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한해 가운데 보름달이 가장 크고 밝다는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은 예부터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비손하며 점쳐보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동국세시기》에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운수가 좋다."고 하여 이날은 남녀노소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저마다 소원을 빌었습니다. 대보름날은 다채로운 세시풍속이 전합니다. 특히 정월대보름에는 “복토 훔치기”란 재미난 풍속이 있는데 부잣집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 부뚜막에 발라 복을 비손하는 것입니다. 또 “용알뜨기” 풍습이 있는데 이는 대보름날 새벽에 가장 먼저 우물물을 길어오면 그해 운이 좋다고 믿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곡식 안내기”가 있는데 경남지방의 풍속으로 농가에서는 새해에 자기 집 곡식을 팔거나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날 곡식을 내게 되면 자기 재산이 남에게 가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그밖에 대보름 세시풍속은 더위팔기, 쥐불놀이, 다리밟기, 달집태우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정월대보름 먹거리로는 오곡밥과 나물을 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를 시작하는 날로, 봄이 온다는 입춘(立春)입니다. 입춘 무렵의 세시풍속으로는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원하는 입춘축(立春祝)을 집 대문이나 대들보ㆍ천장 따위에 붙이지요. 입춘축을 다른 말로는 춘축(春祝), 입춘첩(立春帖), 입춘방(立春榜), 춘련(春聯), 문대(門對), 춘첩자(春帖子), 춘방(春榜), 대련(對聯), 춘첩(春帖)이라고도 합니다. 입춘날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며, 전라도에서는 입춘축을 붙이면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여 입춘에는 꼭 하는 세시풍속이었습니다. 입춘축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것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 “입춘이 되니 크게 길 할 것이요, 만 가지 일들이 형통하라”라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밖에 쓰는 말로는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로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부자가 되어라“,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곧 “마당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라는 것도 있는데 온갖 좋은 말은 다 가져다 붙여놓습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축을 "잡귀야 달아나라."라
[우리문화신문= 윤지영 기자] 계묘년 토끼해가 밝은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길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소식을 알리는 입춘이 다가온다. 입춘인 2월 4일의 하루 전날인 2월 3일, 일본에서는 절분(세츠분, 節分)이라는 풍습이 있다. 절분은 한해에 일어날 나쁜 액운을 막고 행운과 행복을 비는 날로 일본인들은 절분날에 집 가까운 신사(神社)나 절을 찾아가서 액막이 기도회를 갖고 콩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한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 (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 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했는데 《연희식(905년)》에 보면 색색으로 물들인 흙으로 빚은 토우동자(土牛童子)를 궁궐 안에 있는 사방의 문에 걸어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인형은 대한(大寒) 전날 밤에 만들어 입춘 전날 밤에 치웠다. 토우동자 풍습은 헤이안시대(794-1185)의 귀신을 물리치는 행사 츠이나(追儺)와 밀접한데 이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로 내려오면 토우동자의 장식은 사라지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신성시하면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도 양평 강가에 있는 두물머리, 즉 양수리[兩水里]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 <황포돛배야, 두물머리 강변에 살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원래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나루터였으나, 팔당댐으로 인해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 축제를 통하여 어촌의 옛 풍습을 재현해 오고 있는데, 올해에는 뜻하지 않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행사가 생략되었고, 제2부의 국악한마당이 전옥희 외 여러 소리꾼의 창과 율동으로 이어져 이곳을 찾은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야금과 아쟁의 명인으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뜬 지 10년이 된, 백인영의 10주기 추모 공연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이 공연은 2022년, 11월 13,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회관 풍류극장에서 그에게 배운 제자들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신영희 명창을 중심으로 김청만, 김영길, 원장현, 이광수 등이 우정 출연하여 의미를 더했다. 글쓴이는 추모사를 통해 객석과 공감을 나누었는데, 그 내용을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백인영씨!, 오랜만이오. 오늘 밤, 당신 딸 기숙이를 비롯한 제자들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절친들이 무형문화재회관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앞으로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어싣기(연재)하려 하는 신부용입니다. 왜 한글이야기를 하면서 공학박사를 내세우냐고 하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에 가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았습니다. 80년 말에 KIST에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교통연구원을 만들고 원장을 지냈습니다. 당연히 한글이나 언어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중고등학교 국어교실에서 배운 것, 그리고 궁금한 점을 인터넷 검색이나 공개 세미나에 가서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하겠지만 제 한글이야기는 강단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분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을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의문점을 제시하고 토론을 유도하여 함께 해답에 도달하도록 해 볼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소득도 중요하리라 기대합니다. (글쓴이 말)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과연 한글이 세계 으뜸 문자인지입니다. 