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대중 대통령의 출신지가 신안군 하의도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울살이 속에서 ‘하의도’는 머나먼 땅으로만 여겨왔다. 막연히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지난 9월 12일, 한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마침내 그 땅에 발을 디뎠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승용차로 간 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신의도행에 배에 승용차를 싣고 2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신의도(신의여객선터미널)였다. 이곳에서 다시 승용차를 30여분 달려 하의도에 도착했다. 신안을 흔히 천사섬이라고 해서 솔직히 ‘신안에 왠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1004개의 섬이 있어서 이를 한글로 천사(1004) = 천사(天使)가 된 것이란다. 오호라! 하의도는 어촌이라기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섬이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이 이를 말해준다. 맨 먼저 찾아 간 곳이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이하 농민운동기념관)’이다. 농민운동기념관 입구에서부터 천사상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민운동기념관에는 조선후기부터 광복까지 무려 360년 동안 하의 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주민들의 빼앗긴 토지를 탈환하기 위해 흘린 ‘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60년 동안 토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해에 이어 두해째 '코로나19' 때문에 한가위를 오롯이 즐기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올해로 '코로나19'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방역을 지키면서 겨레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았다. ≪열양세시기≫에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처럼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들이 풍성한 좋은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가위의 유래와 말밑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불린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음력 열엿새 날인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고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편에서 술과 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시조의 학습을 위해서는 쉬운 악보의 제작, 지도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내포제 시조의 확산을 위해서는 도내(道內)공직자들과 교사들을 동호인으로 안내해야 하며, 국내외 방문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동 보존회는 이제까지 추진해 온 발표회, 경연대회, 강습회 등을 꾸준히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당부의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주에는 시조음악에 관한 일반 상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래 시조, 또는 시조창은 <시절가>, <단가>, <시절단가>라는 명칭으로 불러온 노래였다. 시조는 조선조 영조 무렵,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石北集)》 관서악부에 보이는 시구(詩句, 곧 “ 일반 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李世春)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그 악보는 순조 때,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유예지(遊藝志)편에 전하는 시조 악보라는 점에서 200여년을 헤아린다. 이 악보를 해독하여 세상에 알린 장사훈 교수는 이 시조가 현행 경제(京制)의 평시조라는 점을 밝혔으며, 그 이후 평시조는 가곡의 다양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인 구라하시 요코(倉橋葉子, 71)씨로부터 신문 기사 한 장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어제(7일) 석간 아사히신문이었다. 기사 내용은 50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일본인 기사였다. 이 기사는 6일(월)과 7일(화)에 걸쳐 2회로 연재했는데 구라하시 씨가 보낸 것은 2회차였다. 50년 전에 한글 교실을? 그렇다. 이날 기사는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와 그들이 현재 지속하고 있는 일을 두 팀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었다. 한 팀은 한국어를 배워 현재 한국의 소설가 황석영 씨의 수필을 읽고 있는 팀이고, 다른 한 팀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해 학살당한 조선인을 추도하는 모임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61) 씨 이야기다. 이들은 1970년부터 ‘현대어학숙(現代語學塾)’이라는 한국어교실을 만들어 꾸준히 한국어 실력을 쌓아 왔다. 한국어교실은 김희로공판대책위원회가 사무실로 쓰기 위해 빌린 도쿄 요요기역 근처의 사무실이었다. 이들이 한국어교실 문을 연 계기는 1968년 재일동포 김희로 사건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김희로는 가난한 집안형편과 일본사회의 차별과 천대를 겪어내면서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세상에서 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다섯째 절기인 ‘백로(白露’)입니다. 이때쯤이면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지요. 원래 이 무렵은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때지요.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에 쌀이 12만 섬(1998년 기준)이나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가을장마 탓으로 농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이때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지요. 그 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의미이고, 조선백자에 포도 무늬가 많은 것도 역시 같은 뜻입니다. 어떤 어른들은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이지요.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합니다.