적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무 1 - 지리산에서 - 신 경 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 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한국 전통집들은 백성집으로부터 궁궐에까지 모두 나무집 곧 목조건축이다. 우리 전통 목조건축의 기둥은 ‘원통기둥’, ‘배흘림기둥’, ‘민흘림기둥’의 3가지 모양이 있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 최순우 선생은 ‘배흘림기둥’ 사무치는 고마움을 얘기할 만큼 아름답다고 얘기했다. 여기서 ‘원통기둥’은 기둥머리ㆍ기둥몸ㆍ기둥뿌리의 지름이 모두 같은 기둥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훈맹정음’. 척 보아도 그 뜻이 짐작이 간다. 바로 맹인을 위한 한글점자다. 눈이 보이는 이는 일상적으로 읽는 한글도 맹인에겐 큰 산이다. 점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그들에게 한글점자, ‘훈맹정음’의 존재는 세상을 밝히는 등대요, 촛불이다. 1926년, 이렇게 소중한 ‘훈맹정음’을 만드는 큰일을 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박두성이다. 지은이 최지혜는 박두성이 나고 자란 강화도 어느 산자락에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운영하며 그림책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을 썼다. 박두성은 강화도보다 더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섬, ‘교동도’에서 1888년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였던 박두성의 집안은 교동교회에 봉사하며 신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어릴 때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지만, 여덟 살부터는 강화도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얼마간 농사를 짓다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엔 일반 초등학교에서 보통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에 속한 맹아학교 선생님이 되어 처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였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인간관계는 삶의 동력이기도 하지만 또한 피로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잣대로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과 피곤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당신, 지금 한 번쯤 멈춰 서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과 성찰로 많은 독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 김재식 작가의 신작이다. 저자는 인간관계의 깨달음, 자존감,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자는 응원, 소소한 행복을 찾는 방법 등을 시로, 일기로, 때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하고 있다.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지금 느끼는 혼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힘든 심신을 다독이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공감’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라는 인식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모두가 ‘그래, 당신 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기 자신을 칭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스스로 보내는 위로와 응원의 힘을 믿고, 내 마음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 하영순 일 년 24절기 중 동지 지나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비라도 쏟아 졌으면 겨울 가음이라도 해갈하련만 날씨만 우중충하다 수은주는 내려가고 서민의 고뇌는 높아만 간다. 냉기류는 정가나 재계나 풀릴 기미가 없다 뭐가 그리도 원한이 많아 칼을 가는지 얼어붙은 이 땅에 봄은 언제 오려는지 꽁꽁 언 얼음장 밑에도 물은 흘러만 간다.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어제는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으로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이었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라는 말처럼 소한 추위는 예부터 대단했다. 예전 사람들은 매서운 추위가 오면 땔감이나 옷이 변변치 않았기에 견디기 참 어려웠고 동사(凍死) 곧 얼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는데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임금이 승하한 뒤, 첫째 아들인 왕세자가 즉위한다.’ 얼핏 보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명제는 실현되지 못한 적이 훨씬 많았다. 조선 역사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세자는 겨우 일곱 명에 불과했다.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만 적자이자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그나마 요절하지 않고 꽤 오랜 기간 정사를 제대로 펼친 임금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도 ‘가업 승계’와 ‘후계자 양성’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한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 봉건시대에 ‘왕세자 책봉’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자 출신 왕자들만 많거나, 서자 출신 왕자조차 거의 없거나, 적자 왕자는 있으나 군주가 지녀야 할 자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왕통을 잇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전문 역사 연구자의 길을 걸은 지은이 이준호는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의 비극적인 인생을 한 권의 책, 《비운의 조선 프린스》에 담았다. 물론 임금이 되지 못한 왕세자 가운데서도 천수를 누리며 잘 살다 간 이가 더러 있지만, 겉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얼굴을 감추고 싶다 - 허홍구 철없고 겁 없던 시절 모자라는지도 모르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마구 쏟아 놓은 말과 글 여물지 못한 저 쭉정이와 가볍게 휩쓸리는 껍데기 이제 지워 버릴 수도 없고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건방 떨던 못난 짓거리 아직도 이리저리 흩어져 죽지도 않고 돌아다닌다. 어이쿠, 부끄러워라 부끄러운 흔적 어찌 지울까요 하느님, 부처님, 독자님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인터넷에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있다. 노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청년들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권유하는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출정하는 동생에게’, ‘병정’ 등을 발표하고,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산하 부인대(婦人隊) 간사를 맡을 정도로 친일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천명에게는 웃지 못할 일화가 따라다닌다. 그것은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펴낸 시집 《창변(窓邊)》에 관한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빈약한 증거를 모으기 위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나를 도와 달라고! 다음 타깃은 당신일지도 모른다고.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러해야 한다고. 비슷한 피해자 두 분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회사를 관두셨던 분도 소문을 듣고 기꺼이 가지고 있던 성희롱의 증거들을 보내 주셨다.” -2022 성희롱 없는 일터 만들기 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서울위드유상) 수상작 ’다음 사람‘- 서울시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이하 ‘위드유센터’)는 2022 ‘성희롱 없는 일터 만들기’ 에세이 공모전 수상 작품집 <여전히 일하고 있을, 일하며 싸우고 있을>을 발간하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와 대응 방안 등을 소개했다. 사회초년생의 성희롱 피해로 인한 퇴사사례가 많았다. 자발적으로 퇴사를 선택하지 않은 경우에도, 계약직 등 취약한 위치에 있는 근로자는 성희롱 신고 후 계약 만료나 해고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례들이 담겼다. 이에 반해, 성희롱 피해를 겪은 피해자들이 퇴사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었던 사례에서는 ‘조직구성원의 연대’, ‘조직 차원의 대응’이 도움이 되었고, 특히 규모가 큰 조직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 국민이 책장에 한 권쯤 가지고 있을 법한 국민 베스트셀러다. 다들 주말에 시간은 많아졌으나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잘 모르던 시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답사’라는 새로운 즐길거리를 열어주었다. 다들 별 관심이 없던 문화유산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우리나라 곳곳에 참 보물 같은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책이 좀 두껍다. 아마 책장 한 편에 꽂아두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이는 드물 것 같다. 관심 가는 지역을 사 보았더라도 조금씩 발췌독하다 상당한 분량에 눌려 슬그머니 책을 놓았을 수도 있다. 만화로 보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더없이 반가운 까닭이다. 《만화 문화유산 답사기》는 그 제목처럼, 유홍준 원작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누구나 쉽게 만화로 접할 수 있도록 각색한 책이다. 물론 기존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진 못했다고 해도, 각 지역의 핵심 문화유산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데다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참신한 관점도 잘 담겨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4편, ‘경주’에서도 그런 관점이 잘 녹아있다.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심각한 외로움의 시대. 이 외로움이 사회구조적 문제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위로를 찾아야 하는가. 저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고 이로 인해 외로움이 확산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말한다. ‘혼자 되어 쓸쓸한’ 감정인 외로움은 정신적 · 신체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고, 국가는 사회적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더 이상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배제와 단절의 문제가 되고 있다. 아무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국가와 시민, 개인과 개인의 유대가 무너져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치적인 극단주의를 초래하는 등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일으켜 사회통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비대면 시스템의 확대,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초연결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 간의 관계는 스마트폰에 고립되어 있다. 우리는 ‘늘 함께 있지만 늘 혼자’ 인 상태에 머무른다. 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공동체를 부활하고 현실 관계를 지향하라고 처방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서로에 대해 관심을 두고 돌봄과 온정으로 따뜻한 위로를 나눈다면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