누구든 한글을 조금이라도 알고 나서 다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해상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바닷길을 통해 서양으로 건너간 도자기를 우리는 ‘무역 도자’라고 부릅니다. 동서 문화 교류의 산물인 무역 도자의 면면을 살피다 보면 여러 재미있는 사실과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백자 청화 산수무늬 사각병(白磁靑畵山水文四角甁)>은 이러한 무역 도자의 전통 아래 탄생한 작품입니다. 조선 후기 백자 사각병의 등장 <백자 청화 산수무늬 사각병>은 단정하고 차분한 기형에 청화 물감의 발색 또한 안정적인 수준 높은 작품입니다. 몸체에 사각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산수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어깨에는 고대 청동기에서 자주 보이는 뇌문(雷文)이 장식되었고, 그 위에는 네 면을 둘러 복을 상징하는 박쥐무늬가 당초무늬와 더불어 그려져 있습니다. 구연의 목 부분에도 ‘만수무강(萬壽無疆)’ 글자를 한 자씩 정성스레 써넣어 조선 후기 백자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길상과 장식화 경향을 잘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굽바닥에 ‘함풍성조(咸豊盛造, 1851~1861)’라는 중국 연호가 있어 19세기 분원가마에서 제작된 왕실용 고급품으로 추정됩니다. 사각병은 직사각형 몸체에 어깨의 모서리를 비스듬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30회 임방울 국악제에서 대상에 오른 최잔디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20년 전부터 임방울대회 중등부와 고등부 금상을 비롯하여, 전주대사습,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수상한 이야기와 함께 공연실적이나 주요 작품에 출연경력도 화려하다는 이야기, 임방울 대회에서 부른 ‘심봉사, 눈뜨는 대목’의 사설에는 <장한가>의 한 구절인 “부중생남 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남자아이 생산에 힘쓰지 말고, 여자아이 생산에 힘쓰라는 뜻이라는 이야기, <춘향가>에도 월매가 “남원읍내 사람들, 나의 발표헐 말 있네. 아들 낳기를 심을 쓰지 말고, 춘향 같은 딸을 낳아 곱게 곱게 잘 길러”라는 말이 나온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경기도 양평 강가에 있는 두물머리, 곧 양수리에서 열리는 축제, <황포돛배야, 두물머리 강변에 살자>를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경기도 양평 들머리에는 양수리(兩水里), 우리말로는 ‘두물머리’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두 물줄기가 하나를 이루는 곳이기에 매우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두 물줄기’ 가운데 하나는 금강산(金剛山)에서부터 흘러내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윤동주 시인의 연구를 한다거나 책을 쓴다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면 그 누구나 오무라 마스오 교수님의 자료를 활용하고,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인데 그는 일본 내에서 윤동주 연구의 일인자로서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특히 오무라 교수님은 1985년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중국 조선족문학연구를 위해 1년간 연구 교수로 있을 때 윤동주(1917~1945) 시인의 무덤을 찾아낸 분이고,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尹東柱 自筆 詩稿 全集)》을 펴내는 등 윤동주 연구에 쏟은 시간과 정성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에 있는 도다 이쿠코 씨가 펴낸 《동주의 시절》 책을 보내와 우편으로 자택에 보내드렸을 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높이 평가하시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오무라 교수님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이는 평생 윤동주 시인을 포함한 한국문학 연구에 일생을 바치고 지난 1월 15일, 세상을 뜬 일본 학자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89살) 와세다대 명예교수에 대한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의 말이다.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 씨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그림에 대한 평이 적힌 이 작품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입니다. 그림에 대한 평(評)을 쓴 사람은 조선 후기 사대부 화가 강세황(姜世晃, 1713-1791)입니다. 그림과 글이 거의 같은 비율이어서 그림과 글씨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강세황의 글씨는 아름다우면서도 격조가 있습니다. 오른쪽의 그림을 먼저 살피겠습니다.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가장 멀리 거칠고 험한 느낌의 봉우리들이 보이고, 중간에 먼 산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산자락이 보입니다. 산 밑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시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화면 오른쪽 밑으로 좁고 가느다란 길이 나 있고, 소를 몰고 오는 목동이 아주 조그맣게 그려졌으며, 가을철 추수가 끝난 뒤를 암시하듯 커다란 노적가리가 보입니다. 그림으로 미루어 여기는 아늑한 뒷산을 배경으로 한 추수가 끝난 어느 마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호젓하고 조용한 느낌입니다. 진경을 그릴 때 중요한 점 그림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읽어 내기는 좀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未知寫得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집권체제가 정립되어 가던 6세기 전반 신라 사회의 신분 질서와 미감을 대표하는 꾸미개(장신구)입니다. 전체 길이가 8.4cm에 이르며, 신라 귀걸이의 특색을 압축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나눠보면, 크게 중심고리[主環]-노는고리[遊環]-연결금구(連結金具)-샛장식[中間飾](달개-구체-반구체-달개)-드림[垂下飾]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늬 없이 간소한 중심고리는 3줄의 접합선과 2장의 막음판으로 볼 때, 5장의 금판을 사용해 성형된 것입니다. 그 지름이 3.7cm로 굵은 편인데, 신라 귀걸이의 중심고리는 굵은 형태와 가는 형태로 양분됩니다. 중심고리의 굵기는 당대 무덤에 묻힌 인물의 성별을 가리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대체로 굵은고리는 여성의 것, 가는고리는 남성의 것으로 판단되고 있는데, 무덤 내에서 함께 발견되는 관ㆍ칼 등 여러 위세품과의 조합을 아우르면 판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무덤에서 나온 중심고리의 선후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지름 크기는 귀걸이를 만든 시점을 짚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제작 시기상 늦은 단계의 중심고리가 빠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