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시조창의 확산화 운동은 젊은 층, 그 가운데서도 초, 중등학교 학생들을 애호가층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 어린 학생들은 시조를 통해 느림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기 위해서는 교재의 제작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현재의 시조창 교재들은 정간, 오선, 그림 악보 등 다양하나, 음높이와 박자, 노랫말 등의 구분이 불분명함으로 더욱 정확한 기보방법을 통해 악보의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학습자의 음악수준이나 단계별 난이도를 고려해서 새로운 시조창 악보를 제작하는 작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대부분 애호가들은 악보를 익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하소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랫말의 표기 위치와 음고(音高) 표시와 박자의 한배 표기가 불분명하여서 더욱 정확하고 분명한 기보체계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다음 표현방법으로 요성(搖聲), 곧 떠는 소리, 흘려내리는 퇴성(退聲), 밀어 올리는 추성(推聲) 등 다양한 표현법이 첨가되어야 한다. 악보의 제작은 신중하게 여러 가지 요건들을 고려해서 제작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은 별도의 기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3년 9월 1일 낮 11시, 일본 관동지방(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 군마, 도치기, 이바라기, 치바현)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리히터 지진계로 7.9도를 기록한 이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를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간토다이신사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관동대지진’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관동지방에 체재하던 조선인들은 일제의 조직적인 ‘조선인 학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지진으로 혼란한 틈을 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이를 제압하기 위한 명목으로 도쿄ㆍ가나가와ㆍ사이타마ㆍ치바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들은 ‘조선인 폭동’에 대한 전문(電文)을 준비해 9월 2일 오후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後藤文夫)의 명의로 전국의 지방 장관과 조선총독부ㆍ타이완총독부에 타전했다. 전문 내용을 보면 “동경 부근의 대지진을 이용해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하는 등 불령(不逞 : 불평불만이 많아 멋대로 함)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여, 현재 동경 시내에는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는 자가 있다. 동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내포제시조 보존회>가 7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라는 점, 부여읍에 한옥 건물의 회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내포제시조의 전승활동, 강습 및 발표회, 전국규모의 경창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는 점, 앞으로의 발전방향으로는 첫째, 내포제 시조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식시켜서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야 한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보존회에 기대하는 발전방향의 제안은 하나둘이 아니다. 지역민들에게 시조의 값어치를 인식시켜 자긍심을 심는 일, 그다음 주문은 젊은이들을 애호가층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해서인가?’, ‘느린 형태의 노래를 꺼려서인가?’ 가곡이나 가사, 시조창과 같은 전통의 노래들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은 층이 그러해서 이들을 시조나 가곡의 애호가로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어린이들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시조를 지도하는 일은 정책적으로 접근해야만 가능할 정도이다. 누구는 “어린이들에게 빠르고 발랄한 노래를 지도해야지, 왜 노인층이 즐기는 가곡이나 시조를 지도해야 하는가?”라고 그럴듯한 항변을 내놓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재일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명성 높은 일본 청소년 야구의 본선 무대에서 8강을 차지하여 재일동포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잔치 분위기다. 교토국제고는 24일 아침 8시 효고현(兵庫県)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있는 한신고시엔구장(阪神甲子園球場)에서 열린 103회 고시엔(甲子園) 대회에서 도쿄도 대표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부속고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대 4로 꺾고 승리했다. 시합에 앞서 본선 경기가 열리는 날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가 방송을 통해 전국 생중계되자 재일동포들의 감동은 더욱 컸다. 1947년 한국계 민족학교로 세운 교토국제고는 야구부 창단 22년 만에 야구 청소년들의 꿈의 무대인 여름고시엔(夏の甲子園)에 처음 출전하여 8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봄고시엔(春の甲子園) 대회 때 16강에서 패배하는 설욕을 당했으나 분발하여 이번에 8강에 오른 것이다. 8강에 오르기까지 상대한 팀은 예선전을 포함해 무려 3,603개로 이들 팀과의 접전을 뚫은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고시엔구장(甲子園球場)은 일본 프로야구팀인 한신타이거즈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내포제시조 보존회> 발표회에서 부른 ‘사자강’과 사설시조, ‘부소산 저문 비’를 소개하였다. 시어(詩語)들의 해석과 함께 부소산 저문비의 부여 8경도 소개하였다. 부소산의 모우(暮雨), 낙화암의 영혼, 백마강에 잠긴 달, 고란사의 새벽 종소리, 수북정의 푸른 아지랑이, 규암진의 돛단배, 구룡포에 내려 앉는 기러기, 백제탑에 비추는 석조의 모습 등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내포제시조를 지켜 온 동 <보존회>는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다. 연혁을 보면 1954년 3월, <시우단체 총연합회 부여지부>로 창립을 하였으며 현재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128-1 소재의 시조회관을 소유하고 있다. 이 회관은 1970년에 건립, 2000년에 개축되었는데, 무대와 300여 명의 객석을 확보하고 있는 발표회장과 회의실, 연습실 등이 마련된 한옥 건물이다. 이 회관의 개축은 내포제시조 보존회원들과 부여 시우회원들, 애호가들, 그리고 충청남도와 부여군 등의 민(民), 관(官) 합작품이어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이 전수관의 건립으로 말미암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내포제시조의 전승활동은 물론